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러시아로 망명한 시리아 대통령, 안과의사에서 독재자가 되기까지
英 런던서 공부한 안과 의사 출신
형·아버지 사망하면서 34세에 대통령 승계
임기 초반 정치·경제 개혁 추진했으나
‘아랍의 봄’ 계기로 ‘시리아의 도살자’로
이슬람 무장 세력 하야트 타흐리드 알샴(HTS)이 이끄는 시리아 반군에 의해 수도 다마스쿠스가 함락되기 전 러시아로 탈출한 바샤드 알아사드(59) 시리아 대통령은 1970년 쿠데타를 주도하고 약 30년 동안 시리아를 통치한 하페즈 알아사드의 차남이다. 중동의 악명높은 독재자인 바샤드 알아사드는 지난 8일 수도 다마스쿠스에 반군이 진입하자 대통령직을 내려놓고, 러시아로 망명했다.
바샤드 알아사드는 다마스쿠스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과학과 의학에 관심을 보였던 정치와 멀리했던 인물이었다. 차남이었기에 아버지의 후계자로 낙점되지도 않았다. 바샤드 알아사드는 다마스쿠스대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1980년대 과학이 사람들에게 시력을 찾아줄 수 있다는 데 영감을 받아 안과 의사가 되기 위해 영국 런던으로 갔다. 런던에서 시리아 출신 영국인인 아내 아스마와 결혼한 전직 안과 의사 출신이다.

하지만 형이자 하페즈 알아사드의 장남인 바질 알아사드가 1994년 다마스쿠스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운명이 바뀐다. 이후 29세의 나이에 바샤드 알아사드는 런던에서 돌아와 군사 훈련을 받고 대령으로 진급하는 등 후계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2000년, 1971년부터 대통령을 지낸 아버지 하페즈 알아사드로부터 대통령직을 세습, 8일까지 24년 동안 시리아를 통치했다. 2000년 하페즈 알아사드가 사망했을 당시 의회는 대통령 연령 제한을 40세에서 34세로 낮추고 바샤드 알아샤드가 대통령이 될 수 있게 하기도 했다.
◇ 차남이라 안과 의사 데려다 교통사고로 형 사망하면서 후계자로
바샤드 알아사드는 취임 초기에는 독재자였던 아버지와는 다소 다른 길을 걸었다. 하페즈 알아사드는 소련식 중앙집권 경제를 수립하고, 정치권과 언론에서 반대 목소리를 내는 것을 철저하게 막았다. 또한 이란의 시아파 지도부와 동맹을 맺고, 레바논에 대한 시리아의 지배를 확대했으며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의 무장단체를 지원했다.
하지만 AP통신에 따르면 키가 크고 마른 체격인 바샤드 알아사드는 임기 초반, 조용하고 온화한 태도를 보였다. 대통령이 되기 전 바샤드 알아사드가 맡은 유일한 직책은 ‘시리아 컴퓨터 협회’ 회장뿐일 정도였다. 바샤드 알아사드는 집권하자마자 정치범을 석방하고 토론도 허용했다. 지식인들의 모임도 열렸고, 하페즈 알아사드 집권기에는 불가능했던 정치, 문화, 예술에 대한 토론도 이뤄졌다. AP통신은 “세 자녀를 둔 바샤드 알아사드는 권력의 덫을 피하는 듯했다”며 “바샤드 알아사드 부부는 여타 아랍권 지도자들처럼 궁전 같은 저택이 아니라 다마스쿠스의 고급 아파트에서 살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른바 ‘다마스쿠스의 봄’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1년, 1000명의 지식인이 다당제 민주주의와 자유를 요구하는 청원에 서명하고 정당을 만들려는 시도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후 수십 명의 정치인들이 비밀 경찰에 의해 투옥되고, 지식인들의 모임을 중단됐다. 대신 바샤드 알아사드는 경제 개혁을 추진했다. 경제 제한을 해제하고, 외국 은행을 도입하고, 수입 개방은 물론 민간 부문에 권한을 부여했다. 이후 시리아에는 쇼핑몰, 레스토랑가 호황을 이뤘고 관광업도 활개를 띄었다.
◇ ‘아랍의 봄’으로 아버지처럼 독재자 기질 드러내
2011년 3월 ‘아랍의 봄’은 바샤르 알아사드가 독재자임을 증명하는 계기가 됐다.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민주시위가 일어나고, 그 물결이 시리아에 도달하자 바샤드 알아사드는 이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시리아 정부군은 군중에게 발포했고 반(反)정부 폭동이 일어나고, 반군이 조직되자 염소와 사린가스 공격은 물론 정적을 납치하기에 이른다. 이에 바샤르 알아스드는 ‘시리아의 도살자’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세계식량계획은 당시 시리아 정부군이 반군 마을을 포위하고 시민들에게 풀을 먹도록 강요했다고 보고했다.
바샤드 알아사드가 폭정에 저항하는 시위를 무력 진압한 후 반정부 폭동, 반군이 조직되면서 시리아에서는 내전이 시작됐다. 바샤드 알아사드 정부는 러시아, 이란, 이란이 지원하는 민병대의 도움을 받아 주요 도시를 점령했고, 내전은 사실상 끝난 듯했다. 하지만 반군은 하나로 뭉치지 못했고, 여러 세력으로 갈라서면서 내전은 13년 9개월 동안 이어졌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바샤드 알아사드는 정치적 변화에 앞서 경제적 변화를 약속하는 개혁을 제안했고, 국가 독점 기업을 자유시장으로 대체하려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엘리트에게만 이익이 돌아다”며 “아랍의 봄 이전에도 시리아는 리비아와 마찬가지로 거대한 보안 장치가 항상 존재하고 시장, 택시정류장, 거리 모퉁이에도 감시하는 요원들이 있는 나라였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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