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장의 나라, 디즈니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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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유정 기자]
홍콩에서의 첫 아침은 디즈니랜드를 향한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조식이 8시부터이니 그에 맞춰서 일어나고 준비하라고 했건만 아이들은 새벽같이 일어나 채비를 했다.
다행히 숙소의 직원 분이 일찌감치 식사를 준비해 식사시간이 되기 전부터 나온 아이들에게 차례차례 아침을 차려주셨다. 식사를 할 수 있는 거실이 넓지 않았지만 일찍부터 조식을 챙겨주신 덕분에 일어난 순서대로 아침을 먹고 빠질 수 있어서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오전 9시, 디즈니랜드로 출발 전 하루의 일정을 상기시키고 준비물을 확인했다. 가장 중요한 건 옥토퍼스와 트래블월렛, 두 장의 카드와 휴대폰.
"말로만 확인하지 말고 꺼내서 보여줘."
지난해 카드를 놓고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갔던 모 군의 추억을 떠올리며 꼼꼼하게 확인을 했다. 지난 실수는 더 나은 다음을 위한 밑거름이 되기에, 우리 삶에 쓸모없는 순간은 없다.
준비물을 확인하고, 디즈니랜드까지 가는 길을 다시 한번 검색해 보며 타야 하는 노선과 환승역을 주지 시켰다. 그냥 우르르 인솔해 가면 더 편하고 시간도 절약되지만 그건 우리 여행의 목표와 어긋나게 된다. 조금 느리더라도,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영역을 넓히고자 하는 게 이 여행의 목적이다.
우리 숙소가 있는 침사추이부터 디즈니랜드까지는 지하철을 두 번 환승해야 한다. 올해 3학년들은 대중교통이용을 좋아하고 길 찾기에 강점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 많은 편이었음에도 홍콩의 지하철은 퍽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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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토퍼스 카드로 홍콩 지하철 탑승하기 |
| ⓒ 권유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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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하철 노선도를 보며 디즈니랜드를 찾아가는 길 |
| ⓒ 권유정 |
우리가 간 날의 디즈니랜드는 10시 30분부터 개장이었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도착해 줄을 서 있었다. 오픈런을 목표로 한 건 아니었고, 적당한 시간에 움직였을 뿐인데 차질 없이 도착하는 바람에 어쩌다 보니 오픈런을 하게 되었다. 개장까지 남은 시간 30분.
"......더워 죽겠어요."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곳곳에서 앓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홍콩의 9월은 무척 덥고 습하다. 여행을 하기에 썩 좋은 시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우리는 선택의 폭이 좁았다. 3학년들은 2학기가 되면 하나둘 실습과 취업을 나가기 때문에 모두 함께 졸업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는 일정을 더 늦출 수가 없었다.
각오하긴 했으나 막상 실제 맞닥뜨린 홍콩의 무더위는 상상이상이었다. 옴짝달싹 못하고 줄에 서 있는 시간이 천년만년으로 느껴졌다. 괜히 일찍 왔다는 후회가 들 정도였다. 디즈니랜드의 즐거움을 애써 상상하며 인고의 시간을 견디기를 20여 분, 사람들이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문이 열렸다.
들어가자마자 직행한 곳은 기념품숍. 이유는 하나, 냉방이 아주 빵빵했기 때문에.
미리 알아놓은 정보로 계획했던 동선 같은 건 아무 소용없었다. 추천 어트랙션도 찾아보고, 심지어 디즈니랜드를 더 잘 즐기기 위해 토이스토리 등 디즈니 영화까지 섭렵하고 왔지만 그런 건 따질 겨를이 없었다. 열린 문 사이로 새어 나오는 냉기에 우리는 홀린 듯이 발길을 옮겼다. 찜통 같은 실외와 달리 실내는 천국이었다. 화장실마저 냉방시스템이 매우 잘 되어 있었다.
이후로도 우리는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곳이면 어트랙션이든 기념품숍이든 가리지 않고 들어갔다. 다행히 너무 더워서인지 이용객이 별로 없어 대기도 얼마 하지 않고 대부분의 어트랙션을 이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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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콩 디즈니랜드 최고의 인기존인 겨울왕국 |
| ⓒ 권유정 |
반면 디즈니랜드의 꽃이라는 불꽃놀이까지 꼭 보고 가야 한다는 굳건파도 있었다. 모든 아이들의 의견을 종합한 끝에 1/3은 디즈니랜드에 남고, 나머지 2/3는 숙소로 복귀해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나는 불꽃놀이 팀과 함께 했다. 전날 레이저쇼에 대한 실망감이 슬쩍 고개를 들었지만 디즈니랜드는 다를 거라 믿으며. 디즈니랜드는 딱히 맛집이 있지 않아서 새로운 식당에 도전하기보다는 점심에 그룹별로 먹었던 식당 중 평이 나쁘지 않았던 로열 뱅킷홀에서 다시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로열 뱅킷홀은 푸드코트처럼 여러 식당이 있고, 원하는 메뉴를 골라 줄을 서서 음식을 먼저 받은 후 나오며 결제를 하는 시스템이다. 로스트치킨, 피자, 스테이크 등 우리 입맛에도 무난하게 먹을 수 있는 메뉴가 많고 가격도 적당한 편이었다.
