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라이트’와 차별화, 2000년대 등장… 좌파선 ‘뉴라이트 = 친일’ 공격[10문10답]

정충신 기자 2024. 8. 20.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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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문10답 - 광복회가 재소환한 ‘뉴라이트’
盧정부 시절 등장한 용어
우파로 전향 인사들 지칭
안병직·이영훈 등 대표적
MB정부 이후‘쇠퇴의 길’
반공 벗고 시장경제 표방
이승만을 건국대통령 규정
尹 임명 독립기념관장에
야권, ‘친일 뉴라이트’ 공세
광복회 ‘사상 감별법’ 논란
광복회가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에 반발하면서 8·15 광복절 경축식에 불참한 가운데, 광복절을 앞둔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국민의힘(위 사진), 새로운미래(아래)의 각각 다른 주장이 담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이종찬 광복회장이 지난 8일 취임한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이 ‘뉴라이트(New Right)’ 친일사관을 갖고 있다며 임명 철회를 요구하며 8·15 광복절 정부 경축식에도 불참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지금은 사실상 소멸된 뉴라이트가 재소환되고 있다. 이 회장은 정부의 건국절 제정 추진 반대와 함께 “1948년 건국설을 주장하는 건국론자들이 역사를 왜곡하고 독립운동을 부정하며 일제강점기를 미화하는 친일파”라고 주장하며 김 관장 사퇴를 압박했다.

대통령실과 국가보훈부가 윤석열 정부 들어 건국절 제정을 추진한 적도 그럴 의사도 없다고 명백히 밝혔음에도 이 회장은 정부 광복절 경축식에 불참하고 야당과 함께 별도 기념식을 개최했다. 야당이 이를 계기로 현 정부를 ‘친일파’로 비난하면서 광복절이 정쟁과 분열로 얼룩졌다. 김 관장은 “뉴라이트는 과거 운동권에서 활동하다가 우파로 전향한 인사들을 가리키지만, 역사학계에선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동조하는 학자들을 지칭하는데 나는 그런 점에서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라고 반박하면서 역사전쟁이 가열되고 있다.

1. 한국판 뉴라이트란

노무현 정부 때인 2000년대 중반 등장한, 태극기 보수(올드 라이트)의 냉전적 ‘반공’을 탈피하고 자유주의 시장경제 이념을 표방한 ‘새로운 보수주의자’를 뜻한다. 한국판 뉴라이트는 1989년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이론적 구심점을 잃게 된 주사파 포함 상당수 운동권 그룹들이 여러 방향의 활로를 모색하면서 탄생했다. ‘네오라이트(Neo Right)’와 뜻이 같으며 국제적으로는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 영국의 대처 행정부의 정책기조를 이룬 신보수주의에서 점점 독자적으로 발전한 사상으로 각국에 퍼져 나갔다. 국내에서는 대한민국 현대사가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분위기에 반발해 국가 정체성 확립과 역사적 정통성 수호를 위한 학술적 모임으로 출발했다. 뉴라이트 내부에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해 획일적 평가는 힘들지만, 올드 라이트가 ‘반공 보수’라면 뉴라이트는 ‘시장 보수’로 간주된다.

2. 한국 뉴라이트 언제 출범했나

두 차례 대선과 2004년 총선 패배 직후 신지호 서강대 겸임교수 등 과거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주도한 자유주의 연대가 뉴라이트 용어를 처음 내걸고 출범했다. 좌파 역사학자들의 ‘분단사관’ 등에 대항, 2005년을 기점으로 언론사 기획기사 등을 통해 신보수 운동으로 성장했다. 기존 올드 라이트의 유일한 이념인 반공주의를 구시대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좀 더 다양화된 이념 체계를 부르짖었다. 특히 과거 운동권의 필독서였던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의 ‘해방전후사의 인식’, ‘분단시대의 역사인식’에서 나타난 분단사관을 이어받은 송광성은 ‘미군 점령 4년사’에서 1945년 8월 15일은 ‘해방의 날’이 아니라 ‘분단의 날’인 동시에 미국의 신식민지로 전락한 날이라 했다. 분단사관 반대 개념으로 등장한 것이 건국사관이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에 맞춰 탄생한 대한민국건국60주년 기념사업회는 “건국 60년사는 대한민국을 폄훼하려는 사람들이 말하듯 치욕의 역사가 아니다. 건국 60년은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성공의 역사를 경축하고 정체성을 확인하면서 활기찬 미래를 새롭게 준비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했다.

