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자립에 힘써… 선진국 독점하던 초장대교량 설계”

신수지 기자 2024. 9. 30.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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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대교·목포대교 등 밑그림… 이해경 다산컨설턴트 회장

2019년 개통된 베트남 ‘밤콩(Vam Cong) 대교’는 메콩강 하류를 가로지르는 2.97km 길이의 거대한 다리다. 호찌민에서 베트남 최대 곡창지대인 메콩 델타 지역까지 화물 운송 시간을 최대 3시간 줄인 이 다리를 설계·감리한 곳은 한국 업체인 다산컨설턴트. 다산컨설턴트는 주탑(케이블의 최고점을 지지하는 탑) 사이의 거리가 1km 이상인 ‘초장대(超長大)교량’ 분야에서 독보적인 설계 역량을 자랑하는 중견 엔지니어링사다. 천사대교, 목포대교, 울산대교 등이 다산컨설턴트의 밑그림을 바탕으로 완성됐다. 지난해 다산컨설턴트가 수행한 프로젝트는 190건, 총 수주 금액은 1060억원으로, 이 가운데 해외 수주가 260억원(24.5%)을 차지한다. 이해경(70) 다산컨설턴트 회장은 “기술 자립화에 매진해 선진국 기업들이 독점하던 초장대교량 설계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했다”며 “엔지니어링은 다양한 시설물을 시공하기 전 청사진을 제시하고 기획해 프로젝트의 전체 품질을 좌우하는 핵심 산업”이라고 했다.

서울 사당동 한국엔지니어링협회에서 만난 이해경(70) 다산컨설턴트 회장이 본지와 인터뷰하는 모습. 그는 "엔지니어링 시장 성장을 위해 저가 발주 관행을 개선하고, 해외 진출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했다. /김지호 기자

◇공무원·대기업 거쳐 창업… 초장대교량 선도 회사로

연세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이 회장은 1976년 건설부(현재 국토교통부) 도시국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기술 업무보다 행정 업무가 많은 데 회의를 느끼고, 이듬해 ‘토목 엔지니어’로 일할 수 있는 민간 대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림엔지니어링 등에서 15년 넘게 근무하며 임원까지 지낸 이 회장은 39세였던 1993년 독립해 다산컨설턴트를 창업했다.

도로 설계 전문이었던 이 회장은 창업 후 ‘초장대교량’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주목했다. 이 회장은 “초장대교량은 수만 톤(t)의 하중과 바람을 견뎌야 해 ‘토목 설계의 꽃’이라 불리지만, 설계가 가능한 국가는 미국, 영국, 덴마크 등 5국에 불과했다”며 “이 때문에 서해대교나 인천대교처럼 국내 건설사가 시공한 초장대교에서도 고부가가치 영역인 설계·감리 부문은 선진국 기업들이 독점했다”고 말했다.

다산컨설턴트는 선도 기업인 영국 할크로(Halcrow)나 덴마크 코비(COWI) 등과 함께 인천대교나 거가대교 설계 업무에 참여해 자체 기술력을 축적해나갔다. 그 기술력이 집약된 것이 전남 신안군 ‘천사대교(2공구)’다. 2019년 4월 개통한 천사대교는 신안군 압해도와 암태도를 잇는 7.2km의 초장대교량이다. 이 회장은 “초장대교량의 종류 중 하나인 현수교는 보통 주탑 2개를 쓰는데, 신안군은 바람이 워낙 강해 설계 단계에서 주탑을 3개로 늘렸다”며 “주탑이 3개인 현수교는 세계 최초로, 바람을 더 잘 견딜뿐더러 중앙 주탑을 중심으로 영어 ‘W자’ 모양으로 대칭을 이뤄 미관도 더 돋보이게 됐다”고 했다.

천사대교로 기술력을 인정받은 다산컨설턴트는 지난해 국제컨설팅엔지니어링연맹(FIDIC) 시상식에서 한국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중소 사이즈 프로젝트 분야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 회장은 “개통식 날 섬 주민들이 ‘배로 50분을 가야 하는 길을 차로 10분 만에 갈 수 있게 해줘 고맙다’며 눈물을 글썽이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100% 우리 기술력으로 해내 더욱 뜻깊었다”고 말했다.

다산컨설턴트가 설계해 2019년 개통된 전남 신안군 '천사대교'. /다산컨설턴트

◇”저가 발주 관행 없애고 해외 진출 노려야”

이 회장은 지난 2020년부터는 한국엔지니어링협회 회장도 맡고 있다. 이 회장은 “국내 엔지니어링 시장은 기술력보다 가격 중심으로 입찰이 진행되고, 적정한 대가를 받지 못하니 우수한 신규 인력이 오지 않는다”며 “기업이 실제 수행한 과업 내역과 인건비에 따라 대가를 지급하고 적정한 대가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향후 한국 엔지니어링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선 ‘민관협력 투자개발사업(PPP)’을 통한 해외시장 개척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중국·인도·튀르키예 등의 저가 공세에 밀려 단순 도급 영역에선 경쟁력이 없다”며 “정부, 금융사, 엔지니어링사, 시공사가 ‘원팀’이 돼 사업 발굴부터 설계·조달·시공, 운영까지 맡을 수 있는 투자개발형 사업에 진출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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