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제출 거부, 가처분 검토… ‘재초환 저항’ 현실로
주택 재건축을 통해 과도한 개발 이익이 발생할 경우 조합원 수익 일부를 정부가 환수함으로써 투기 수요를 억제하는 취지로 도입한 재건축 초과 이익 환수제(재초환)가 법 시행 4개월이 넘도록 헛돌고 있다. 재초환법 개정안이 3월 말부터 시행되면서 지자체들은 부담금 부과 절차를 진행할 수밖에 없지만, 재건축 조합들은 “부담금이 과도하다” “산정 방식에 문제가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재건축 부담금 ‘1호 부과 대상’인 서울 서초구 아파트 조합은 지자체를 상대로 가처분 신청 등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재초환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과도한 부담금이 재건축 사업 추진을 더디게 해 서울에서 신규 아파트 공급의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지적 때문이다. 그러나 야당의 반대가 심해 재초환 폐지는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 이처럼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부동산 정책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가운데 시장 상황은 급변하면서 주택 공급 같은 핵심 정책의 추진 동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건축 부담금 저항 현실화
5일 서울 서초구 ‘반포 현대(현 반포센트레빌아스테리움)’ 재건축 조합에 따르면, 조합은 이달 서초구를 상대로 법원에 재건축 부담금 부과 집행 정지 가처분 신청을 하기 위해 법률 검토 중이다. 이 단지는 2021년 8월 재건축 공사를 준공했지만, 이듬해 재초환 완화를 공약한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며 부담금 부과가 보류됐다. 이후 야당과 협상을 거쳐 올해 3월 초과 이익 기준을 3000만원에서 8000만원으로 올린 내용을 담은 개정 재초환법이 시행됐다.
법 시행에 따라 서초구는 지난 7월 반포 현대 조합에 재건축 공사비와 조합 사업비 변동 내역 등을 제출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그러나 조합은 서류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 재건축 초과 이익을 계산할 때 해당 지역의 평균적인 집값 상승분은 제외하는데, 문재인 정부 시절 부동산원 집값 상승률이 축소돼 초과 이익이 과도하게 산정된다는 것이 조합 측 주장이다.
실제로 한국부동산원 월간 통계에 따르면 반포 현대 조합 설립 시점부터 준공까지 서초구 아파트 값이 23.4% 올랐는데, KB국민은행 통계에선 49.8% 상승했다. 이순복 반포 현대 재건축 조합장은 “현재 가구당 1억6000만원 정도 부담금이 예상되는데 지나치게 많다”고 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재건축 부담금 대상 단지 중 현재 입주가 끝나 부담금 재산정을 해야 할 곳은 전국적으로 36단지, 약 1만가구에 이른다. 이들 재건축 단지 조합들은 관할 지자체가 부담금 부과 절차에 착수해도 소송 같은 방식으로 불복할 가능성이 크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지난달 국회에서 “재초환은 지금 부동산 시장 상황에 맞지 않는 옷”이라며 폐지 입장을 밝혔으나, 야당 반대로 실제 폐지될 가능성은 낮다.
◇각종 정책 국회 문턱에 걸려 실기
재초환 외에도 정부가 발표한 각종 부동산 정책이 국회 입법 지연으로 표류하면서 주택 시장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정부는 올해 초 ‘1·10 공급 대책’에서 준공 30년 이상 아파트는 안전 진단을 통과하지 않아도 재건축 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하는 ‘재건축 패스트트랙’을 도입하기로 했다. 또 지난 3월 민생 토론회에선 문재인 정부의 공시 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폐기해 국민 보유세 부담을 완화하기로 했다. 모두 법 개정이 필요한 사항으로 21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했고, 이번 국회에서도 통과가 어려울 전망이다.
최근 정부가 밝힌 임대차 2법이나 종합부동산세 폐지 등 역시 실현 가능성은 낮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부동산 정책은 ‘타이밍’이 중요한데 급변하는 시장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광복절 이전 정부가 발표한다는 추가 공급 대책 역시 법 개정이 필요할 경우 공염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재건축으로 조합원이 얻는 시세 차익이 주변 집값 상승분과 비용 등을 빼고 1인당 평균 8000만원이 넘을 경우 초과이익의 최대 50%를 부담금으로 환수하는 제도. 2006년 노무현 정부 때 투기 수요를 막으려는 취지로 처음 도입됐고 올해 3월 개정 법안이 시행됐지만, 실제 부담금이 부과된 단지는 아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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