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성 끝판왕 알라딘, 국뽕없는 K뮤지컬 스윙데이즈...연말뮤지컬 뭐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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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전쟁, 연말 뮤지컬
국내 뮤지컬 시장은 지난해 4591억원의 매출로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한 후 올 상반기 2189억원으로 다소 주춤했다. 팬데믹 이후 돌아온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 등 라이선스 대작이 성장을 견인했을 뿐, 관객 저변을 확대시킬 만한 K레퍼토리 개발이 여전한 숙제로 지적됐다. 최성수기인 연말 뮤지컬 시즌은 어떤 작품들로 채워질까. 브로드웨이 흥행작 ‘알라딘’ , K뮤지컬 신작 ‘스윙데이즈:암호명A’ 등 속속 개막 중인 기대작들의 면면을 들여다봤다.
![몰입도 최상의 연출로 2시간 반을 순삭시키는 브로드웨이 흥행작 ‘알라딘’. 김준수의 변신이 돋보인다. [사진 에스앤코]](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2/01/joongangsunday/20241201134825475xypf.jpg)
올 시즌 최고의 ‘빅샷’은 지난주 개막한 ‘알라딘’이다. 2014년 브로드웨이 초연 이래 전세계 11개 프로덕션에서 2000만명의 관객을 모은 검증된 흥행작.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아주 많다. ‘라이온킹’ ‘아이다’의 계보를 잇는 디즈니 뮤지컬이지만 한층 더 화려한 볼거리와 빈틈 없는 완성도로 브로드웨이 장수 뮤지컬의 위엄을 과시한다. ‘오페라의 유령’으로 국내 뮤지컬 산업화 시대를 연 제작사 에스앤코 답게 ‘대중성 끝판왕’을 들여왔다.
동명 애니메이션(1992)이 원작이지만, 뮤지컬만의 킬링 포인트는 춤이다. 탭댄스·검무·밸리댄스·스틱댄스 등 춤의 향연 속 그 어떤 작품보다 주인공이 땀을 많이 흘린다. 주조역은 노래와 연기 위주, 춤은 앙상블 몫인 여타 뮤지컬과 달리, 주인공 알라딘(김준수·박강현·서경수)이 메인 댄서다. 상반신을 반쯤 드러낸 이 “맨살 조끼 보이”가 리드하는 탭댄스 군무가 압권이다. 특히 최고스타 김준수는 칼군무 속에서도 빛나는 발군의 춤선으로 레전드 아이돌 동방신기의 명성을 재확인시킨다. 자연스럽게 토착화된 유머와 물오른 연기로 객석은 시종 열광의 도가니. 24일 관객 중 상당수가 일본인이었는데, 옆자리 일본인 관객은 “벌써 네 번째 보러 왔다. 준수의 뮤지컬을 보기 위해 돈을 번다. 늘 비극이 많았는데 웃는 얼굴로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이 새로워서 매일 보고 싶다”면서 주요 장면에서 안무까지 따라하며 즐겼다.
2시간 반이 ‘순삭’될 만큼 몰입도를 끌어올린 연출력에 잠시도 한눈 팔 틈이 없다. 별빛 가득한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저 유명한 ‘A Whole New World’를 부르는 마법의 양탄자 씬 등 84회의 일루전과 특수효과가 무대에 흘러넘친다. 수십 차례 막을 여닫는 고전적인 장면 전환을 마법 같은 순간들로 바꾸는 건 완벽한 호흡의 연기와 노래다. 지니(강홍석·정원영·정성화)와 자파·이아고 등 조역들의 활약은 뮤지컬 캐릭터 연기의 교과서라 할 만하다.
‘있는 그대로의 너로 괜찮다’는 뻔한 메시지의 동화지만, “아는 맛이지만 아는 맛이 더 맛있지”라는 지니의 대사에 공감하는 건 어른들. 조바심 내고 달려온 한 해의 끝에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 같은 뮤지컬이다.

올해의 트렌드 ‘경성’을 무대 삼은 대형 신작도 나왔다. 최고의 제약회사를 설립한 기업인 유일한 박사가 극비리에 독립운동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모티브 삼은 ‘스윙데이즈: 암호명A’는 국내 최초 천만 영화 ‘실미도’를 쓴 김희재 작가의 뮤지컬 프로듀서 입봉작으로, 탄탄한 스토리텔링으로 벌써부터 입소문이 자자해 어린 학생 관객도 많다. 지난해 한국뮤지컬어워즈 연출상을 받은 김태형 연출이 젊은 감각으로 다음 세대의 감성에 호소할 만한 무대를 뽑아냈다.
