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해병 사건 기록 수천쪽 분석...'외압의 재구성'

강혜인 2024. 7. 4.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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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퍼즐 조각이 하나둘 맞춰지고 있다. 채 해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 이야기다. 시간이 갈수록 박정훈 대령의 변호인단을 포함해 사건의 진실을 찾으려는 이들이 새로운 퍼즐 조각을 발굴하고 있고, 이 조각들은 한 데 모여 사건의 얼개를 드러내고 있다. 용산 대통령실과 국방부가 채 해병 사망 원인을 조사하는 해병대의 수사에 외압을 가했다는 의혹은 짙어지고 있다. 

드러난 정황을 토대로 국민들이 묻고 있는 질문은 명료하다. 대통령실과 국방부는 왜 채 해병 사건에 개입했으며, 어디까지 개입했느냐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에서는 진상 규명을 위한 채 해병 특검과 국정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뉴스타파는 채 해병 사망 사건을 재구성했다. 사건의 맥락과 행간을 읽어내기 위해 채 해병 사망 이후 불거진 ‘수사 외압 의혹’을 중심으로 타임라인을 정리했다. 국방부 검찰단이 생산한 박정훈 대령의 항명죄 수사 기록 2,000여 쪽과 지난해 7월~8월경 사건 관계자들의 통신기록 5,000여 건 등 채 해병 사망 및 수사 외압 의혹 사건 관련 각종 기록을 입수해 분석했다. 

채 해병 사건의 외형

지난해 7월 19일, 채수근 해병이 경북 예천에서 폭우 피해 실종자 수색 작전에 투입됐다가 급류에 휩쓸렸다. 채 해병은 끝내 주검으로 돌아왔다. 폭우로 불어난 내성천에서 채 해병 등 해병대 장병들은 구명조끼도 갖춰입지 못하고 작전에 투입됐다. 

군 내 사망 사고 발생시 군인을 사망에 이르게 한 범죄 혐의를 인지한 군은 경찰 등 민간 수사 기관에 사건을 이첩해야 한다. 군인을 사망에 이르게 한 범죄를 군이 자체 조사하지 않고 외부에 맡기도록 한 개정 군사법원법에 따른 것이다. 채 해병을 사망에 이르게 한 범죄가 있었는지를 먼저 파악하기 위해 채 해병 사망 직후 해병대 수사단은 곧바로 조사에 착수했다. 

해병대 수사단(단장 박정훈 대령)은 채 해병 사망 원인 가운데 상관의 과실이 있다고 봤다. 채 해병이 속했던 포병여단장을 포함, 임성근 1사단장까지 모두 8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고 판단했다. 해병대 수사단은 이같은 수사 결과를 해병대 사령관(김계환 중장), 해군참모총장 등 상부에 보고했다. 다음 단계는 국방부 장관에 보고하고, 이후 관할 경찰인 경북경찰청에 사건을 이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이종섭 전 장관은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결과를 보고 받고 결재까지 마쳤지만 돌연 사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 끝내 박정훈 대령이 사건을 계획대로 경찰에 이첩하자 이 전 장관은 국방부 내 조직인 국방부 검찰단을 동원해 박 대령을 수사하기에 이른다. 

박 대령은 자신에게 씌워진 혐의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도리어 해병대 수사단에 '수사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이종섭 전 장관이 돌연 이첩 보류 등을 지시하기 직전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결과를 보고 받은 윤석열 대통령이 화를 냈다는 이른바 'VIP 격노설'이다. 

박정훈 대령은 항명죄로 기소돼 현재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국방부 직할 수사 기관인 국방부 조사본부에서는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결과를 다시 검토했고 당초 8명이었던 혐의자는 2명으로 축소됐다. 국방부 조사본부를 한 번 거친 채 해병 사망 사건은 이후 경북경찰청에 이첩됐다. 여기까지가 채 해병 사망 사건의 외형이다. 

타임라인 1 : 대통령실의 등장, 그리고 입막음 

채 해병이 사망한 후 1년 가까이 지나면서 박정훈 대령이 폭로한 수사 외압 의혹은 점점 짙어지고 있다. 해병대, 국방부, 대통령실 관계자들의 진술과 각종 통화 기록이 나오면서다. 지금부터는 뉴스타파가 기록을 토대로 재구성한 사건의 흐름이다. 먼저, 채 해병 사망시점인 7월 19일부터 7월 31일 이전까지의 시기다. 

