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 신도시 이주 단지 안 짓는다… “주변에 공급 늘려 해결”
수도권 1기 신도시(분당·일산·평촌·중동·산본)에서 가장 먼저 재건축을 추진하는 ‘선도지구’ 발표가 임박한 가운데, 정부가 이주민 전용 단지나 주택을 공급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 대신 인근 지역에 아파트 공급을 늘려 이주 수요를 자연스럽게 흡수하는 방식으로 전·월세 시장 불안에 대비한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26일 “1기 신도시 재건축은 규모가 방대해 이주민을 위한 전용 단지를 공급하려 했지만, 사업 진행 상황에 따라 이주 단지에서 장기 공실이 발생할 수 있어 비효율적이란 지적이 많았다”며 “전용 단지뿐만 아니라 이주민 전용 주택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1기 신도시 재건축 이주 대책을 준비하는 정부의 오락가락하는 행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1월 발표한 이주민 전용 단지 공급 계획이 백지화되는 등 올해에만 수차례 정책 방향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다음 달 발표할 이주 대책 최종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자체가 공개적으로 반발하는 모습까지 나오는 등 “정책의 디테일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건축 이주민 전용 주택, 없던 일로
국토부는 이달 중 1기 신도시 5곳에서 최대 3만9000가구 규모의 선도지구를 발표한 뒤 12월 종합 이주 대책을 공개할 예정이다. 국토부가 목표로 제시한 2030년부터 입주가 이뤄지려면 선도지구 아파트 주민들은 2027년 이전에 이주해야 한다. 이후에도 해마다 1기 신도시에서만 2~3만 가구씩 이주민이 발생한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가뜩이나 2025~2026년부터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 입주 물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최악의 전세난이 벌어질 수 있는데 정부는 오락가락하는 행보로 시장에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국토부는 올 초 ‘1·10 부동산 대책’에서 “2025년부터 신도시별로 이주 단지를 한 곳 이상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1기 신도시 이주민 전용 주택 단지를 만들어 제공하고서, 재건축 사업이 끝나 이주민들이 새 아파트로 입주하면 공공 임대나 공공 분양 아파트로 전환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지난 5월엔 이주 단지 관련 내용이 빠지고 “전세 시장 상황에 따라 신규 주택 공급을 확대한다”는 원론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국토부는 “1기 신도시 주민들이 임대 아파트 단지로 입주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월엔 “노후 공공 임대 아파트를 재건축해 1기 신도시 재건축 이주민에게 제공하겠다”고 했고, 최근 선도지구 선정을 앞두고 “별도의 이주 주택은 없고, 충분한 주택 공급으로 이주 수요를 흡수하겠다”고 방침을 수정한 것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정부가 이주 대책을 여러 번 수정하면서 스스로 정책 불신을 가져왔다”며 “30년 넘게 도시 인프라를 보강한 1기 신도시에는 유휴 부지가 많지 않아 재건축 이주민을 흡수할 충분한 주택 공급이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분당 이주 대책 놓고 LH-성남시 ‘혼선’
최근에는 분당 신도시 이주 대책을 놓고 LH(한국토지주택공사)와 성남시가 마찰을 빚으며 혼란을 키우기도 했다. 이한준 LH 사장은 지난 21일 기자간담회에서 “성남시 등 관계 기관과 협의해 LH 사옥을 포함해 오리역 일대 부지를 선도지구 이주 대책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성남시가 ‘제4 테크노밸리’ 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오리역 일대에 이주 단지가 조성될 수 있다고 밝힌 것이다. 이에 성남시가 “LH 사장의 발언은 사실이 아니며, 오리역 일대는 이주 단지 예정지로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반박 자료를 냈다. LH도 “오리 역세권에 이주 단지나 이주 주택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인정했지만, 지역 주민들 사이에선 “정부와 LH, 지자체가 서로 소통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1기 신도시 재건축 과정에서 불가피한 전·월세 시장 불안을 막으려면 정밀한 수요·공급 예측을 바탕으로 정부가 지금까지 발표한 수도권 주택 공급 대책의 속도를 올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광석 리얼하우스 대표는 “시장에 주택 공급을 늘려 수급 조절을 하겠다는 정부의 방향성은 타당한 측면이 있다”면서 “다만, 3기 신도시 등 정부의 기존 주택 공급 방안이 차질을 빚는 만큼 얼마나 속도감 있게 물량을 늘릴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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