독립운동 소재지만 ‘영웅’식 무장항쟁이 아니라 정보전이라 새롭다. 1945년 미국 CIA 전신인 OSS가 계획했던 ‘냅코 프로젝트’에 잘나가는 기업인이 왜 목숨 걸고 참여했을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일본인을 극악무도한 적으로 규정하는 국뽕 뮤지컬이 아니라, 화해의 시대에 걸맞게 보편적 감성에 호소하는 훌쩍 세련된 K뮤지컬이다.
미국에서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후원하던 사업가 일형(유준상·신성록·민우혁)과 만용, 그들과 대립하는 총독부 형사과장 야스오가 같이 그네를 타고 놀던 소꿉친구 사이라는 설정부터 단순한 이분법을 거부한다. 오히려 악역인 줄 알았던 야스오가 입체적인 캐릭터로 반전의 주인공이 된다. 일본이 아니라 전쟁이 나쁜 것이며, 권력자를 위한 전쟁에 평범한 사람이 희생자라는, 반일 아닌 반전(反戰) 메시지다.
독립운동이 비장한 희생정신으로 하는 당위적인 게 아니라 멋쟁이들의 쿨한 선택이었다는 해석도 돋보인다. 댄디 가이로 설정된 주인공 일형은 수트핏을 과시하며 로맨스를 꽃피우고, 스윙댄스까지 춘다. 독립 자체보다 사랑과 우정을 조명하는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음악도 귀에 꽂힌다. ‘지킬 앤 하이드’ ‘웃는 남자’ 등의 편곡자로 우리 입맛을 잘 아는 브로드웨이 작곡가 제이슨 하울랜드가 만든 음악이다.
![볼거리보다 내면을 비추는 위로의 뮤지컬 ‘틱틱붐’. [사진 신시컴퍼니]](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2/01/joongangsunday/20241201134826302myod.jpg)
또 한 살 나이 먹는 게 두렵다면 14년 만에 돌아온 신시컴퍼니의 ‘틱틱붐’이 좋겠다. 파격과 혁신의 아이콘인 뮤지컬 ‘렌트’ 원작자 조나단 라슨이 1990년 모놀로그 형식으로 선보인 자전적 무대지만, 그가 96년 ‘렌트’ 초연 직전 요절한 뒤 2001년 3인극으로 재정비됐고, 이번 시즌엔 5명의 앙상블을 추가해 대극장 스케일로 확장됐다.
대극장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정글짐을 얹은 회전무대를 배우들이 직접 돌리며 만들어가는 연극적인 무대로, 볼거리보다 ‘틱틱틱’ 시계추 소리로 내면을 건드린다. 주인공을 실시간으로 따라다니는 라이브 영상도 청춘의 불안을 클로즈업한다. 5년 동안 공들인 뮤지컬의 워크숍과 서른살 생일을 일주일 앞둔 ‘유망 작곡가’인 주인공 존(배두훈·장지후·이해준)의 내면은 한마디로 ‘두려움’. 워크숍이 성공해도 평가는 고작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는 말 뿐. 아무 이룬 것 없이 서른을 맞는데, 마케팅 전문가로 성공한 절친 마이클과 안정된 삶을 향해 떠나려는 여친 수잔이 조바심을 부추긴다.
섣부른 희망이 없기에 신선한 무대다. 희망을 줄 거라 예상되는 스티븐 손드하임의 부재중 메시지를 중간에 끊어 버린 채, ‘새장과 하늘, 새는 어떤 걸 택할까’라는 질문으로 막을 닫는다. 조나단 라슨이 ‘렌트’ 개막을 하루 앞두고 가 버렸듯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서른이란 그저 30년 살았다는 것일 뿐, 두려워할 것 없다’는 메시지가 울림을 준다.
