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 28억 vs 도봉 6억… 집값 3년새 4.6배로 더 벌어져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18일(현지 시각)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0.5%포인트 내리는 이른바 빅컷을 단행하면서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시기와 부동산 시장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물가 안정세와 내수(內需) 부진을 감안해 다음 달 금리 인하를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가계대출 증가와 주택시장 동향이 가장 큰 고민거리다. 이달부터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2단계 시행 등 가계대출 규제를 강화한 상황에서 금리가 내리면 다시 주택 매수 수요를 자극해 집값 불안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부동산 시장은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인기 주거지에선 아파트값이 치솟고 있지만, 비수도권 지역에선 미분양 아파트 증가 등 부동산 경기가 극히 침체한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정부 입장에선 서울 등 특정 지역의 ‘집값 과열’을 식히는 것과 냉랭한 지방 부동산 경기에 ‘온기’를 불어넣는 숙제를 풀어야 한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금리 인하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서울 강남권에 집중되는 수요를 끌어내려 집값을 안정시키고 양극화를 완화하는 방안은 실현 가능성이 작다”며 “지방 대도시와 수도권 외곽 지역, 비아파트 등 침체한 시장에 금융·세제 혜택을 집중해 ‘냉기’를 가시게 하는 정책이 더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서울 강남 집값만 질주...‘양극화’ 심화
19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값은 한 달 만에 1.27% 상승하며 2018년 9월 이후 5년 11개월 만에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성동(2%)·서초(1.89%)·송파(1.59%)·강남(1.36%) 등 흔히 ‘강남 3구’ ‘마용성(마포, 용산, 성동)’이라고 부르는 인기 주거지가 상승세를 주도했다. 반면, 도봉(0.27%)·관악(0.32%)·강북(0.33%) 같은 서민 주거지는 아파트값 상승률이 평균을 훨씬 밑돌고 있다. 부산·대구·광주·대전·울산 등 지방 5대 광역시는 모두 지난달 아파트값이 하락했다. 본격적으로 금리가 오르기 시작한 2022년 말 시작한 집값 침체가 도무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개별 아파트 단지의 실거래가만 봐도 서울 인기 주거지와 다른 지방 간의 온도 차가 극명하다. 서울 강남권은 ‘패닉 바잉’과 ‘미친 집값’이 기승을 부리던 문재인 정부 시절(2021년 7~8월)의 고점을 이미 훌쩍 뛰어넘었지만, 지방 대도시와 서울 외곽 지역은 지난 3년간 집값이 오히려 뒷걸음쳤다. 서울 서초구 ‘아크로리버파크’ 전용면적 84㎡는 지난달 51억원에 팔려 3년 전(38억4500만원)보다 12억원 넘게 올랐다. 그러나 노원구의 ‘대장 아파트’로 꼽히는 ‘청구3차’는 최근 실거래가가 12억8000만원으로 3년 전보다 1억3000만원 내렸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기준 서울 서초구 평균 아파트값은 28억6663만원으로 도봉구(6억2570만원)의 4.6배 수준으로 집계됐다. 2021년 8월에는 이 격차가 3.7배 수준이었는데 더 벌어진 것이다. 부산 해운대구나 대구 수성구 등의 지역 대표 아파트들도 아직 2021년 시세를 회복하지 못했다.
아파트 청약 시장의 양극화도 심각하다. 서울 강남권에선 ‘국민 평형’(전용 84㎡) 분양가가 20억원이 넘어도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지만, 지방에서는 ‘악성’으로 통하는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이 계속 쌓이고 있다. 7월 말 기준 전국 준공 후 미분양은 1만6038가구로 이 중 82%(1만3138가구)가 지방에 몰려 있다. 악성 미분양 증가는 중소 건설사의 도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올 들어 부도가 난 건설사는 지방업체 19곳을 포함해 총 22곳으로 지난해 연간 부도업체 수(21곳)를 넘어섰다.
◇“지방엔 세제 특례, 수도권은 공급 확대”
전문가들은 금리 인하기를 맞아 부동산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려면 과열된 서울 집값 안정도 중요하지만 침체한 시장에 온기를 불어넣는 것도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김효선 NH투자증권 부동산수석위원은 “정부가 강남 3구와 마용성에 쏠리는 수요를 억누르려 하면 시장에 ‘여기가 더 오른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며 “먼저 지방과 수도권 외곽의 미분양 해소를 위해 세제 혜택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 초 ‘1·10 부동산 대책’에서 기존 1주택자가 지방의 전용면적 85㎡ 이하, 6억원 이하인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을 처음 사들이면 1가구 1주택자 특례를 주기로 했지만, 아직 개정법이 발의되지 않은 상태다.
획기적인 지방 발전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교통 인프라 확충과 배후 주거지 조성으로 지방으로 대기업이 이전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했고,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단순한 행정구역 통합이 아니라 거점도시를 중심으로 광역 교통망이 촘촘하게 연결된 진정한 의미의 ‘지방 메가시티’가 나와야 한다”고 했다.
정부가 구체적인 주택 공급 대책을 차질 없이 추진하는 것도 양극화 완화에 필요하다. 올 들어 7월까지 서울 아파트 인허가는 1만4791건으로 3년 전인 2021년 같은 기간(2만8315건)의 반 토막 수준이다. 김경민 서울대 교수는 “서울로 쏠리는 주택 수요 분산을 위해 주택 공급을 언제까지, 어떻게 할 것인지 구체적인 방식으로 제시하는 데 정부가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박합수 건국대 겸임교수는 “3기 신도시 주택 공급 물량을 대폭 확대하고, 실수요자 사이에서 ‘수도권 좋은 입지에서 저렴한 공공주택을 분양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겨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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