폭력성은 생명의 본성이 아닙니다 [이경자 칼럼]


이경자 | 소설가
이 글을 쓰려고 며칠 전에 읽기를 끝낸 책을 책꽂이 어딘가에 뒀는데 한참을 찾다가 못 찾았습니다. 기억상실증일 텐데, 몸이 고단하거나, 평상심을 잃었을 때 나타나곤 합니다.
제가 읽은 책은 고대 중국의 갑골문을 연구한 것인데, ‘인간의 폭력성은 언제부터…’ 같은 걸 이해해보려고 나름으로 살펴보는 여러 과정의 하나였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폭력을 미워했습니다. 근거를 찾아보자면 아버지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가 폭력적이라고 판단되는 행동을 할 땐 반드시 자신이 옳지 않았거나 부끄러울 때였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폭력은 고함을 질러 공포감을 집안에 가득 채워놓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러고도 자신의 부끄러움이나 가장으로서의 위엄이 채워지지 않을 땐 매질을 시작했습니다. 아직 열살도 되지 않은 자식, 집안에서 가장 남루하게 자기를 낮추고 수면 부족으로 일만 하는 아내이며 아이들의 어머니도 사정없이 때립니다. 자식들은 도망갈 수 없습니다. 무턱대고 빌고 무턱대고 맞습니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매를 맞고 비명을 지르고 존재가 참혹해지는 걸, 억울함을 가슴에다 억눌러 감추는 걸 지켜보는 것이 고문이었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화를 내는 건 제 생명 존재에 가해지는 지진, 쓰나미, 토네이도, 대형 산불과도 같았으니까요. 그러니까 저는 아버지 권력을 미워하는 마음이 저와 함께 나이를 먹어온 사람입니다. 하지만 저를 사람으로 만든 두 요소 중에 하나인 ‘아버지’를 미워하는 건 결국 제 존재에 여러가지 상처나 불균형을 이룰 테니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공부한 적도 있습니다. 미워하면서 닮는다는 말이 있는데 저에게도 폭력성이 적재되어 있더라고요. 이제 다 지난 이야기지만, 하여간 솔직해지려면 고백해야 하니까…. (저는 한때 폭력적인 언어로 글을 써왔습니다.)
저는 제 내면에 드리운 폭력성을 찾아서 씻어내는 일에 진력한 적도 있었고 그것이 가능했습니다. 그런 과정 중에 폭력성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게 됐습니다. 중국 윈난성의 모계사회, 모쒀족의 사람들은 그 삶의 질서에 폭력성이 깃들지 않았습니다. 생명을 낳는 존재에 대한 존경과 그 헌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그들의 관계를 이어주는 피나 신경줄 같은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들은 화를 잘 내는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여깁니다. 농담할 줄 모르는 사람도 좋은 사람 중에 끼지 못합니다. 그곳에서 제가 말을 탄 적이 있었는데 저의 불찰로 말이 뛰어서 제가 크게 다칠 뻔했습니다. 그러자 말 주인이 말을 꾸짖고 때렸습니다. 하지만 곧 말의 머리를 두 팔로 따뜻하고도 정성스럽게 끌어안았습니다. 무어라고 말도 했습니다. 저에게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감동으로 느껴졌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주인은 당신이 낸 화(폭력)가 말의 심장까지 내려가기 전에 사과했다는 것입니다. 사랑과 존중 같은 언사들이 아주 많지만 저는 이 장면에서 교과서 같은 학습을 했습니다. 내가 잘못했을 때 그것을 인정하고 이내 사과하는 것. 그건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일 테니까요. 하지만 모계사회는 거의 사라지는 중. 마치 사회 발전에 그 효능이 수준 미달이라고 평가된 듯.
세상에는 다양한 사회가 존재했을 테죠. 모계사회도 그 내용이나 형식이 토양에 따라 달랐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어머니는 생명을 낳는 존재. 당신의 몸에서 젖을 내 어린 자식을 키웁니다. 해나 물, 바람과 흙처럼 생명을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씁니다. 이런 어머니의 삶은 온전히 사랑입니다. 그 사랑에 대한 존경이 모계사회의 신앙입니다.
