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삼의 인생 이모작…한 번 더 현역 <64> ㈔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

고영삼 인생이모작포럼 공동대표 2024. 11. 26. 18:57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인생이모작은 인생의 한 끝점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인생길이다.

속 썩이던 남동생이었기에 한동안 소식도 모르고 지내기도 했는데, 그녀의 인생이모작의 꿈, 올레길 구상을 듣고 전폭적인 해결사가 되어주었단다.

"모든 인생은 새로운 여정을 시작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우리 영혼은 더 높은 수준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그녀가 함경북도 무산까지 피스올레길을 내는 인생여정에는 따뜻한 영혼이 이미 함께하고 있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쟁·속도의 사회 탈출… 제주 ‘치유의 길’ 내자 韓 걷기열풍

- 25년 기자생활에 지쳐 사직서
- 무작정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
- 분노 옅어지고 영혼 위로 받아

- 서귀포로 돌아와 ‘올레길’ 구상
- 동생과 함께 자력갱생으로 완성
- 북한까지 이어진 길 내는 게 꿈

◇ 서명숙의 인생이모작 귀띔

- 기회의 여신은 종종 마주 대하기 힘들 만큼 끔찍한 얼굴로 다가온다

서명숙(뒷줄 가운데 마이크) ㈔제주올레 이사장이 지난 7일 ‘2024 제주올레걷기축제’ 개막식에서 인삿말을 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규슈올레, 미야기올레, 대만천리길 등 해외 트레킹 단체 대표들도 함께했다.


인생이모작은 인생의 한 끝점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인생길이다. 그러나 이 길은 일찍이 존재하지 않던 길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에 이토록 길게 산 시대가 없었기 때문. 이번에는 걷는 길을 만들어 사람들을 치유하고 또 인생길의 전망을 보여주는 이를 만났다. 중국의 대문호 루신은 말했다.‘길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게 길이 된다.’중의적인 의미의 이 길을 만든 이를 만나려 제주 서귀포를 방문했다.

-최근 올레길 축제를 개최하셨지요? 어떠셨어요?

▶지난 7일부터 3일간 ‘2024제주올레걷기축제’을 개최했습니다. 국내외에서 1만여 명이 오셨는데, 올해는 일본 대만 이탈리아 스웨덴 등 22개국에서도 500여 명이 참가했어요.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했었고 여행객들이 길 위에서 행복해하시고 자연과 문화를 즐기셔서 감사했습니다.

이번에 만난 이는 ㈔제주올레 서명숙(67) 이사장이다. 제주 올레길을 직접 구상하고 만든 ‘치유길’의 대모(代母)다. 전국 각 지자체의 많은 치유 길은 실상 제주올레길에서 힌트를 받은 것이니 말하자면 대한민국 치유 길의 원형을 만든 이다.

-부대행사도 많았다더군요,

▶어린이 합창단과 퓨전 국악밴드의 공연으로 개막했어요. 코스별로 연극 포퍼먼스와 마을주민들의 합창, 버스킹과 전통놀이 체험 과정도 있었습니다. 마지막 날은 이주여성들이 참여하여 의미를 더했었어요.

-어떻게 그러한 구상을 하셨나요?

2006년 9월 산티아고 길 중 메세타 고원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서명숙 이사장.


▶사실 혼자 걸어서 사색하고 위로받고 다시 기운을 충전하고 가는 그런 길이 길의 본질이지만 그 동시에 제주 음식과 문화를 만끽하려면 축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몸국이나 고기국수 같은 제주만의 전통음식을 야외에서 즐기고 길 위에서 해녀 공연도 보게 하자는 생각이었죠.

-저는 오늘 미팅 전에 1번 코스를 걷고 왔습니다만, 제주 올레길은 총 몇 개 길인가요?

▶총 27코스 437㎞입니다. 1코스는 성산일출봉 앞의 시흥에서 광치기 해변까지 약 15㎞입니다. 제주올레는 모두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습니다만 첫 코스인 만큼 매우 아름답죠.

-보면 볼수록 너무나 큰 규모인데 제주시와 분담은 어찌하고 있나요?