해병대 수사단이 채 해병 사망 사건 조사를 시작한 지 3일째인 7월 21일, 대통령실 안보실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하던 김형래 대령이 박정훈 단장에게 '수사계획서'를 요구했다. 박정훈 대령에 따르면 김형래 대령은 '해병대 사건인데 해병대에서 수사하는 것이 공정할 수 있냐'는 의문을 표했다고 한다. 박 대령이 '엄정히 수사하겠다'고 밝히자 이후 김 대령 측에서 '수사 계획서'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박 단장은 최근 국회에 나와 "안보실에서 수사 계획서를 요구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후에도 안보실의 '관심'은 이어졌다. 7월 26일 임성근 1사단장 조사를 마친 해병대 수사단은 28일 경 수사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었다. 이날 이른 아침 박정훈 대령은 포항의 한 카페에서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수사 결과를 보고했다. 김 사령관은 수사 결과를 보고 받고 '궁금해 하던 것이 다 이해됐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이날 안보실 김형래 대령이 다시 등장한다. 28일 오후, 김 대령은 이번에는 해병대 수사단의 박 모 중수대장(중령)에게 연락했다. 김 대령은 국방부 검찰단 조사에서 "7월 28일 오후 해병대 사령부 중수대장과 통화하여 조사 관련 제공할 수 있는 자료가 있는지 문의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중수대장이 자료 제공은 사령관님 지침이 필요하다는 답변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이날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은 안보실의 수사 자료 제출 요구를 거절했다. 

그러나 안보실은 자료 제출 요구를 멈추지 않았다. 30일 오후 2시 18분, 김형래 대령은 이번에는 권인태 해병대 정책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수사 자료를 다시 한 번 요구했다. 이날 오후 4시 30분에는 국방부 장관 보고가 예정되어 있었다. 권 실장은 추후 국방부 검찰단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7월 30일 일요일 오후 2시 18분경 안보실 행정관인 해병 대령 김형래로부터 전화가 와서 자료를 요구받은 사실은 있으나 제가 가지고 있지 않은 자료라 줄 수 없다고 이야기했고 필요하다면 국방부를 통해 받으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결국 안보실은 국방부 장관 보고 전 해병대 수사단의 자료를 사전 입수하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안보실은 포기하지 않았다. 

7월 30일 4시 30분, 해병대 수사단의 국방부 장관 보고가 진행됐다. 해병대에서는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과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등이 참석했다. 해병대 수사단은 임성근 1사단장을 포함해 8명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고 보고했다. 이 전 장관은 몇 가지 질문을 한 뒤 보고서에 결재했다. 

국방부 장관 보고를 마치고 해병대 수사단이 다음날 예정된 언론브리핑을 준비하고 있던 즈음, 김형래 대령의 상관이자 안보실 국방비서관이던 임기훈 소장은 당시 이종섭 장관을 보좌하던 박진희 군사보좌관과 두 차례 통화를 했다. 이 두 번의 통화 이후, 박 보좌관은 5시 49분 김계환 사령관에게 '수사 내용이 안보실에 보고가 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냈다. "사령관님, 노고 많으십니다. 오늘 보고드린 내용을 안보실에도 보고가 되어야 될 것 같습니다. 내일 아침에는 국방비서관에게는 인지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연락을 받은 김계환 사령관은 안보실 김형래 대령, 그리고 임기훈 비서관과 전화 통화를 나눴다. 그리고 박정훈 대령에게 전화해 언론 브리핑 자료를 안보실에 보내라는 지시를 내린다. 이 지시를 받은 박 대령은 유 모 소령을 통해 김형래 대령에 언론 브리핑 자료를 보냈다. 자료를 받은 김형래 대령은 유 소령에게 메일로 이렇게 답장했다. "그래 수고했다. 절대 이쪽에 전달했다는 이야기하면 안 된다."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내용을 확인한 대통령실이 해병대 측에 '발설해선 안된다'는 주의를 준 것이다. 

타임라인 2 : 02-800으로 시작하는 내선 전화 

사진 : 지난 5월 항명죄로 기소된 박정훈 대령이 재판을 받기 위해 군사법원에 출석했다. 

다음날인 7월 31일 오전 김형래 대령은 이 자료를 상관인 임기훈 대통령실 국방비서관에게 보고했다. 임 비서관은 이를 다시 안보실장에게 보고했다. 바로 이 무렵부터 군의 채 해병 사건 대응 방침은 예정된 경로를 이탈하기 시작한다. 지금부터는 채 해병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었던 7월 31일과 그 이후의 일을 설명한다.  

7월 31일 오후 2시,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결과를 공개하는 언론 브리핑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날 오전 박정훈 대령은 언론브리핑 참석을 위해 서울 용산 국방부 인근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에 앞선 오전 11시, 용산 대통령실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가 진행됐다. 임기훈 비서관 역시 이 자리에 참석했다. 회의가 시작된 지 약 1시간쯤 흐른 11시 54분, 이종섭 전 장관은 02-800으로 시작되는 내선 전화를 한 통 받았다. 대통령실에서 사용하는 내선 전화였다. 이 전화 번호가 구체적으로 대통령실 어느 부서의 번호이며, 이 전 장관이 누구와 어떤 내용으로 통화를 했는지 대통령실은 밝히지 않고 있지만, 이 전 장관의 다음 행보를 보면 그 통화 내용을 추측할 수 있다. 

