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수련병원 ‘빚더미’에 허덕… 지역 의료시스템 붕괴 위기 [심층기획-의·정갈등 6개월 후폭풍]
전공의 이탈에 진료·입원·수술 등 줄어
국립대병원 차입금 상반기 1조4000억
세종충남대병원 2812억원으로 ‘최다’
병동 축소·무급휴직·직원 보조비 삭감…
비용 절감에도 일부 병원은 파산 위기
중증·희귀·응급 분야 수가 ‘핀셋’ 인상 등
정부, 상급종합병원 체질 개선 논의 중
“어떻게든 버티곤 있는데 얼마나 더 버틸지 알 수 없다.”(수도권 대형병원 관계자)
전공의들의 집단 이탈이 6개월을 넘기면서 수도권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전국 수련병원이 재정 위기에 허덕이고 있다. 국내 주요 상급종합병원 의사의 30∼40%를 차지했던 전공의들이 빠지면서 예년만큼 환자들을 수용할 수 없게 됐고, 진료·검사·입원·수술 등도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일부 병원의 파산 위기까지 거론되면서 자칫 지역 의료시스템의 붕괴가 일어날 것이라는 위기감도 있다. 병원들은 비용줄이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손실을 상쇄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19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문정복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국립대병원 16곳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차입금은 총 1조3925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차입금 1조3158억원에서 상반기에만 800억원 가까이 불어났다.
병원별로 보면 충남대병원의 분원인 세종충남대병원의 상반기 차입금 총액이 2812억원으로 가장 많다. 본원인 충남대병원의 경우도 차입금이 961억원에 달해 상반기에만 두 곳 합계 3773억원의 빚을 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창원경상국립대병원은 2567억원에 달했고, 본원인 경상국립대병원(163억원)까지 더해 모두 2730억원의 차입금이 있었다. 경북대병원의 경우도 분원인 칠곡경북대병원까지 더해 1822억원의 차입금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국립대병원들도 수백억원대의 빚을 떠안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몇 년간 빚이 없었던 전남대병원도 올해 200억원을 차입했다.
이 중 가장 심각한 곳은 세종충남대병원이다. 세종충남대병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인 2020년 7월 개원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된 후 정상 운영을 이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전공의 사태까지 터져버렸다. 충남대병원은 지난달 14일 입장문을 내고 의료수익 급감으로 인한 경영난을 공식화하고 정부의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지역에서는 병원 문을 닫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이 관계자는 “최근 지자체에서 6억원 정도를 지원하고 있고, 정부가 건강보험료 선지급을 하고 있는 것으로 당장은 운영 중이지만,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근본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며 “정부도 지원 근거를 찾고 있는 것으로는 알고 있는데 실제 지원까지 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개혁 위한 진통… “체질 개선 속도 내야”
다른 국립대병원 사정도 비슷하다. 한 지방 국립대병원 관계자는 “건강보험료 선지급으로 당장은 운영을 하고 있지만 어려운 상황인 것은 맞다”면서 “다만 상급종합병원의 역할에 대한 정부 정책이 논의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저희도 막막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내부적으로 ‘어느 병원은 다음 달부터 월급을 못 준다더라 우리도 못 받는 거 아니냐’, ‘병상 줄이면 정리해고도 시작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등 사기가 많이 떨어져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이르면 내년 초부터 1만여개의 중증 수술 중 보상 수준이 낮은 약 1000개 중증수술의 수가를 ‘핀셋’ 인상할 예정이다. 또 전공의 비중을 낮추는 전문의중심병원을 운영하고, 전공의의 공백을 대체할 진료지원(PA) 간호사 법제화 등을 담은 간호법 제정안도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될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보건바이오의료정책분과위원장을 맡았던 박은철 연세대 의대 교수(예방의학)는 “상급종합병원에서 당뇨·고혈압과 같은 (중증이 아닌) 환자를 보는 사례는 이제 없어야 한다”면서 “지금까지는 이런 환자들을 진료하는 게 중증환자 진료하는 것보다 시간 대비 돈이 더 되기 때문에 병원들이 이렇게 해왔던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상급종합병원은 중증·희귀·응급으로 갈 수밖에 없도록 수가 조정 등으로 유도하고, 전문의와 PA가 주도하는 병원으로 빠르게 탈바꿈해야 하며, 전공의들은 수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개혁을 위한 진통이 있겠지만, 당연히 이러한 개혁은 당기면 당길수록 더 좋다”고 강조했다.
이정우·조희연·정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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