![‘지킬앤하이드’에 합류한 김성철(왼쪽)·최재림. 김상선 기자, [사진 오디컴퍼니]](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2/01/joongangsunday/20241201134826648cpdn.jpg)
스테디셀러 뮤지컬의 대명사 ‘지킬 앤 하이드’가 20주년을 맞아 LED 영상을 추가한 업그레이드 프로덕션으로 돌아온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베스트셀러 소설 원작으로, 한 인물 안에 두 인격이 대립하는 구도의 스릴러 뮤지컬 열풍의 원조다. 프랭크 와일드혼 작곡·레슬리 브리커스 작가 콤비가 협업해 1997년 브로드웨이 초연 이래 10여개국에서 공연됐지만, 지킬의 넘버 ‘지금 이 순간’을 전국민이 알 정도로 한국에서 롱런하고 있는 것은 초연 배우 조승우·류정한이 한국 뮤지컬 최초로 ‘전회 매진, 전회 기립박수’를 기록한 이래 최고 배우들의 통과의례가 됐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엔 요즘 가장 핫한 배우 최재림과 넷플릭스 ‘지옥’ 시즌2의 히어로 김성철이 새 지킬로 합류한다.
![5년만에 돌아오는 낭만 뮤지컬 ‘시라노’. [사진 CJENM]](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2/01/joongangsunday/20241201134827512zcqb.jpg)
5년 만에 돌아오는 ‘시라노’는 가슴을 적시는 낭만 뮤지컬. 뛰어난 검객이자 시인이지만 못생긴 외모 때문에 사랑고백을 못하고 연애편지를 대필해 주는 시라노의 슬픈 러브스토리가 객석을 울린다. ‘지킬 앤 하이드’의 프랭크 와일드혼·레슬리 브리커스 콤비가 만든 일본 토호 버전을 2017년 논레플리카 라이선스 방식으로 선보였고, 이번에 대본·음악·무대를 갈아엎은 뉴 프로덕션으로 돌아온다.
동명 영화(1990)에서 제라르 드 파르디외가 강한 인상을 남긴 시라노의 절제된 연기가 관전포인트. 초연 당시 홍광호, 2019 시즌 조형균이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연거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을 정도다. 이번 시즌의 새로운 ‘코 큰 영웅’ 최재림·고은성은 여심을 얼마나 울릴까.
![‘마타하리’의 히로인 옥주현. 초연부터 모든 시즌에 출연했다. [사진 EMK뮤지컬컴퍼니]](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2/01/joongangsunday/20241201134827909qgoe.jpg)
남자 배우 중심으로 돌아가는 뮤지컬 판에서 과감히 여성 서사로 승부하는 K뮤지컬 ‘마타하리’도 네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다. ‘엘리자벳’ 등 유럽 뮤지컬을 소개하던 EMK뮤지컬컴퍼니가 2016년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과 함께 만든 첫 창작물로, 1차 대전 중 이중 스파이 혐의로 총살 당한 아름다운 무희의 이야기다. 초연부터 줄곧 참여한 최고 스타 옥주현과 2022년 마타하리로 뮤지컬 데뷔한 걸그룹 마마무의 솔라가 타이틀롤을 맡았다. 트로트가수로 핫해진 배우 에녹이 남주인공 아르망으로 합류해 팬층이 확대될 조짐이다.
![연극계를 셰익스피어가 점령한 올해 유일한 셰익스피어 뮤지컬 ‘맥베스’. [사진 세종문화회관]](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2/01/joongangsunday/20241201134828456ygvz.jpg)
뮤지컬 상업화가 정점을 찍은 지금, 공공단체의 역할도 주목된다. 세종문화회관 산하 서울시뮤지컬단은 지난해 국내 최초로 셰익스피어 ‘맥베스’의 뮤지컬화에 도전했고, 올해 레퍼토리로 재개발했다. 3개 프로덕션의 ‘햄릿’과 황정민의 ‘맥베스’까지, 셰익스피어가 올 연극판을 휩쓴 가운데 유일한 셰익스피어 뮤지컬이다.
연극 ‘빵야’ 등으로 유명한 김은성 작가의 탄탄한 대본과 뮤지컬 ‘천개의 파랑’ 박천휘 작곡가가 참여해 빠른 전개와 직관적인 넘버, 강렬한 미장센으로 셰익스피어의 고전을 대중적으로 풀어냈다는 평가다. 이번 시즌엔 연출·안무·영상을 모두 바꿨다. 실험적 무대로 주목 받는 신재훈 연출과 ‘스테이지 파이터’에 출연한 스타 안무가 유회웅, 아름다운 영상이 극찬 받은 뮤지컬 ‘이프덴’의 영상 디자이너 송정은이 한층 더 감각적인 무대를 예고한다. 스타 객원 없이 단원들만으로 레퍼토리화한 것도 주목된다. 오로지 작품의 힘으로 승부한다는 얘기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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