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못 갚아 경매로 내몰리는 서울·경기 아파트 10년래 ‘최다’
(시사저널=노경은 시사저널e. 기자)
대출을 못 갚아 경매행을 하게 된 수도권 아파트가 최근 10년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또 경매물건은 큰 폭으로 증가했지만 낙찰율이나 낙찰가율은 두드러지게 상승곡선을 보이지 않아 매물이 쌓여가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주택시장 불확실성 확산과 함께 매수심리 악화가 시작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경·공매 데이터 전문기업 지지옥션에 따르면, 10월 전국 주거시설 경매 진행 건수는 3493건을 기록했다. 이는 직전 달인 9월의 2933건 대비 19.1% 증가한 규모다. 2020년 11월(3593건) 이후 3년11개월 만의 최다 건수 기록이다. 9월 추석 연휴로 인해 경매 일정이 미뤄진 영향도 있지만 신건 유입량 증가로 전국의 경매 진행 건수가 큰 폭으로 늘어났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부동산 시장이 좋았던 2021년에는 경매로 넘겨졌다가도 매매시장이 워낙 좋아 경매를 취하하고 다시 매매시장에서 파는 경우도 많았다"며 "반면 지금은 매매시장에서도 거래가 안 되다 보니 경매에 진입했다가 취하되는 물건도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매물은 급증했지만 매수세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경매개시 물건 가운데 매각이 이뤄진 비율을 뜻하는 낙찰률은 40.0%로 9월(36.7%)보다 3.3%포인트 상승했고, 낙찰가율은 전달(86.3%) 대비 0.9%포인트 오른 87.2%에 그쳤다. 심지어 평균 응찰자 수는 전달(6.6명)보다 0.5명 줄어든 6.1명으로 집계됐다.
고금리에 영끌족 주택들 줄줄이 경매행
침체된 지방 주택시장의 수치까지 합쳐진 전국 데이터는 그렇다 쳐도 올 한 해 뜨거운 신고가 릴레이를 보여준 서울 경매시장조차 주춤하는 모양새다. 서울 아파트 경매 진행 건수는 380건으로, 2015년 4월(41건) 이후 처음으로 최다 건수를 기록했다. 한 달 전인 9월(169건)에 비해서는 무려 2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서울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경기도 아파트 경매 진행 건수도 809건으로 2014년 12월(845건) 이후 약 10년 만에 최다 건수를 기록했다.
통상 경매 절차는 경매개시 결정, 감정평가명령, 배당요구 신청기간, 채권 및 채무자 통지 절차를 거쳐 1회 차 매각기일을 잡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일반적으로 감정평가가 이루어진 후 1회 차 매각기일이 잡히기까지 최소 6개월에서 길게는 1년 가까이 소요된다. 이처럼 경매는 부동산 시장의 후행지표 성격을 띠기 때문에 지난해 말부터 올 상반기까지 금리가 높았던 시기에 대출이자를 연체하거나 압류된 물건이 증가하면서 경매물건이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매물은 쌓여가고 있지만 시장 전반의 반응은 싸늘하다. 서울의 아파트 낙찰률은 41.3%로 전달(45.6%)보다 4.3%포인트 떨어졌다. 노·도·강(노원구·도봉구·강북구) 등 외곽지역 아파트 위주로 두 번 이상 유찰되는 사례가 증가하면서 낙찰률 하락에 영향을 끼쳤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지난 9월부터 시행된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규제와 은행권 대출 한도 제한 등 정부의 가계대출 조이기 정책도 낙찰률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이가 늘어나면서 경매시장까지 타격을 받는 것이다. 대출 한도는 낮아졌고 아파트 거래량과 매매가격 상승률까지 축소되면서 실수요자들의 매수 움직임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일례로 서울 노원구 상계동 불암현대아파트 전용 84㎡ 물건은 지난 9월 감정가 6억9200만원에 나왔으나 유찰됐다. 해당 단지는 당고개역 도보 5분거리, 초등학교 도보 2분거리, 불암산 산책로 등 정주 여건이 우수한 데다 물건도 로열층에 위치한다는 장점에도 주목받지 못했다. 이후 한 달 후인 10월말에는 감정가에서 약 1억5000만원가량 낮아진 5억5360만원에 경매가 진행됐으나 역시 주인을 찾지 못했다. 두 번의 유찰을 겪은 해당 물건은 12월초 최초 감정가에서 2억5000만원가량 낮아진 4억4200만원에 세 번째 매각을 진행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부동산 시장 침체와 고금리를 버티지 못한 아파트가 늘고, 유찰되는 물건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의 대출 규제로 주택 매수세가 위축된 가운데 고금리에 이자를 갚지 못해 경매에 부쳐지는 아파트가 당분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서울 외곽지역에서는 유찰되는 물건도 증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매시장에서도 양극화 두드러져
서울 전역 모두가 침체된 분위기를 보이는 건 아니다. 10월23일 열린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6단지 아파트 경매물건에는 9명이 응찰하면서 감정가(19억5000만원)보다 5억원 이상 높은 25억2600만원에 매각됐다. 이 단지는 이달 중순 사업시행인가가 남에 따라 시공사 선정 절차를 밟게 된다. 대치동 한보미도맨션 경매에도 13명의 응찰자가 몰리면서 감정가(34억1000만원)보다 높은 39억5521만2000원에 매각되면서 낙찰가율 116%를 기록했다.
이처럼 강남권에서는 감정가를 넘어서는 낙찰 사례도 쉽게 찾을 수 있다. 10월 서울에서 낙찰가율 100%를 넘긴 경매 48건 중 절반에 해당하는 24건이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에서 나왔을 정도다. 특히 낙찰가율 상위 10위권에 강남 3구 아파트는 8건이나 이름을 올렸다. 특히 강남 지역에서도 재건축 아파트와 대단지가 강세를 보였다.
실제 강남 3구와 노도강의 낙찰가율은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 10월 기준 노도강의 낙찰가율은 86.10%지만 강남 3구의 낙찰가율은 105.50%로 30%포인트나 차이 난다.
업계에서는 당분간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주택 수요가 풍부하고, 집값 추가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지역은 경매 수요가 몰리겠지만 시세차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지역은 찬밥 신세"라며 "경매시장도 매매시장처럼 양극화 현상이 갈수록 뚜렷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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