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되는 '재건축'·돈 안 드는 '리모델링'…"구축 단지별 방식 달라져야"
"노후 아파트가 500만채에 달합니다. 재건축 규제가 완화됐어도 모든 단지에서 재건축을 할 수는 없습니다. 사업성 검증 없는 재건축 추진은 입주민들에게 재난이 될 수 있습니다."
1기 신도시 재건축 선도지구 발표를 앞두고 재건축·리모델링 정비사업 방식을 둘러싼 갈등과 혼란이 커지고 있다. 관련 전문가들은 재건축에 치우친 정책 지원보다 단지 여건별로 적절한 정비사업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24일 신동우 한국리모델링융합학회(KRC) 회장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건축학부가 공동으로 주최한 '2024 KRC 연례세미나'에서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재건축에 치우친 정책 지원보다는 개별 단지 여건에 맞는 재정비를 유도해야 한다"며 "재건축, 리모델링, 유지보수 등 노후 건축물 수명 연장을 위한 재정비 사업방식을 입주민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에서 리모델링 사업을 마친 구축 아파트단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올해 1월 송파구 송파더플래티넘(오금아남아파트) 입주를 시작으로 이달 강동구 더샵둔촌포레(둔촌현대1차), 내년 3월 잠실더샵루벤까지 입주가 예정돼 있다. 용산구 이촌동 이촌르엘(현대맨숀)도 공사가 진행 중이며 강남구 청담동 르네자이(청담건영)도 지난 9월 이주를 개시했다.
정비사업 방식을 둘러싼 갈등은 최근 들어 커졌다. 올해 정부의 노후계획도시정비법 제정과 서울시 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 변경으로 재건축 규제가 크게 완화되면서다. 종전에 재건축 추진 자체가 불가능했던 구축 단지들도 대부분 재건축 추진을 검토해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해당 구축 단지들은 규제 완화에도 사업성이 부족해 재건축을 추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실정이다.
정비사업을 계획할 때 사업성에 대한 초기 검증 절차가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사업성 분석 없이 막연한 기대감만으로 재건축을 추진할 경우 이후 막대한 비용·시간 피해가 생길 수 있어서다. 신 회장은 "수도권 100여 개 노후 단지들에 대한 리모델링, 재건축 사업성을 다양한 수준에서 분석한 결과, 단지별 사업성 변수, 정비사업의 수요 형태, 그리고 사업 여건의 차이가 컸다"며 "각 단지, 지역에 맞는 정비 방식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 자치구 등 지방자치단체마다 관내 공동주택들이 가지는 사업 여건과 특성을 파악해 현실적인 재정비 지원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신 회장은 주장했다. 이를 위해 민·관·연이 협력해 노후 단지에 대한 정교한 '사업성 지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국내 전문가들은 재건축과 리모델링 등 정비사업에 대한 다양한 방향을 제시했다. 박진철 대한건축학회장은 기조연설을 통해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유럽위원회 등에서 발표하는 주요 정책에는 리모델링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며, "탄소중립시대의 재정비 정책으로서의 리모델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부 정책이 일관성이 있게 운영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부동산 애널리스트인 채상욱 커넥티드그라운드 대표는 주택정책의 역사 속 재건축과 리모델링 비교를 통해 "2022년 윤석열 대통령 공약에서는 재건축-리모델링이 동등한 수준으로 발표됐다가 지난해 9월, 노후계획도시특별법 발의 때부터 정책기조가 재건축으로 선회했다"며 "주택의 생애주기와 수명을 고려한 정비사업의 레벨링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때 리모델링 시장을 혼란에 빠뜨린 법제처의 1층 필로티 수직증축 해석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점의 분석도 제시됐다. 이상현 단국대학교 교수는 "리모델링에 적용되는 필로티는 일반 다른 건물의 필로티와는 구조적으로 다른 개념"이라며 "구조안전을 검토할 때는 단순 증가 층수가 아닌 증가하는 하중의 정도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4층에서 7층으로 수직증축 할 경우에는 하중이 75% 증가하지만, 15층에서 16층으로 1개 층을 올릴 경우에는 건물의 하중이 6.6%(1/15)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1개 층 수직증축 시에는 벽체 축력비 변화는 그 수치가 매우 미미하다"며 "구조적으로 문제없이 증축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언급했다.
한편 한국리모델링융합학회는 지난해 8월 국토교통부 설립허가를 받은 비영리법인이다. 노후 건축물 리모델링과 관련된 경제, 도시, 부동산, 금융, 법제도, 가치평가, 건축 등 관련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됐다.
이민하 기자 minhar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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