▶제주시와 완전 별개입니다. 2007년부터 5년 4개월간의 길을 낼 때부터 지금까지 완전히 자력갱생으로 합니다. 31명의 직원은 완전히 체계화되어 활동하는데 자립을 위해 음식점 숙박 여행사, 그리고 디자인 회사와 기념품 제작판매사를 하고도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재정의 가장 큰 부분은 길에서 치유와 행복을 체험한 올레꾼들과 기업의 자발적 후원입니다. 올레길 해설사를 양성하는 아카데미와 자원봉사자들도 탄탄하구요. 그러다 보니 일본이나 대만 유럽에도 많은 걷기 단체들이 있는데, ‘걷기 동네’에서는 우리가 ‘구글’이라고도 해요(웃음).

‘걷기 동네’에서 ‘구글’이라니 놀랍지만 어쨌든 제주올레길은 이미 이 시대 치유 길의 표준이 되었다. 올레에 중독된 사람을 가리키는 ‘올레폐인’이란 용어가 있는가 하면, 올레길에 매혹돼 아예 제주도로 이사하는 ‘올레이민(移民)’이 있고, 올레길을 계속 걷고 싶어 몸살한다는 ‘올레신드롬’이란 용어까지 회자될 정도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올레길에 열광할까요? 이사장님은 젊은 시절 무엇을 하셨나요?

▶제주올레길의 매력이 있지만 이 시대의 삶이 그만큼 고단하기 때문일겁니다. 경쟁과 속도에 지친 사람들, 생존하기 위해 밤낮 애쓰는 사람들이 어디에선가 위로받고 싶은 거죠. 저는 25년 가까이 기자로 활동했습니다. 월간지를 거쳐 40대 중후반에는 시사저널 편집장과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을 하며 열정을 쏟았어요. 그러나 막바지에는 기자 생활에 지쳤고 넌더리가 나더군요. ‘이렇게 바닥난 느낌으로 꾸역꾸역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었어요. 고심 끝에 사표를 던져 버렸죠. 남편과 친정어머니, 동료들의 반대가 많았어요. 하지만 나만을 위한 쉼표가 정말 절실했던 때였습니다. 그러니 어떤 준비도 하지 않고 나와버린 거였어요.

흔히들 인생이모작은 출발 전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탈출하듯 일모작을 그만두는 것도 다이나믹 코리아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풍경이다.

-그러셨군요. 그렇게 해서 어떻게 하셨어요?

▶사표 내기 전 3년 정도는 심신이 지치면 걷기도 하고 걷기 관련 책을 보았었어요. 그러다 도보여행가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소개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주목했던 적이 있었어요. ‘언젠가는 그곳도 가보리라’ 하고 생각하기도 했었죠. 그런데 어느날 저는 저를 옥죄던 직장에서 나오게 되자 그곳을 떠올렸고, 49세, 2006년 9월 혼자서 36일간 걷는 800㎞의 먼 길을 출발해 버렸어요.

-그러면 제주올레를 미리 생각하고 그곳을 다녀오신 게 아니군요.

▶네, 영광스럽게 ‘순례자’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를 만나기도 한 그곳에서 지친 영혼을 위로받으며 걸었을 뿐이에요. 앞으로 어떻게 살까를 생각하기도 했었어요. 아름다운 대성당이 있는 부르고스를 지나 레온까지 181㎞의 대평원을 걸을 때는 전쟁하듯 지낸 시절이 떠올려지며 미웠던 사람들에게도 분노가 옅어지더군요. 강물 위 종이배처럼 흘러갈 일에 왜 그리 마음 상하고 애를 끓였을까. 가장 아끼고 소중히 여겨야 할 나에게 왜 그리도 무심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걸었죠. 그런데 어떤 운명적 만남이 있었죠.

-운명적 만남요?