3. 뉴라이트 대표 단체 및 주요 인사는

2004년 신 겸임교수 등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주도한 자유주의 연대(뉴라이트 재단)는 수구 좌파·수구 우파를 극복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수호하고 북한 민주화 운동 추진을 내세웠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가 공동대표로 2002년 출범한 바른사회시민회의도 뉴라이트 단체로, 2005년 ‘좌편향 역사서’를 바로잡기 위한 교과서 포럼을 출범시켰다. 낙성대경제연구소 소장으로 교과서포럼 공동대표를 맡은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했다. 낙성대경제연구소는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가 창립한 경제사 연구 학회로, 원래 마르크스와 마오쩌둥(毛澤東) 연구자였던 안 명예교수가 뉴라이트의 사상적 뿌리다. 2005년 일본에서 귀국한 안 명예교수는 2006년 4월 뉴라이트 재단을 설립하고 본인이 이사장을 맡은 뒤 좌파 진영과 사상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후 8개 단체 연대 기구인 뉴라이트네트워크와 학자 중심의 뉴라이트싱크넷이 생겼다. 김진홍 목사가 주도한 뉴라이트전국연합은 한때 회원이 17만 명에 달했다.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지난 12일 기자회견에서 “나는 뉴라이트가 아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4. 광복회 9가지 뉴라이트 감별법

광복회가 뉴라이트를 사실상 ‘친일파’로 규정하고, 지난 12일 홈페이지에 뉴라이트 판별 9가지 기준을 제시하며 사상검증을 벌이고 있다. 광복회의 9대 뉴라이트 정의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건국대통령’으로 규정 △1948년 ‘건국절’ 추진 △일제강점기 우리 국적을 일본이라 강변 △대한민국 임시정부 역사를 폄훼하고 ‘임의단체’로 깎아내리기 △식민사관이나 식민지근대화론을 은연중 주장하는 자나 단체 △일제강점기 곡물수탈을 ‘수출’이라고 미화 △위안부나 징용을 ‘자발적이었다’고 강변 △독도를 한국땅이라고 할 근거가 약하다고 주장 △뉴라이트에 협조, 동조, 협력 등이다. 하지만 학계는 ‘뉴라이트=친일파’라는 광복회 정의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데다, 뉴라이트 판별 기준도 자의적이어서 사상·학문의 자유를 억누르는 사상검증을 하는 것으로 비판한다. 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뉴라이트’를 표방하는 단체나 학자도 거의 사라진 상태다. 뉴라이트 인사 중 ‘1948년 건국절 제정’ 추진이 논란이 된 적이 있으나 역대 정권과 학자마다 ‘1919년·1945년·1948년’ 건국설 주장은 다양하다.

5. 뉴라이트가 생각하는 건국절이란

이른바 뉴라이트 세력의 핵심 역사관 중 하나는 대한민국이 1948년 8월 15일 건국됐고,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건국 대통령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1945년 8월 15일 광복 전 독립운동 시기는 대한민국 건국 이전 상태로 규정한다. 건국절 논란은 2006년 8월, 뉴라이트 계열이었던 이영훈 당시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라는 제목의 칼럼을 한 일간지에 기고하면서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이후 ‘건국절’이라는 용어는 역사학계에서 본격적으로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같은 해 8월 11일 뉴라이트재단·자유주의연대 등 5개 신(新)보수단체가 ‘8·15 명칭을 광복절에서 건국절로 바꾸자’는 내용의 공동 성명을 발표했고, 이에 진보좌파 진영이 반발하면서 논란은 점점 커졌다.

이종찬 광복회장이 8·15 광복절 전날인 지난 14일 기자회견에서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6. 뉴라이트 친일논란은 왜?

뉴라이트 진영은 일본이 식민통치를 통해 한국을 근대화시켰고, 우리나라 역시 경제발전의 토대를 만들 수 있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한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한국 사학계의 주류를 형성한 ‘내재적 발전론’을 전면으로 반박한다. 내재적 발전론이란 식민사학을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이론으로, 한국이 일제치하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자주적 근대화가 이뤄져 가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뉴라이트 진영의 대표주자 이영훈 교수 등이 2019년 발간한 책 ‘반일 종족주의’는 뉴라이트 진영에 친일 이미지가 완강히 덧씌워진 계기라고 평가된다. 이 책은 조선은 일제에 식량을 수탈당하지 않았고 조선인이 강제 동원되지도 않았으며, 독도가 원래 우리 땅이라는 역사적 근거도 없었다고 주장한다. 이후로도 이들은 위안부가 강제 동원된 것이 아니며 백범 김구 선생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하는 등 논란의 발언을 이어갔다.

