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수련병원 ‘빚더미’에 허덕… 지역 의료시스템 붕괴 위기 [심층기획-의·정갈등 6개월 후폭풍]

이정우 2024. 8. 20.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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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구조전환 직면한 병원
전공의 이탈에 진료·입원·수술 등 줄어
국립대병원 차입금 상반기 1조4000억
세종충남대병원 2812억원으로 ‘최다’
병동 축소·무급휴직·직원 보조비 삭감…
비용 절감에도 일부 병원은 파산 위기
중증·희귀·응급 분야 수가 ‘핀셋’ 인상 등
정부, 상급종합병원 체질 개선 논의 중
“차입금을 늘렸는데 금리까지 올라 부담이 더 커졌다.”(지방 국립대병원 관계자)

“어떻게든 버티곤 있는데 얼마나 더 버틸지 알 수 없다.”(수도권 대형병원 관계자)

전공의들의 집단 이탈이 6개월을 넘기면서 수도권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전국 수련병원이 재정 위기에 허덕이고 있다. 국내 주요 상급종합병원 의사의 30∼40%를 차지했던 전공의들이 빠지면서 예년만큼 환자들을 수용할 수 없게 됐고, 진료·검사·입원·수술 등도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일부 병원의 파산 위기까지 거론되면서 자칫 지역 의료시스템의 붕괴가 일어날 것이라는 위기감도 있다. 병원들은 비용줄이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손실을 상쇄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16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 전공의 생활관이 텅 비어 있다. 뉴시스
◆국립대병원 16곳, 1조4000억여원 ‘빚더미’

19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문정복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국립대병원 16곳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차입금은 총 1조3925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차입금 1조3158억원에서 상반기에만 800억원 가까이 불어났다.

병원별로 보면 충남대병원의 분원인 세종충남대병원의 상반기 차입금 총액이 2812억원으로 가장 많다. 본원인 충남대병원의 경우도 차입금이 961억원에 달해 상반기에만 두 곳 합계 3773억원의 빚을 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창원경상국립대병원은 2567억원에 달했고, 본원인 경상국립대병원(163억원)까지 더해 모두 2730억원의 차입금이 있었다. 경북대병원의 경우도 분원인 칠곡경북대병원까지 더해 1822억원의 차입금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국립대병원들도 수백억원대의 빚을 떠안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몇 년간 빚이 없었던 전남대병원도 올해 200억원을 차입했다.

이 중 가장 심각한 곳은 세종충남대병원이다. 세종충남대병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인 2020년 7월 개원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된 후 정상 운영을 이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전공의 사태까지 터져버렸다. 충남대병원은 지난달 14일 입장문을 내고 의료수익 급감으로 인한 경영난을 공식화하고 정부의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지역에서는 병원 문을 닫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충남대병원 관계자는 “보통 대형병원은 개원 후에 정상운영되려면 7∼8년은 걸리는데 아직 만 4년밖에 안 된 상황에서 이런 사태가 터지면서 더 어려움이 커진 것 같다”면서 “거기다 차입금 금리가 2.7%에서 현재는 4% 이상으로 올라 원리금까지 갚으려니 부담이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려운 건 맞지만 약제 대금을 못 준다거나 채무 이행을 못 하는 상황은 아니다”면서 “전공의 사태가 없었다면 세종병원을 지으면서 발생한 부채를 갚으면서 병원도 발전할 수 있었겠지만, 코로나19처럼 급변수가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충남대병원은 일반 병동을 260여개 축소하고, 직원들의 무급휴직을 독려하는 등 자구 노력을 하고 있다. 의사와 간호사, 사무직 등 전체 직원의 직책보조비를 전액 삭감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상황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충남대병원과 세종충남대병원의 차입금은 6월 말 기준 3773억원에서 두 달여가 지난 현재는 5000억원에 근접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관계자는 “최근 지자체에서 6억원 정도를 지원하고 있고, 정부가 건강보험료 선지급을 하고 있는 것으로 당장은 운영 중이지만,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근본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며 “정부도 지원 근거를 찾고 있는 것으로는 알고 있는데 실제 지원까지 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개혁 위한 진통… “체질 개선 속도 내야”

다른 국립대병원 사정도 비슷하다. 한 지방 국립대병원 관계자는 “건강보험료 선지급으로 당장은 운영을 하고 있지만 어려운 상황인 것은 맞다”면서 “다만 상급종합병원의 역할에 대한 정부 정책이 논의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저희도 막막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내부적으로 ‘어느 병원은 다음 달부터 월급을 못 준다더라 우리도 못 받는 거 아니냐’, ‘병상 줄이면 정리해고도 시작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등 사기가 많이 떨어져 있다”고 덧붙였다.

‘빅5’를 비롯한 수도권 대형병원의 불안감도 여전하다. 한 대형병원 관계자는 “전임의(펠로)들이 상당수 복귀하면서 전공의 사태 초기보다는 상황이 나아진 건 사실이고, 자체적으로도 비용 절감을 하고 있다”며 “하지만 지금 괜찮은 것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몰라 불안한 상황이다. 빨리 해결책이 나와야 한다”고 호소했다.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도 전공의들이 현장으로 복귀하지 않는 이상 당장은 뾰족한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다만 중장기적으로 상급종합병원의 역할을 재확립하고, 체질 개선을 유도하는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지원사업’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3년 내 상급종합병원의 일반 병상을 5~15% 줄이는 대신 이들 병원의 중증환자 비중을 50% 수준에서 60% 이상으로 상향하는 게 핵심이다. 또 중증·희귀·응급 분야의 수가를 대폭 인상해 병원들이 일반 환자를 받지 않아도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이르면 내년 초부터 1만여개의 중증 수술 중 보상 수준이 낮은 약 1000개 중증수술의 수가를 ‘핀셋’ 인상할 예정이다. 또 전공의 비중을 낮추는 전문의중심병원을 운영하고, 전공의의 공백을 대체할 진료지원(PA) 간호사 법제화 등을 담은 간호법 제정안도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될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보건바이오의료정책분과위원장을 맡았던 박은철 연세대 의대 교수(예방의학)는 “상급종합병원에서 당뇨·고혈압과 같은 (중증이 아닌) 환자를 보는 사례는 이제 없어야 한다”면서 “지금까지는 이런 환자들을 진료하는 게 중증환자 진료하는 것보다 시간 대비 돈이 더 되기 때문에 병원들이 이렇게 해왔던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상급종합병원은 중증·희귀·응급으로 갈 수밖에 없도록 수가 조정 등으로 유도하고, 전문의와 PA가 주도하는 병원으로 빠르게 탈바꿈해야 하며, 전공의들은 수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개혁을 위한 진통이 있겠지만, 당연히 이러한 개혁은 당기면 당길수록 더 좋다”고 강조했다.

이정우·조희연·정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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