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억 아파트 복비가 720만원…"달라는 대로 줬는데" 깎을 수 있다?
[편집자주] 10억짜리 아파트를 사거나 팔때 내는 중개수수료 500만원. 집값에 비해 작아보이지만, 대한민국 직장인 평균 월급보다 큰 금액이다. 법이 정한 상한수수료율은 말 그대로 '상한선'이지 '최소'가 아니다. 하지만 한국 공인중개사 상당수는 수수료를 '최대'로 받고 있다. 왜 이런 관행이 생겼을까. 이런 관행은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다.
#40대 직장인 A씨는 올해 3월 서울 강동구에 신축 아파트를 12억원에 매매했다. 기존 아파트를 팔고 평형은 줄이되 입지 조건이 좋은 지역의 신축 아파트로 갈아타기 한 것이다. 공인중개사는 중개수수료 상한선(0.6%)을 적용해 720만원을 요구했다. A씨가 수수료가 비싸다고 하자 공인중개사는 수수료율 0.4% 수준인 500만원을 제시했다. 말 한마디로 220만원을 깎은 셈이다.
#서울 성동구에 사는 30대 B씨는 최근 직장 동료가 아파트를 매매하면서 중개수수료를 절반이나 깎았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빌라부터 구축 아파트까지 여러 차례 매매 경험이 있어서 나름 지인들 사이에서 부동산 '빠꼼이'로 통했던 B씨지만, 수수료를 먼저 깎아본 경험은 없었다. 수수료 상한요율을 적용하는 게 당연하다고 지레짐작하고 협의 자체를 하지 않았다. 간혹 중개사가 알아서 수수료를 조금 깎아주면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15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나인원한남' 전용면적 273㎡는 올해 6월 200억원에 중개거래됐다. 지난달에는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234㎡가 지난달 180억원에 중개매매됐다. 두 거래에서 중개사가 받을 수 있는 보수는 각각 최대 1억4000만원, 1억2600만원에 달한다. 매수·매도자 양쪽에서 보수를 받을 수 있는 점을 감안하면 최대 2억8000만원, 2억5400만원까지 늘어난다.
◆ 2억원 이상 매매 구간별 수수료 상한요율 0.4~0.7%…"계약서 명시 전 수수료 합의 거래관행 필요"
부동산 중개수수료는 공인중개사에게 부동산 매매·전세·월세 거래를 의뢰하고, 계약이 성사되면 지불하는 돈이다. 흔히 '복비'라고 부른다. 거래할 때 수수료 안내가 따로 없더라도 중개 계약이 성사되면 지불해야 한다. 서울시의 경우 아파트 매매가격에 따른 법정 상한 중개수수료 요율은 △5000만원 미만 0.6%(한도액 25만원) △5000만~2억 미만 0.5%(80만원) △2억~9억 0.4%△9억~12억 0.5% △12억~15억 0.6% △15억 이상 0.7%다. 거래가액이 2억원을 초과하면 상한요율만 정해져 있고 한도는 따로 없다. 의뢰인과 중개사가 협의를 통해 상한요율 이내에서 가격을 정해야 한다. 협상에 따라 중개수수료가 달라진다는 의미다.
중개수수료는 매매자들과 공인중개인들이 상한선 이하로 '협의'하는 게 원칙이지만, 현장에서는 이렇다 할 협의 없이 일단 공인중개사가 받을 수 있는 '최대한'으로 적용하는 관행이 만연하다. 이에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서는 중개수수료를 깎는 기상천외한 방법들이 공유되고 있다. '계약서를 쓸 때 중개수수료를 절대 먼저 못 적게 하세요.', '12억원 이상은 0.5%(500만원)선 이하로 요구하세요.' 등이 대표적이다. 아예 수수료 협의를 거부하고, 법원 중재를 받으라는 극단적인 '꼼수'도 있다. 법원에선 통상 법정수수료의 50~70%선에서 중재안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부동산 중개수수료는 국가 통계로 관리가 어렵다. 국토교통부나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서도 제대로 파악한 통계가 없다. 개별 공인중개사들이 거래가격, 중개보수 등 계약내용을 기재하는 '한방부동산거래정보망'이 있지만, 수수료율은 임의로 기재할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와 계약서 중개보수에는 상한요율이 기본값으로 기재되고, (공인중개사가) 실제 수수료로 수정할 수 있는데 그대로 두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상한요율을 적용하는 게 기본이고, '할인'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통계는 사실상 파악이 어렵다는 의미다.
