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DT인] "흔들다리·케이블카로는 지역 못살려… 국가 차원서 건축환경 공급해야"

이윤희 2024. 10. 1.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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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종린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10년 동안 전국 곳곳 골목길 다니며 찾아낸 콘텐츠상권 114곳
지역색 강하고 지역만의 자부심 있어야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
모종린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모종린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빵보다 사람이 많다", "입장에만 4시간이 더 걸렸다", "빵 축제가 아니라 '빵 지옥'이 됐다."

지난 주말 열린 '대전빵축제'에 쏟아진 볼멘 소리들은 실상 이 행사의 '대박'을 역설하고 있었다. 대전 대표 빵집 '성심당'을 중심으로 총 81개의 빵집이 참여했고 참가인원만 14만명에 달했다. 올해 4회째로 열린 이 행사만큼 성공한 지역 축제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빵'이라는 친근한 콘텐츠가 대기업보다 영업이익을 많이 낸다는 '성심당'이란 로컬 브랜드를 통해 그야말로 폭발한 장면이었다.

오래 전부터 지역 사회의 잠재력와 골목 상권의 경제를 연구해 온 '골목길 경제학자' 모종린(63·사진)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를 서울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전국 곳곳의 골목길을 다녔다. 그렇게 찾아낸 콘텐츠 상권은 전국에 114곳이다. 그가 만든 '콘텐츠 상권'이란 말은 뚜렷한 지역색과 특유의 콘텐츠를 지닌 오프라인 상권을 뜻한다. 최근엔 이 콘텐츠 상권을 이론화한 '크리에이터 소사이어티'를 발간했다.

서울 경리단길, 익선동, 망원동, 문래동과 경남 거제 옥포 옥태원길과 창원 용호동 가로수길도 여기에 해당한다. 음식점과 독립서점, 문화 공방, 로컬 상품상점으로 구성되는 상권이기도 하다. 모 교수는 명동이나 홍대, 강남역 상권은 대기업 자본 중심의 대형 상권을 콘텐츠 상권과 구분해 '중심 상권'이라고 부른다.

모 교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떠나 코넬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석사, 스탠퍼드대에서 경영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텍사스 오스틴대 조교수와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연구위원 등을 거쳤다. 한국에서도 강의를 시작했는데, 한국개발론 등 한국 발전사를 공부하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이후 국가 발전상으로서의 문화융성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지역사회(로컬)에 집중한 계기가 특히 궁금했다. "지역발전 연구를 시작한 건 2013년 출간한 '작은도시 큰기업'이란 책부터였어요. 글로벌 대기업을 배출한 작은 도시들을 찾아다녔지요. '네슬레' 본사가 있는 스위스 브베, '이케아'를 낳은 스웨덴 엘름훌트, '나이키'의 고향 미국 비버튼, '스타벅스'의 시애틀, '홀푸드마켓'의 오스틴 같은 곳들이었어요."

이들 모두 로컬 기업로 시작해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다. 실제로 나이키의 본부가 비버튼 지역 사람들은 '한 다리만 건너면 나이키 직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글로벌 기업을 낳은 이들 지역의 공통점은 무엇이었을까. 모 교수는 "공통적으로 지역색이 강했고, 아무리 작더라도 지역만의 자부심이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창업자가 사망한 후 본사의 이전을 걱정한 브베의 지역 자본가들이 힘을 합해 제네바 기업인 대신 네슬레를 인수했다. 네슬레 본사를 붙들어 두기 위한 브베 주민의 열망과 자부심을 엿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2017년 나온 저서 '골목길 자본론' 이후 골목 상권이 식어간다는 느낌이다. 코로나 팬데믹에 이은 불경기와 해외여행 유행, 비슷해진 상권이 몰개성 때문인지 골목 상권의 인기는 전만 못하다. 모 교수는 기복이 있어도 한번 자리매김한 골목 상권이 쉽게 망가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새로운 골목 상권의 탄생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콘텐츠 상권은 '하드웨어 드리븐'(Hardware-driven) 됐어요. 일본식 적산가옥이나 한옥, 단독주택 같은 하드웨어 건축물이 있어야 콘텐츠 상권의 형성이 가능했다는 말이에요. 건축·보행 환경의 약점이 있어 중심 상권이 되기는 어렵지만 개성있는 상권으로 발달할 수 있었지요. 신당동과 장충동 등 중구와 종로구에 여전히 그런 곳들이 많이 남아 있지요."

모 교수는 이를 위해 국가 차원에서 개축·신축 등을 통해 건축환경을 공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건 소상공인이에요. 그들이 콘텐츠 크리에이터입니다. 흔들다리와 케이블카가 콘텐츠인가요? 벽화 그리니까 지역 경제가 살아났나요? 아니었죠. 골목상권의 씨앗이 될 만한 곳에서 크리에이터들이 창업할 수 있게 건축물 등 자원을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 교수는 "공원도 상권진화적으로 만들 수 있다. 경의선 숲길이 마포 전체를 살려냈다"고 말한다. 이어 "소상공인은 고려하지 않고 공공 공사를 해버리는 경우도 많이 보는데, 주민과 상인을 위하는 방향으로 공공 인프라를 개발하고 지역 예술가와 특산물 등 콘텐츠가 될 만한 것들을 동원해 '지역다움'을 살리자"고 주장했다.

모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의 '골목길 참모'이기도 하다. 당선 전 모 교수와 연남동에서 회동한 윤 대통령은 "골목상권 살리기에 청년, 자영업자, 지방균형발전 세가지 요소가 다 담겨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소멸의 기로에선 한국의 지방이 자생할 수 있을까. "저는 '마인드 셋'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사람이 있고, 그들의 교육수준 높고, 지금 가진 자원으로도 잘할수 있음에도 현재는 중앙 산업의 지역 사업장을 지역 산업이라고 생각하는 수준이에요. 자체 인력으로 자체 산업을 키우지는 않고 서울에 있는 공공기관이나 대기업 유치만 바라는 상황이라는 건데요. 지역에 남을 지역 기업을 육성해야 합니다."

그랬다. 대형 기관 유치를 위한 지역의 노력과 그로 인한 분쟁이 소음이 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한국 제 2의 도시 부산에서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기업)이 나올까요. 인구 800만명에 달하는 부울경(부산·울산·경남) 지역에서 상장기업 하나도 새로 배출하기도 어렵잖아요. 이런 문제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건 정상이 아니에요. 저는 이걸 우리 사회가 '지적으로 포기했다'고 생각합니다.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해 아예 고민도 하지 않는 겁니다."

모 교수는 오랜 외국 생활을 통해 한국에 대해 관찰자적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애정과 안타까움을 담은 그의 목소리에 다시 한번 귀를 기울여 본다.

이윤희기자 stel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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