각자 음식을 받고 자리로 돌아오는데, 학생 하나가 계산대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무언가 문제가 생긴 것 같아 다가가보니... 카드를 못 찾겠단다.... 맙소사. 하필 첫날 남의 캐리어를 잘못 갖고 나왔던 J였다.
일단 대신 계산을 해주고 자리로 돌아와 카드의 행방을 추적했다. 가방과 옷 구석구석을 뒤져도 나오지 않는 게 어디서 잃어버린 것이 확실했다. 혈압이 급격하게 치솟으려 했지만 혼을 내서 해결될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마음을 다스렸다.
분실이 확실하니 트래블월렛 어플을 열어 마지막 결제내역을 확인했다. 다행히 누가 습득해 사용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우선 카드를 off 해 비활성화시켰다. 트래블월렛 카드는 어플로 간단하게 사용을 잠글 수 있어 이럴 때 편리하다.
결제내역 정보를 바탕으로 J와 동행한 교사에게 확인해 보니 입구 기념품숍에서 기념품을 사고, 이후로 카드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식사 후 기념품숍에 다시 가보기로 하고 일단 저녁을 먹었다. 마음이 급했는지 부지런히 식사를 마친 J는 옆자리에 앉아 초조하게 말했다.
"카드를 못 찾으면 어떻게 하죠? 누나가 제니쿠키 사 오라고 했는데..."
누나 선물보다는 자기가 돈을 못 쓰는 것이 더 신경 쓰이는 게 분명했는데, 차마 그렇게 말하기에는 저도 양심이 찔렸는지 계속 다른 가족들 선물을 거론했다. 사실 카드가 없어도 트래블월렛 어플에서 친구 간 송금이나 N빵 결제는 이용할 수 있으니 크게 문제가 되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번번이 자기 물건을 잘 챙기지 못하는 J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 덩달아 심각한 얼굴을 했다.
"그러게. 이제 카드 없어서 밥도 못 먹고 쇼핑도 못 할 텐데 어쩌냐. 큰일났다, 너."
J는 한시라도 빨리 카드를 찾고 싶은지 연신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그렇지만 아직 식사를 하고 있는 우리를 닦달하지 못하고 눈을 감더니 손을 꼭 모았다.
"하나님, 제발 카드를 다시 찾게 해 주세요."
화가 나고 어이가 없지만 동시에 또 웃기고 귀여운 광경이었다. 어찌어찌 식사를 마치고 기념품숍에 찾아가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직원은 놀이공원 입구에 있는 고객센터에 가보라고 안내를 해주었다. 그리고 고객센터에서 다시 똑같은 설명을 반복하자 직원은 카드정보를 적어달라고 하더니 메모를 들고 어디론가 들어갔다.
J는 또다시 간절하게 기도했다. 몇 분 후 카운터 안쪽 문을 열고 직원이 비닐팩에 든 카드 하나를 들고 나왔다. J의 카드였다. 손에 들린 비닐팩이 가히 빛처럼 눈부셨다.
J는 격하게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그리고 이제 진짜 소지품을 잘 챙기겠다며 다짐했다. 말뿐만은 아니었는지, 나머지 일정동안 J는 수시로 소지품을 잘 챙겨야 한다고 되뇌며 더 이상의 분실 없이 여행을 잘 마쳤다.
사실 우리가 홍콩여행 중 잃어버린 건 J의 캐리어와 카드만이 아니었다. 디즈니랜드에서만 두 명이 휴대폰을 분실했고, 카드를 잃어버린 아이도 또 생겼다. 심지어 지하철에서 학생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빠짐없이 모두 되찾았다. 휴대폰은 미리 아이쉐어링 어플을 깔아 위치추적이 가능하게 하고 간 터라 찾을 수 있었고, 길을 잃었을 때를 대비해 위치를 공유하고 영상통화를 하는 등 연습도 사전에 하고 간 덕분이었다. 물론 운이 좋았음도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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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 밤 펼쳐지는 디즈니랜드의 하이라이트, 불꽃놀이 |
| ⓒ 권유정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brunch.co.kr/@h-teacher)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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