실제 거래 현장에서는 얼마나 할인받느냐에 따라 같은 단지 같은 평형 아파트를 사고팔아도 수수료가 수십만원에서 수백만 원 이상 차이가 나는 일도 생긴다. 매매자가 협상을 요구하지 않거나, 중개인이 자발적으로 '할인'해주겠다고 하지 않는 이상 '자연스럽게' 상한요율이 적용된다.
공인중개사무소를 찾는 대신 당근마켓 등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해 부동산을 직접 거래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중개수수료를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서다.
15일 당근마켓 '부동산 직거래' 홈에는 서울 기준 1만4167개의 매물이 올라와 있다.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25만원 수준의 원룸 월세는 물론 10억원 이상 아파트 매매 글도 257건에 달했다.
매매가 39억5000만원의 강남구 대치동 한보미도맨션아파트, 28억원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기자촌아파트 등 상급지 고가 아파트에 60억원짜리 서초구 잠원동 복층 펜트하우스 매물도 있다. 게시글마다 '직거래로 아끼는 비용(법정 최대 중개수수료+부가가치세 10%)'도 안내돼 있었다.
실제 당근마켓을 통한 부동산 거래는 매년 늘고 있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실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당근마켓 거래 거래가격 상위 품목 10개 중 부동산은 2건이었다. 그러나 2022년부터 올해 7월까지 거래 가격 상위 10개 품목은 모두 부동산이었다. 올해 최고 금액에 거래된 물건은 올해 35억9800만원에 거래된 강남구 논현동 '브라이튼N' 아파트다.
당근마켓을 통해 부동산을 직거래하면 중개수수료를 아낄 수 있다. 현행법상 중개수수료는 2억~9억원 미만 주택 매매시 0.4%, 9억~12억원 0.5%, 12억~15억원 미만 0.6%, 15억원 이상 0.7%다. 집값이 올라가면 중개수수료도 비싸지는 구조다보니 고가의 부동산을 거래하면 중개수수료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당근마켓에 올라와 있는 60억원 펜트하우스의 경우 직거래시 최대 4620만원을 아낄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인 공인중개사를 배제한 직거래는 부동산 거래의 음지화를 부추길 수 있다. 무엇보다 법률 상식이 없는 일반인이 계약을 체결하기엔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허위매물이나 계약 사기에 노출될 위험이 높고 부동산 계약에 필요한 내용을 전부 매수인이 직접 확인해야 한다. 집 내부 상태부터 가격, 거래 및 잔금일은 물론 소유권이나 가압류 여부, 임차인 등 권리관계 분석 등을 따져봐야 하는데 부동산 거래경험이 많지 않은 매수인이 이를 문제 없이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계약에 문제가 생겨도 소송 등을 개인이 책임지고 진행해야 한다.
