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마을 대각선 카페…‘따로 또 같이’가 만든 마당의 여유
작은 땅에 카페·펜션 퍼즐 블록처럼 배치
‘환대하는 정원’·‘모래놀이 정원’ 등 조성
양평 ‘유연재’…주택단지와 통일성 있게 설계
어느날 한 부부의 연락을 받았다. 서울에서 맞벌이를 하는 30대 부부는 치열한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연고가 없는 작은 바닷가 마을에 정착하겠다고 했다. 이미 철저한 사전조사를 마친 부부는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에 위치한 대지면적 189㎡ 땅 위에 건물을 짓고 싶다며 건축물을 의뢰했다. 마름모꼴 토지 위에 펜션과 카페를 함께 배치해달라고 했다. 아이들과 함께 방문한 가족이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렇게 설계된 건축물이 ‘스테이 토성당(土城堂)’이다. 지역명 ‘토성(土城)’에 ‘집 당(堂)’을 붙여 이름을 지었다. 연면적 75㎡ 규모 작은 건물을 펜션과 카페 두 채로 나눠 어긋나게 배치하고, 그 사이에 빈 땅을 일종의 완충공간으로 활용해 작은 마당과 정원을 만들었다. 인근 봉포해수욕장을 따라 걷다보면 정겨운 민박집과 음식점을 지나 건물을 마주하게 되는데, 아담하지만 남다른 존재감을 갖춰 시선을 끈다. 일부 방문객들은 “작은 성당 같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이 건축물을 설계한 건 ‘사무소아홉칸’의 장정우·박경미 공동 소장이다. 이들 역시 부부 건축사로, 서울에서 근무하다 만나 2020년 강원도 춘천시에 건축사사무소를 설립했다. 원래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 정착하려는 건축주 부부의 마음을 잘 알기에 심혈을 기울여 스테이 토성당을 설계할 수 있었고, 그 결과 ‘2024 강원건축문화제 건축문화상 우수상 (비주거부문)’을 수상했다.
박 소장은 “보통 건축주가 프로젝트를 의뢰할 때 이상향이 있다 보니 건물을 크게 짓고 싶어한다”며 “건축주는 1·2층으로 구성된 일체된 건물을 생각했으나, 방문객이 오가는 카페와 사생활이 보호돼야 하는 숙박시설의 성격이 다르다고 봤다”고 말했다. 이어 “건물을 비용·효율만 고려해 하나로 설계하기보다 카페동과 숙박동으로 분리해 구성하는 것이 관리 측면에서 유리하고, 공간을 입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건축주에게 연면적 75㎡ 규모 작은 건물을 제안하며 내심 걱정했지만 흔쾌히 수락했다”고 말했다.
장 소장도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마름모꼴 땅에 카페와 숙박시설을 적절하게 배분해 구성하는 것이었다”며 “마치 퍼즐 게임을 하듯이 퍼즐 블럭을 다양하게 배치해 여러 경우의 수를 검토해본 후 최종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박 소장은 “카페를 대지의 모퉁이 부분에 틀어서 배치해 진입로를 만들었다”며 “일자로 세우는 것보다 공간의 입체감이 강조되고, 마당이 밖으로 노출되지 않아 숙박객의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방문객이 해변을 따라 토성로 안쪽 골목길을 걷다 보면 아연으로 도금된 담장을 먼저 접한 후 작은 벤치를 마주한다. 카페 진입로 우측에 있는 벤치는 지나가는 카페 방문객이나 동네 주민 등 누구나 편하게 쉬어갈 수 있는 장소다. 카페 공간은 숙박공간과 비교해 작은 편이지만, 큰 창을 낸 후 중앙에 긴 테이블과 조명을 설치해 방문객들이 한눈에 카페임을 알아볼 수 있게 했다.
작은 마당과 정원도 있다. 첫 번째 정원인 ‘환대하는 정원’은 방문객이 진입하면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여유 공간이다. 해변에서 물놀이를 한 후 모래를 정리하거나 자전거를 보관하는 장소다. 두 번째 정원인 ‘모래놀이 정원’은 아이들이 모래놀이를 하며 쉬어갈 수 있는 삼각형 모양의 공간이다. 펜션 내부에서도 창밖의 정원에 심어진 풀꽃을 바라보며 여유를 즐길 수 있다.