7. 한국사 교과서 사태는 무엇?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은 2005년 1월 ‘교과서포럼’을 결성하고 근현대사 교과서 개정 운동에 착수했다. 교과서포럼은 기존 초·중·고 교과서가 좌파적 성향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2008년 3월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를 출간했다. 이 교과서는 식민지 근대화론, 이승만 전 대통령의 건국과 국부 역할 등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2013년 박근혜 정부 아래, 교과서포럼 인사들이 주축이 돼 만들어진 단체인 한국현대사학회 소속 학자들이 집필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해 제도권으로 진입했다. 당시 이 교과서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를 축소·왜곡하거나 이승만·박정희 시대를 미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셌다. 교과서 채택률은 0%대에 그쳤다. 그러자 박근혜 정권은 2015년 10월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2017년부터 국정화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 같은 방침은 문재인 정부 출범 뒤 공식 폐지됐다.

8. 이명박 정부 들어 뉴라이트 쇠퇴 왜?

보수 위기 속에서 싹튼 뉴라이트는 오히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쇠퇴해갔다. 뉴라이트 재단과 자유주의연대가 통합해 ‘시대정신’으로 이름을 바꿨고, 뉴라이트네트워크는 활동을 중단했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은 대선 이후 회원 수가 급감했다. 뉴라이트가 2007년 대선 운동에 매몰돼 정치적 순수성을 잃었다는 비판 여론이 커지면서 지지자들이 이탈한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권 이중대’라는 꼬리표가 붙은 뉴라이트는 2008년 촛불 정국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일부 뉴라이트 출신 인사들이 청와대를 비롯한 주요 기관에 기용되거나 여당 공천을 받아 국회에 입성했으나, 이명박 전 대통령 지지율 하락과 함께 신뢰를 잃기 시작했다. 또 정권을 잡은 우파 내부에서도 뉴라이트를 재건하거나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일지 않으면서 뉴라이트는 급속히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9. 뉴라이트에 대한 야권 비판은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김 관장 임명을 두고 윤석열 정부를 향해 ‘친일 프레임’을 씌우며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정부가) 핵심 요직에 친일 뉴라이트 세력을 우격다짐으로 밀어 넣고 있다”고 지난 14일 비판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윤 대통령을 향해 “귀하는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이냐, 아니면 조선총독부 제10대 총독이냐”고 비난하기도 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논평과 발언을 삼가는 분위기다. ‘뉴라이트’로 지명된 인사들도 최대한 몸을 낮추거나 침묵했다. 여권 관계자는 “뉴라이트 이력은 곧 ‘친일’로 향하는 꼬리표로 통용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위안부나 징용이 자발적이었다’는 대다수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 이어지면서 ‘뉴라이트=친일’ 공식이 점차 파괴력을 띠게 됐다는 것이다. 또 여권 내부에서는 뉴라이트가 ‘친일 사관’을 공유하고 이들이 소속된 정부는 친일 정부라고 여기는 인식이 대중에게 설득력을 갖게 되면서 뉴라이트 지지가 정치적으로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10. 윤석열 정부는 뉴라이트 정부?

윤석열 정부는 그 핵심 요직에 뉴라이트 출신 인사들이 속속 포진하면서 ‘뉴라이트 정부’라는 비판에 휩싸였다. 당선인 비서실장을 지낸 장제원 전 국민의힘 의원은 뉴라이트 부산연합 공동대표 출신이다. 한오섭 전 대통령실 정무수석도 뉴라이트 전국연합 기획실장을 지냈다. 임헌조 전 시민소통비서관은 뉴라이트전국연합 사무처장, 김성회 전 종교다문화비서관은 뉴라이트 전국연대 집행위원장을 지낸 인물이다. 김호동 광복회 경기도지부장은 지난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 집회에서 “얼마 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으로 식민지 근대화론의 대표학자 김주성을 임명하더니, ‘쌀을 수탈당한 게 아니라 수출한 것’이라는 김낙년을 한국학중앙연구원장으로 임명했다”고 비판했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김 관장 임명이 백범 김구 선생을 테러리스트로 만들려는 음모”라는 주장까지 내놨다. 대통령실과 여권은 이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거치면서 보수 진영 인재가 거의 씨가 마르다시피 했다”고 설명했다.

정충신 선임기자, 권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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