업계에서는 중개수수료가 합리적이거나 서비스가 만족스러웠다면 이같은 개별 거래 확대가 없었을 것이라고 본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중개수수료는 고가 아파트일 수록 많이 내는 누진세 개념으로 책정돼 있는데 서울을 중심으로 아파트 가격이 크게 뛰다보니 아파트에서도 수수료가 몇 백, 몇 천만원까지 차이나는 상황이 됐다"며 "부대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이런 플랫폼을 활용한 직거래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부동산 중개 수수료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아파트 거래가액 자체가 높아지면서 거래가액에 비례해 적용되는 중개 수수료도 치솟고 있어서다. 예컨대 10억원짜리 아파트를 매수·매도하는 거래 한 건으로 중개업자는 최대 1000만원에 달하는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 이같은 구조가 소비자들에게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직방, 다방, 우대빵부동산 등 프롭테크(PropTech) 기업들은 최근 몇년 새 중개 수수료 인하 등 프로모션을 진행해 왔다. 소비자들에게 더 저렴한 수수료를 제공해 플랫폼 이용 동기를 제공하는 전략이다. 하지만 기존 중개업자들의 불만이 컸다. 수수료를 크게 할인하는 중개업자가 '왕따'를 당하는 등 업계 내에서 암묵적인 카르텔이 존재한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부동산 공인중개사들끼리 모임을 만들고 매물을 독점, 높은 수수료를 받다 적발된 사례도 있다. 검찰에 따르면 개업공인중개사 A씨 등은 2021년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서 '가락회'라는 공인중개사 회원제 모임을 만들고 비회원들의 공동중개 요청을 거절하는 등 중개를 막은 혐의로 2021년 10월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신규 회원에게 가입회비 명목으로 2000만~3000만원씩 회비를 걷었다.
이들의 담합 행위로 소비자들은 높은 중개수수료를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A씨 등 4명은 1심과 2심에서 모두 유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범행은 공인중개사법의 개정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로서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또 "피고인들의 행위는 결과적으로 중개업소를 통해 매매·임대차 등 각종 부동산 관련 계약을 체결하고자 하는 불특정 다수 고객의 선택권을 부당하게 침해한다는 점에서도 죄질이 좋지 않다"고 했다.
특히 '후발주자'로 중개업계에 뛰어든 프롭테크 플랫폼은 중개수수료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2021년 중개수수료 인하가 논의, 진행되면서 일부 플랫폼은 타격을 입기도 했다. 수익 구조가 중개업자들의 광고비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중개업자의 수익이 줄어들면 자연히 광고 지출도 감소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수수료 인하를 언급하는 것은 플랫폼 업계에서 금기시되는 경향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플랫폼은 매물 광고 시 중개수수료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라는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기도 한다"며 "중개업자들 간에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시장 구조를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이같은 관행 아래 부동산 중개수수료 문제는 여전히 민감한 주제다. 수수료를 인하하거나 면제하는 프로모션이 최근 플랫폼에서도 눈에띄게 줄어든 이유다.
그럼에도 일부 중소형 플랫폼들은 이용자 트래픽 확보를 위해 중개수수료 인하 또는 면제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매수인에게 중개수수료를 받지 않는다는 형태의 프로모션은 특히 젊은 층의 호응을 얻는다. 젊은 세대는 부동산 거래 시 중개수수료에 민감한 경향이 있다. 직접적인 불만을 표출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특히 원룸이나 오피스텔 등 소규모 주택을 거래할 때 발생하는 수수료가 20만~60만원 수준인데, 이에 대해 중개업자들이 실질적으로 하는 일이 많지 않다는 인식이 퍼져있다. 실제로 중개서비스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수수료가 과하다는 불만을 나타냈다.
일각에선 국내 중개수수료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미국에서는 매도인이 중개수수료 전액을 부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매수인의 금전적 부담을 줄여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매수인의 초기비용 부담이 줄어들면 매입 의사도 높아지기 때문에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개수수료는 단순히 비용 문제가 아니라, 거래 활성화와 투명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한정된 수수료 체계를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것보다는 각 거래 상황에 맞게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아파트 전세나 월세 계약에서는 임대인이 급할 경우 상한 수수료에 웃돈을 얹어 주기도 하는데, 이는 서로의 계약 조건에 따라 유동적으로 조정되기 때문에 일률적인 수수료 체계보다 거래의 특수성을 반영한 시스템이 더 적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평화 기자 peace@mt.co.kr 이민하 기자 minhari@mt.co.kr 김효정 기자 hyojh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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