펜션 현관에 들어서면 유리블록으로 연출한 벽면과 벤치가 있다. 박 소장은 불투명한 유리블록을 사용하면 한 번 걸러진 빛이 실내에 은은하게 퍼질 수 있게 해 이용객의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긴 복도를 따라 걸어가면 정면에 거실 겸 주방이 위치해있다. 침실은 4인 가족이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도록 구성했고, 침실에서 물놀이 공간이 마련된 욕실을 지켜볼 수 있다.
박 소장은 “이 펜션의 주요 고객층은 아이를 둔 가족이라고 판단했다”며 “부모가 침실이나 거실에서 아이가 욕실에서 물놀이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쉴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했다”고 말했다. 장 소장은 “물놀이 욕실 창 너머 이웃집엔 할머니가 운영하는 오래된 숙박시설의 담장이 보인다”며 “그 모습이 재미있어 담장을 배경으로 풀꽃 등 정원의 식재를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장정우·박경미 공동 소장은 지속적으로 작업물의 방향성을 찾아가는 단계에 있다고 말한다. 현재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건축물을 추구한다. 박 소장은 “처음 설계를 시작했을 땐 색상, 선 등을 맞춰 미니멀하게 완성해야겠다는 강박이 있었다”며 “하지만 어느 순간 이렇게 만든 작업이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소중하고 소박한 것들을 찾고자하는 방향에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두 소장은 편안하고 따뜻한 집을 꿈꾸는 건축주와 인연이 깊다. 사무소아홉칸의 대표 프로젝트 중 하나인 ‘유연재(裕軟齋)’도 자녀를 둔 한 부부가 의뢰한 주택이다. 271㎡ 대지 위에 지어진 94㎡ 규모 2층 주택은 ‘여유로움과 부드러움이 머무는 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건축주는 “경기 양평의 한 주택단지에 정갈한 집을 짓고 싶다”고 연락했다. 두 소장은 건축사사무소가 강원도에 있어 작업이 어렵다고 거절했지만 건축주의 설득에 결국 프로젝트를 맡게 됐다.
건축주가 선택한 부지는 경기도 양평군 공흥리에 위치한 한 주택단지다. 건축주 부부는 전국 곳곳을 여행하다 우연히 이 주택단지를 발견했고, ‘아이 키우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에 도시 생활을 접고 양평으로 이사했다. 박 소장은 “이 마을은 아이를 둔 부모들이 모여 하나의 커뮤니티를 형성한 곳”이라며 “각자 재능을 갖고 있는 부모가 선생님이 되기도 하며 서로 교류가 활발하다”고 말했다.
이 주택단지가 특별한 또다른 이유는 ‘통일성’에 있다. 장 소장은 “마스터플랜을 하면서 개발한 주택단지로, 모든 주택의 외장재와 지붕 색상 등이 통일돼 있었다”며 “건축주 역시 주택의 통일성을 지킨다는 조건으로 계약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새로 지은 집이 주변 집들과 잘 어우러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금속 지붕을 사용하고 벽돌로 외벽을 마감했다”고 설명했다. 유연재는 가장 늦게 지어진 주택 중 하나지만, 이질감 없이 주변 환경에 녹아든다.
건축주의 요구 사항 중 하나는 “정갈한 박스 형태의 집”을 지어 달라는 것이었다. 이 주택단지엔 박공지붕(책을 엎어놓은 모양의 지붕)으로 된 주택만 있어 건축주의 취향을 반영하면서도 인근 주택과 화합된 모습으로 보이도록 설계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장 소장은 “경사 지붕과 박스 형태의 볼륨감을 모두 갖고 있으면서도 주변 박공지붕 집들과 어울리도록 하는 게 과제였다”고 말했다.
이어 장 소장은 “결국 상자의 한쪽 끝을 눌러 만든 모양에서 착안해 지붕골이 경사져 내려오도록 설계했다”며 “앞쪽에서 주택을 바라보면 경사 지붕이 부각되고, 측면에서 바라보면 네모난 상자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지붕의 형태에 따라 집 내부의 천장도 자연스럽게 변하는 형태”라며 “목구조 지붕엔 공기가 통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데, 천장의 눌린 부분이 자연스럽게 이런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이 집은 에너지 절감형 주택인 ‘패시브 하우스(passive house)’이기도 하다. 주택단지에서 유일하게 패시브 인증을 받았다. 장 소장과 박 소장이 패시브 건축 협회 교육을 이수했던 시기와 맞아떨어지면서 패시브 주택의 원칙을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박 소장은 “과거엔 에너지 효율을 높여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부분이 강조됐지만, 최근엔 건강하고 쾌적한 집을 설계·반영해 하자가 없는 집을 짓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패시브 인증 주택”이라고 말했다.
박로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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