선사시대의 어느 시절쯤 되었을까요? 골짜기와 강변과 산비탈에 모여 살던 수많은 씨족이나 부족들이 하나로 뭉치게 하는 덴 어머니의 사랑이나 헌신이 아니라 아버지 남자의 강력한 힘이 작용했습니다. 사랑으로 품고 용서하는 신이 아니라 벌주고 지배하고 군림하는 ‘무서운 존재’가 신으로 추앙되었습니다. 우두머리가 생겨서 그 우두머리에게 우두머리다운 생활을 하도록 여러가지 ‘생각’들이 생겨났습니다. 집안에서 먹을 것을 사냥하는 힘센 아버지가 우두머리, 씨족이나 부족에게도 강력한 지배자가 신이 되고 ‘왕’이 되었겠죠.
아름다움은 부드럽고 너그럽고 이해하고 품는 것이 아니라 강력하게 지배하고 힘으로 억누르는 것. 그것을 한 사람에게 몰아줘서 왕이 탄생하고 정벌하고 징벌해서 마침내 강한 것, 제압하는 것, 유일한 것이 영웅이며 영웅은 힘센 남성, 영웅 서사는 하나의 문명으로 우리의 정신세계를 지배한 것이 아닐까요? 유일한 지배자에겐 충, 가정이나 가족의 조상에겐 무턱대고 효.
남성가부장제를 지탱하게 하는 여러가지 금기들을 생각해보면 미신 같은 것들도 참 많아요. 수직적으로 사고하고 수직적인 것을 평가의 기준으로 삼으며 양(陽)은 좋고 옳고 음(陰)은 그 반대여야 하니까 음침하고 범죄적이고 으스스한 것이 됩니다.
손가락이 다섯개이고 그 생김이 다 다른 건 쓰임 때문이며 그 쓰임에서 좋고 나쁜 것은 존재하지 않겠지요.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제가 한창 활동하던 나이 때도 ‘평등’이나 ‘무차별’을 이야기하면 화를 내거나 아주 불쾌해하시는 어른들이 계셨습니다. 사람은 똑같을 수 없다! 나고 자란 환경이 다르고 배운 바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채송화와 해바라기가 다르듯이, 지렁이와 용이 다르듯이. 존재에는 계급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 제가 느낀 공포감은 아직도 가슴이 서늘하게 저려옵니다. 법이 닿지 않는 말이나 행동에서 느껴지는 공포감. 생명의 본성과 배치되는 생각이 권력을 가진 행동으로 나타날 때의 그 폭력성이, 제 본능을 순식간에 위협하고 초췌하게 해서….
내 생각을 경멸하던 그 어른. 불경과 불손을 위험하다고 느끼던 그 어른. 저는 손가락이 다른 것은 그 쓰임의 역할 때문이라고, 역할은 다 고유해서 하나의 역할이 다른 역할과 공정하게 발휘되어야 가장 좋은 환경이 된다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인격을 지배하는 유일하고 강력한 사상, 빼어난 폭력성을 타고난 사람에 대한 칭호, 영웅 서사는 이제 달라져야 합니다.
지난 12월 초, 여의도 광장으로부터 들려온 노래 하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고.
노래만 들어도 눈물이 글썽거려지는 이유. 사람은 나면서부터 평등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헌재, 탄핵심판 일단 ‘6인 체제’ 출발…윤은 여전히 보이콧
- ‘내란대행’ 한덕수 석달 전 본심 인터뷰 “윤석열은 대인, 계엄령은 괴담”
- 국힘 김상욱·김예지·조경태·한지아, 헌법재판관 선출안 표결 참여
- “백령도 통째 날아갈 뻔…권력 지키려 목숨을 수단처럼 쓰다니”
- 2천년 된 고인돌 무덤에 측량용 쇠못 박은 공무원들
- ‘헌법재판관 임명 보류’ 한덕수 탄핵안…민주당 “오늘 표결”
- 마용주 ”막연한 이유로 영장 집행 거부 안돼” 대통령경호처 비판
- 김용현 변호인단 “김용현 포고령·계엄선포문 작성, 윤이 검토·수정”
- 한덕수, ‘200표 미만’ 탄핵안 가결땐 버틸 수도…국회, 권한쟁의 소송내야
- “국민 아닌 ‘윤석열 옹호’ 한덕수 퇴진하라” 경복궁 앞 분노의 함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