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에 허덕 건설사들… PF 관행 ‘빚 떠안기’ 거부

신수지 기자 2024. 12. 4.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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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사·금융사 ‘샅바 싸움’
일러스트=박상훈

건설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시장에서 건설사와 금융사 사이에 때아닌 ‘샅바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힘겨루기의 핵심은 통상 PF 대출 시 금융사가 건설사에 요구하는 ‘책임준공 약정’이다. 책임준공은 건설사가 정해진 기간에 공사를 끝내기로 하고, 이를 지키지 못할 경우 시행사가 금융권에서 빌린 대출을 모두 떠안는다는 약속이다. PF 대출을 집행하는 금융사가 시행사(개발 업체)보다 규모도 크고 신용이 우수한 건설사에 ‘빚보증’을 세우는 것이다.

최근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는 건설사들이 지금껏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금융권에 약속하던 책임준공을 거부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부동산 업계에선 “당분간 PF 시장에서 리스크 분담을 둘러싼 건설사와 금융사 사이의 힘겨루기가 벌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건설사들 “채무 인수 대신 지연 손해만 배상”

3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DL이앤씨는 최근 충남 천안 성성호수공원 아파트(1763가구) 신축 사업을 수주하면서 1850억원 규모의 PF 대출에 책임준공 확약을 제공하지 않았다. 대신 약속한 기한 내 준공을 못 하면 공사 지연에 따라 발생한 손해에 상응해 ‘지체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CJ대한통운 건설 부문도 지난 8월 서울 성수동 오피스 개발 사업에서 1910억원 규모의 PF 대출에 대한 책임준공 대신 지체상금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공사를 수주했다.

책임준공과 지체상금 모두 공사가 지연될 경우 건설사에 손실이 발생하는 점은 같지만, 책임 범위에서 큰 차이가 있다. 책임준공 약정을 못 지키면 시행사가 대주단에 내야 하는 대출 원리금 전부를 시공사가 떠안아야 한다. 반면, 지체상금은 실제 발생한 손해에 비례해 배상하고, 소송을 통해 손해액을 줄일 여지가 있어 건설사에 더 유리하다.

책임준공 부담을 덜기 위해 보증기관인 건설공제조합의 문을 두드리는 건설사도 있다. 건설사가 책임준공 의무를 지키지 못하면 건설공제조합이 대신 미상환 PF 대출 원리금을 보증 한도 내에서 보상하는 식이다. HL D&I한라가 시공하는 서울 성수동 오피스 개발 사업과 현대건설이 시공을 맡은 서울 가산동 지식산업센터 사업장이 최근 건설공제조합 보증을 받았다.

그래픽=박상훈

◇책임준공 규모만 79조… 정부도 제도 개선 나서

건설사들이 PF 사업의 관행처럼 돼버린 금융사의 책임준공 요구에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은 재무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주요 18개 건설사의 책임준공 규모는 79조1000억원으로, 대다수 건설사가 자기 자본 2배 내외의 책임준공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2022년 하반기 이후 부동산 경기가 꺾이면서 미분양이 급증하고, 불안정한 자재·인력 수급 여파로 공기(工期)가 지연되는 경우도 늘면서 책임준공을 이행하지 못하는 사례가 급증했다. 지난 4월 GS건설이 부산 강서구 일반산업단지 조성 사업에서 책임준공 약정을 이행하지 못해 1312억원의 채무를 인수했고, 금호건설은 지난 2월 경기도 수원 오피스텔 공사 때문에 612억원의 빚을 떠안았다.

정부도 ‘책임준공 개선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내년 1분기까지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노조 파업이나 자재 수급 악화 등 건설사의 잘못이 아닌 경우 공기를 연장해주거나, 준공 지연 기간과 비례해 채무를 인수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미분양 리스크는 사업성을 검토하고 대출을 내준 금융사가 지고, 기한 내 준공하지 못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선 건설사가 분담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PF·책임준공·지체상금

시행사(부동산 개발업체)가 아파트 등을 지으면서 나중에 들어올 분양·임대 수익을 내세워 사업비를 조달하는 금융 기법을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라고 한다. 금융사들은 원활한 대출금 회수를 위해 시행사보다 신용이 우수한 건설사에 정해진 기간 내 공사를 마치도록 하는 ‘책임준공’ 의무를 요구하고, 이를 위반하면 건설사가 시행사 대신 PF 대출 원리금을 모두 갚게 한다. ‘지체상금’은 준공 시기를 지키지 못한 건설사가 공사 지연에 따른 손해액을 지불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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