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유 있었던 '청약 장벽'···6人 이상 가족 당첨 5년간 3500건
6명 이상 부양하면 '35점 만점'
"위장전입 철저히 조사해야" 지적
최근 5년간 전국 민간 아파트 청약 당첨자 중 부양가족이 5명 이상인 경우가 총 3536건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은 같은 기간 380건에 육박했다. 1~2인 가구의 비중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5인 이상 가족이 실제로 같이 거주하는지를 두고 예비 청약자들 사이에서 의구심이 커지는 만큼 당국이 위장전입 여부 등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3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복기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부동산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 8월까지 최근 5년간 전국 민간 분양 아파트 당첨자 중 부양가족 수를 5명 이상으로 신고한 경우는 3536건에 달했다. 5명은 2830건, 6명 이상은 706건이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이 2020~2021년 100건 수준을 보이다가 2022년 36건, 2023년 32건으로 급감했으나 올 들어 다시 전년 대비 3배가 넘는 116건으로 급증했다.
민간 아파트 청약에서 일정 물량은 당첨자 선정 시 청약가점제를 적용한다. 청약통장 가입 기간(17점 만점)과 무주택 기간(32점 만점), 부양가족 수(35점 만점)를 점수로 매겨 합산하는데 부양가족이 5명이면 30점, 6명 이상이면 35점을 받는다. 경쟁이 치열한 서울, 특히 강남권 아파트 청약의 경우 부양가족이 많으면 당첨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에 부모나 배우자 부모, 성인 자녀 등을 위장전입시키는 편법 동원이 지속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복 의원은 “부모나 성인 자녀의 신용카드 사용 내역 등을 철저히 들여다보고 위장전입 조사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15년 넘게 무주택으로 산 7인 가족이 20억 원이 넘는 아파트에 당첨되는 게 실제로 가능한 얘기인지 모르겠습니다.”(예비 청약자 A 씨)
“정부가 그동안 위장 전입 여부를 들여다봤겠지만 부모가 가까운 곳에 살면 밝혀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조사를 더 철저히 해야 합니다.”(서울 거주자 B 씨)
부양가족이 많을수록 점수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청약가점제가 2007년 도입된 후 위장 전입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됐다. 청약가점을 구성하고 있는 또 다른 항목인 무주택 기간(32점 만점)과 청약통장 가입 기간(17점 만점)은 불법이나 편법이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는 반면 부양가족 수(35점 만점)는 노부모 등의 주소만 옮겨놓으면 가점을 얼마든지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국토교통부와 한국부동산원은 매년 합동으로 상·하반기로 나눠 위장 전입 등 부정 청약을 단속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서울 강남권 분양에서 부양가족이 4명 미만이면 당첨은 꿈도 못 꿀 정도가 되면서 위장 전입 조사 강도를 더욱 높이는 것은 물론 나아가 부양가족 배점을 낮추는 등 청약가점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올해 강남·서초·송파구 등 강남 3구 아파트 청약에서 당첨만 되면 수억~수십억 원 차익을 기대할 수 있는 ‘로또 청약’ 단지가 대거 분양 시장에 풀리면서 청약 당첨 가점도 치솟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올해 1~8월 강남 3구에서 분양한 ‘메이플자이’와 ‘래미안 원펜타스’, ‘래미안 레벤투스’ ‘디에이치 방배’ 4개 단지의 주택형별 평균 당첨 가점은 73.1점으로 집계됐다. 최저 가점과 최고 가점은 각각 71.9점, 75.5점이다. 4인 가구(부양가족 3명) 만점인 69점조차 강남 3구 분양에서는 당첨 커트라인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주택형별 평균 최고 가점이 가장 높은 단지는 올 7월 서초구 반포동에서 분양한 래미안 원펜타스로 79.6점에 달했다. 이어 서초구 방배동 디에이치 방배(75.1점), 서초구 잠원동 메이플자이(73.5점), 강남구 도곡동 래미안 레벤투스(70.7점) 등의 순이다. 래미안 원펜타스는 84A와 107A 2개 주택형에서 만점인 84점이 각각 나왔다. 이 점수는 총 7인 가구가 15년 무주택을 유지하면서 청약통장 가입 기간이 15년 이상이어야 받을 수 있다. 복기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올 들어 8월까지 민간 아파트 청약 당첨자 중 부양가족 수가 5명 이상이라고 신고한 건수는 386건, 서울은 116건에 달했다.
이에 예비 청약자들은 위장 전입 등을 통해 당첨자들이 실제 부양가족 수를 부풀린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며 조사 강도를 높이고 신용카드 사용 내역 등 전산 조사를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복기왕 의원은 “부양가족이 많다고 모두 부정 청약을 했다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다만 6~7인 이상 가족이 흔치 않은데 최근 강남 로또 청약에서 부양가족이 5인은 돼야 당첨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부양가족이 5인 이상이고 부모 또는 성인 자녀가 부양가족에 포함돼 있는 경우에는 해당 세대원의 신용카드 사용 내역과 이동통신 사용권역을 사전 동의 받아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정한 청약 경쟁을 위해 정부는 금융·통신회사와 업무 협의를 시작하고 관련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한 분양업계 관계자는 “공정한 청약경쟁 조성과 무주택자 박탈감 완화를 위해 편법으로 부양가족을 늘리는 사례를 적발할 수 있는 대규모 합동 조사가 필요하고 이를 근절할 수 있는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청약가점제를 손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청약자 사이에서 부양가족 수에 대한 불신이 큰 만큼 지금보다 배점을 줄이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007년 청약가점제가 도입된 후 부양가족 배점 체계는 변동된 적이 없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제도 개편을 지적하고 나섰다. 박인숙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일반공급의 가점제 체계에서 부양가족 수는 4인 이상 가구의 감소, 1~2인 가구 증가 등 세대·가구 구성의 변화를 고려해 개선이 필요하다”며 “가점제 체계에서 부양가족 수 배점을 하향 조정하거나 부양하는 부모와 자녀 수를 분리하는 방식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무주택 기간이나 통장 가입 기간 점수 배점을 늘리는 방식도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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