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고래싸움’된 공사비 갈등···KT 쌍용건설 이어 한신공영과도 법정 다툼
KT도 부동산시행 하면서
쌍용건설과 송사 이어
한신공영에도 소송제기
“물가변동 반영 정당”
대법원 건설사 손들어줘
곳곳서 소송전 확대 조짐
KT가 쌍용건설에 이어 한신공영과도 법정 다툼을 시작하면서 건설사들과의 공사비 갈등이 전면전 양상으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이번 소송들의 핵심 쟁점인 ‘물가변동 배제특약’을 두고 최근 대법원이 건설사 손을 들어주면서 곳곳서 송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19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KT의 자회사인 KT에스테이트는 지난 6월 한신공영을 상대로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한신공영 측이 주장하는 추가 공사비를 지급할 의무가 없음을 법원으로부터 확인받고자 한 것이다. 이에 한신공영이 반소를 제기하면서 지난 13일 첫 변론기일이 진행됐다.
양측의 갈등은 부산 초량 오피스텔 개발사업을 두고 시작됐다. 당초 약 520억원에 계약된 공사였으나 한신공영이 140여억원의 추가 공사비를 요구하면서 분쟁이 발생했다. KT에스테이트는 도급계약서상 ‘물가변동 배제특약’을 근거로 추가 지급 의무가 없다는 입장이다.
물가변동 배제특약이란 발주자가 시공사와 도급계약을 체결할 때 계약서에 반영한 ‘물가 상승분을 공사비 증액에 반영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의미한다. KT에스테이트는 “계약서에 명시된 내용이므로 다툼의 여지가 없다”며 “사안의 명확한 해소를 위해 법원의 정당한 판결을 받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한신공영은 예상을 뛰어넘는 원자재 가격 상승 부담을 건설사가 모두 떠안는 것은 불공정 거래라고 주장한다.
이번 소송은 지난 5월 KT가 쌍용건설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과 같은 맥락이다. 쌍용건설은 지난 2020년 967억원에 수주한 KT 판교사옥 공사와 관련해 171억원의 추가 공사비를 요구했고, KT는 마찬가지로 물가변동 배제특약을 이유로 이를 거부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KT는 현재 다른 건설사들과도 유사한 갈등을 빚고 있다. 롯데건설은 KT 부지가 포함된 광진구 자양1재정비촉진구역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롯데건설은 1000억원대의 공사비 증액을 요구했지만 발주처인 KT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양1구역 정비는 KT가 보유한 구 전화국 부지 일대 50만5178㎡를 재개발하는 사업으로 전체 사업비 규모가 1조원을 넘어서는 프로젝트다. 현대건설 역시 KT 광화문 웨스트사옥 리모델링 공사와 관련해 300억원대 공사비 증액을 놓고 KT와 이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KT 관계자는 “쌍용건설의 요청에 따라 공사비 조기 지급과 설계 변경에 따른 일부 공사비 증액, 공기 연장의 요청을 수용했다”며 “이외 다른 사업은 공기에 맞춰 문제없이 공사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법원은 지난 8월 KT와 쌍용건설의 소송에 대해 조정을 권고했으나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조정은 성사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KT에스테이트가 한신공영과도 법적 다툼을 시작하면서 KT의 소송전선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건설사들은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전염병이나 전쟁으로 인한 인건비·원자재 가격 급등은 계약자가 예측할 수 없는 불가항력 요소라고 주장한다. 천재지변으로 발생한 공사비 증액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집계하는 건설공사비지수는 지난 9월 기준 130.45로 2020년 1월 대비 30% 이상 상승했다. 이전 5년간(2015년 1월~2019년 12월)의 상승률(15%) 대비 2배 수준이다.
법조계에서는 건설사와 KT의 공사비 지급 판단의 핵심은 ‘현저한 사정 변경’이 발생했느냐에 달렸다고 보고 있다. 공사비 상승의 원인이 변칙적이고 불가항력적 요인이었다는 점이 인정된다면 건설사가 부당하게 불이익을 받았다고 인정받을 수 있다는 취지다.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5항은 ‘건설공사 도급계약의 내용이 당사자 일방에게 현저하게 불공정한 경우 그 부분에 한정해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5항 1호에 따라 ‘경제상황의 변동에 따라 발생하는 계약금액의 변경을 상당한 이유 없이 인정하지 아니하거나 그 부담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경우’ 물가변동 배제특약이 무효가 될 수 있다.
특히 그동안 계약준수를 강조하며 물가변동 배제특약의 유효성을 인정해왔던 법원에서도 예상을 뛰어넘는 원자재 가격 상승 부담을 건설사 등 수급인이 모두 떠안는 것은 불공정 거래라고 보는 판결이 최근 나왔다. 지난 4월 대법원은 부산의 한 교회와 시공사 간 소송에서 물가변동 배제특약이 무효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시공사의 귀책사유 없이 공사가 지연된 경우 증액된 공사비를 시공사가 부담하는 건 불공정하다는 판단이다.
김용우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해당 대법원 판결은 공사 지연에 발주자의 책임이 있었던 건으로 확대해석하기엔 무리가 있다”면서도 “물가변동 배제특약에 대한 법원의 달라진 시각을 보여준 판결이라는 점에선 의미있다”고 말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물가변동 배제특약을 무효로 하는 판결 기조가 과도하게 확대되면 발주처를 위축시켜 오히려 건설산업이 위축될 수 있다”면서도 “이번 대법원 판결로 시공사 측에선 천재지변으로 인한 공사비 상승에 대한 리스크 감소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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