▶도보 여행 33일째에 헤니라는 영국인 여행자를 만났어요. 많은 이야기 끝에 그녀가 말하더군요. 서울 부산을 15일씩 두 번이나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한국은 크레이지 칸추리 같더라. 너무 바쁘고 정신없고 오버하더라.” 그리곤 뜨겁게 제안하더군요. “우리가 지금 이 길에서 위로받고 너무 행복하니 이거는 행복한 야외종합병원이야. 이걸 우리 각자 나라로 돌아가서 만들자”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걷다 보면 심신이 치유되죠. 근심 걱정이 없어지고 긍정적인 생각이 들어오는데, 저는 제주도에 이런 치유길 건설을 촉구하는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그 말을 들었어요. 머리에 번개를 맞은 기분이었죠. 그래서 결심했죠. 만들어져 있는 길만 길이 아니다. 내가 길을 내자.

-그래도 실제 길을 만들 때 어려움이 많았지요?

▶그 다음 해에 31년의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 서귀포로 왔습니다. 그런데 치유 길에 대한 경험과 정보가 없던 시절이었죠. 지역민 공무원 지주들도 그렇고 관광업계를 설득하는 일 등 첩첩산중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주 자연이 주는 위안이 너무 컸고. 이미 퇴직을 했기에 시간이 많았던 저는 동생과 함께 설득하고 또 설득해서 추진했어요. 그리곤 2012년, 5년 4개월 만에 완성했어요.

-쉽지 않았던 일을 성공한 요인은 무엇일까요?

▶돌이켜보면 일모작의 자산도 사라져 버리지 않았어요. 기자 생활 때 맺은 각종 네트워크가 올레길의 구축과 홍보에 엄청난 동력이 되었어요. 그리고 지금은 세상을 떠난 우리 동생 동철이가 정서적으로, 그리고 대외적으로도 큰 역할을 했죠. 건달 동철이 있었기에 올레길은 가능했어요. 아! 저기 저 동박새, 우리 동철이가 너무나 좋아하는 새입니다.

그녀는 제주의 유명한 건달이었던 동생이 귀향한 누나의 꿈을 이루도록 돕는 이야기를 길게 했는데, 그때 마침 동박새가 우리 주위에 있던 동백꽃 나무에 한참 앉았다 갔다. 그녀는 한참 동안 눈물을 지었다. 속 썩이던 남동생이었기에 한동안 소식도 모르고 지내기도 했는데, 그녀의 인생이모작의 꿈, 올레길 구상을 듣고 전폭적인 해결사가 되어주었단다.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요?

▶저처럼 지친 사람들에게 행복한 치유공간을 제공하고 싶었고, 또 고향 사람들에게 소득의 기회와 함께 열린 세계를 보이고 싶어 뛰어다녔습니다. 앞으로는 제주올레길을 육지로 이어 북한 땅 함경북도 무산까지 연결하고 싶습니다. 통일된 나라의 치유길인거죠. 벌써 최남단 올레길인 6코스에 ‘피스올레’ 표지판을 세워두었어요. 사실 별세하신 아버지가 무산 출신입니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시절 얼음이 꽁꽁 어는 겨울철이면 집 근처 두만강에서 썰매를 타고 중국을 왕래하셨다는 이야기를 술만 마시면 하셨어요. 그때 저는 동생과 함께 ‘아버지 또 뻥 치시는구나’하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산티아고 길에서 생각해 보니 뻥이 아니겠더군요. 통일되면 피스올레길 만들어 가서 ‘아버지, 뻥 치기로 생각한 거 미안해요. 이렇게 국경까지 올 수 있는 거였군요’라고 사과하고 싶어요.

치유길의 대모 서명숙은 동생 이야기로, 또 부친 이야기로 인터뷰어를 울렸다. 인생2막 때는 이렇게 살아내느라 제쳐두었던 옛 가족인 부모와 혈육도 다시 붙여준다. 영혼이 따뜻해지는 세월이다. 경배할 만한 세월이다. 그녀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우연히 만나 사진도 찍고 TV에 함께 나왔던 파울로 코엘료는 ‘연금술사’에서 말했다. “모든 인생은 새로운 여정을 시작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우리 영혼은 더 높은 수준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그녀가 함경북도 무산까지 피스올레길을 내는 인생여정에는 따뜻한 영혼이 이미 함께하고 있다.

※특별후원: BNK 금융그룹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