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마지막 인생 3개월을 보낸 '죽림골'을 품었다 [2024 한국건축문화대상]

박형윤 기자 2024. 10. 30.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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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건축문화대상 건축물 부문 민간분야 본상을 수상한 최양업신부탄생기념 경당은 최양업 신부가 은신한 동굴, 죽림굴(竹林窟)의 모습을 현대적으로 해석해서 만든 건축이다.

천주교 대전교구는 조선 최초의 신학생이자 한국천주교회의 두 번째 사제인 최 신부를 기념하기 위해 그의 생가터가 위치한 충남 청양의 다락골에 경당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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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 부문 민간분야 본상
최양업신부탄생기념 경당
충남 청양에 위치한 최양업신부탄생기념 경당. 최 신부가 마지막까지 머물렀던 울산광역시의 동굴인 죽림굴을 본따 만들었다. 사진 제공=윤준환 작가
[서울경제]

2024 건축문화대상 건축물 부문 민간분야 본상을 수상한 최양업신부탄생기념 경당은 최양업 신부가 은신한 동굴, 죽림굴(竹林窟)의 모습을 현대적으로 해석해서 만든 건축이다. 최 신부는 경신박해(1860)를 피해 그의 마지막 인생 3개월을 울산광역시 울주군의 죽림굴에서 보냈다.

천주교 대전교구는 조선 최초의 신학생이자 한국천주교회의 두 번째 사제인 최 신부를 기념하기 위해 그의 생가터가 위치한 충남 청양의 다락골에 경당을 지었다. 2023년 4월 15일 최 신부의 사제서품 기념일에 맞춰 경당을 개관했다.

경당은 죽림굴의 모습을 투영하는 데 중점을 뒀다. 경당을 보면 동굴의 아늑함, 거친 내부와 어둠이 느껴진다. 우대성 우연히 프로젝트 건축사무소 대표는 죽림굴을 닮은 경당을 짓기 위해 죽림굴을 직접 찾았다. 우 대표는 “5월 말이었는데 동굴 안 기온은 6.5도였다. 당시 피신 중이던 최 신부는 나졸들이 잡으러 올 수 있다는 긴장감을 동굴 안의 서늘함과 함께 느끼며 보냈다고 생각해 이를 최대한 반영했다”고 말했다. 천주교 신자들은 죽림골에서 움막을 짓고 토기와 목기를 만들어 생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무와 풀로 덮인 낮은 입구 덕분에 동굴에 숨으면 쉽사리 눈에 띄지 않아 한국의 카타콤(Catacomb), 초기 기독교인의 비밀 지하 묘지로도 불린다.

경당은 생가는 사라지고 터만 남아있는 땅에 소박하게 지어졌다. 큰 감나무 한 그루만이 경당과 함께한다. 우연히 프로젝트 건축사무소 관계자는 “경당은 오랫동안 이어져 온 이곳의 풍광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그를 기억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큰 집으로 채울 것이 아니라 가능한 작은집을 짓고 터를 그대로 비운다는 개념으로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경당 내부로 들어가기 위한 통로. 죽림굴의 대나무를 본따기 위해 대나무를 쪼개고 잘라 콘크리트와 함께 붙여 만든 문양이다. 사진 제공=우연히프로젝트건축사무

경당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좁은 통로를 지나가야 한다. 통로의 양쪽 벽은 대나무 문양을 찍어서 만들었다. 직경 60mm의 대나무를 쪼개고 잘라붙여서 만든 문양은 고립된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한계와 제한된 비용을 고려해 금속형틀대신 꼼꼼한 수작업의 공정을 거쳤다고 한다. 건축사무소 관계자는 “모든 방문객은 종교를 떠나 자신을 돌아보는 자리이자 풍광과 하나 된 이 경당에서 밤길을 걸으며 고독하게 자신의 소임을 다했던 최양업 신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당 천장의 천상열차분야지도. 11년간 9만리를 걸어 복음을 전했던 최양업 신부는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보며 밤길 이동했다. 사진 제공=윤준환 작가

내부로 들어가 천장을 들여다보면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가 시선을 사로 잡는다. 이는 조선의 별자리 지도로 최 신부가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많은 밤을 사색했을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천장에 새긴 것이다. 조선의 밤하늘을 수놓은 별자리를 새긴 ‘천상열차분야지도’는 11년간 9만 리를 걸었던 최 신부의 밤길 안내서이자 벗이었다고 한다.

경당에서 제대는 가장 낮은 자리에 위치한다. 신자들을 올려다보며 미사를 봉헌한 겸손함이 드러나는 배치다. 우 대표는 “지도의 가장 안쪽에는 계절에 상관없이 항상 보이는 별들이 있고 방위별로 별자리 283개와 1467개 별이 밝기에 따라 다른 크기로 표시돼 있다”며 “제대 위의 천장에 이 지도를 새겨서 어둠을 걸었던 그의 발걸음과 그의 정신을 기억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박형윤 기자 man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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