대통령실 내선 전화를 받은 지 2분 뒤인 11시 56분, 이 전 장관은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예정되어 있던 언론 브리핑 및 국회 보고를 취소하고 사건 이첩을 보류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이 전 장관은 임성근 1사단장의 인사 조치를 중단하고 정상 출근 시키라는 지시도 내렸다. 전날 본인이 직접 결재한 수사 결과와 후속 조치에 대해 다음날 오전 제동을 건 것이다. 

해병대 조사단이 수사에 착수한 7월 19일부터, 국방부 장관 대면보고가 이뤄진 30일까지 10여일간 엄격한 절차에 따라 진행된 채 해병 사망 사건 진상규명 계획이 한 순간에 뒤집혔다. 그러나 이 전 장관이 결정을 뒤집은 근거가 될 만한 공문서는 아직까지 단 한장도 공개되지 않았다. 확인된 사실은 이 전 장관이 결정을 뒤집기 직전, 대통령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이 사건 이첩 보류를 지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대통령실 개입이 의심되는 이유는 또 있다. 언론 브리핑이 갑자기 취소된 후 군의 공보담당자들이 기자들에게 브리핑 취소 사유를 어떻게 설명할 지 고심할 때, 해외 출장을 앞둔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이 긴급 현안 회의를 소집한다. 7월 31일 오후 1시 30분쯤이었다. 급히 소집된 회의였던 탓에 해병대에서는 김계환 사령관 대신 국회 인근에 있던 정종범 부사령관이 회의에 참석했다.

정 부사령관이 이날 회의에 참석하면서 남긴 메모에는 '8월 9일'이라는 날짜가 적혀있다. 이 날짜는 무슨 의미일까. 이날 회의는 7월 31일에 진행됐기 때문에, 8월 9일은 열흘이나 뒤였다. 원래 예정됐던 경찰 이첩일인 8월 2일과 비교해도 7일 뒤다. 공교롭게도 이 날은 윤석열 대통령이 여름 휴가에서 복귀하는 날이었다. 윤 대통령은 8월 2일부터 8일까지 경남 거제로 여름 휴가를 다녀왔다. 윤 대통령이 휴가에서 복귀하면 이 전 장관이 대통령에게 수사 내용을 재보고하고 사건을 이첩하려 했던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이윤세 해병대 정훈공보실장은 국방부 검찰단 조사에서 "부사령관님이 장관님의 지침을 받고 와서 (수사 결과에 대한) 법무 검토를 추가적으로 해야되고, 보고는 8월 9일에 하고 유가족들이 오해하지 않게 설명해야 하고…그런 내용들을 말씀하셨다"고 8월 9일의 의미를 진술했다. 

박정훈 대령이 수사 외압의 실행자로 지목한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본격 등장한 것은 이때부터다.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이종섭 전 장관의 법무 참모다. 7월 31일 오후 1시 반 국방부 긴급 현안 회의 당시 이 전 장관은 유재은 법무관리관에게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와 관련한 법리 검토를 지시했다고 한다. '군인 사망 원인이 되는 범죄의 이첩 방법을 박정훈 대령에게 설명하라'는 내용이었다.  

이종섭 전 장관의 지시 이후 유 법무관리관과 박정훈 대령은 7월 31일과 8월 1일 이틀간 모두 5차례 통화한 것으로 확인된다. 박정훈 대령은 유 법무관리관이 전화로 '혐의자와 혐의 내용을 특정하지 않고 사실관계만 적어 사건을 경찰에 이첩하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사 외압을 받았다는 것이다. 유 법무관리관은 박 대령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며 부인하고 있다.  

타임라인 3 :  8월 2일, 대통령의 전화

이종섭 전 장관이 돌연 입장을 바꾼 7월 31일이 채 해병 사건에서 첫 분수령이었다면,  또 다른 분수령은 8월 2일이었다. 이날은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등장하는 날이자 해병대 수사단의 사건 이첩, 해병대 수사단에 대한 군 검찰단의 수사, 사건 기록 회수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진 날이다. 

8월 2일 오전 10시쯤, 박정훈 대령은 김계환 사령관에게 사건을 예정대로 경찰에 이첩하겠다고 보고하기 위해 사령관 집무실을 찾았다. 박 대령 진술에 따르면, 이때 김계환 사령관은 "어떻게 하지"라고 물었고 박 대령은 "10시 반에 이첩하기로 해 포항에서 안동으로 출발은 시켰다. 경찰에 이첩하는 것만이 해병대가 살아남는 길"이라고 말했다. 김계환 사령관은 "내가 너에게 중지하라고 하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고, 박 대령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칫 직권남용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해병대 수사단원들은 경북경찰청이 있는 안동으로 출발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윤세 해병대 공보정훈실장, 김화동 비서실장 등 참모들과 논의를 마친 김계환 사령관이 돌연 10시 51분 박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이첩 중단을 지시했다. 김계환 사령관은 진술에서 "박 대령이 이미 경북경찰청에 (수사단원들이) 이첩하러 가고 있을 것이라고 해 바로 박 대령을 (집무실에서) 내보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사건 이첩은 진행되고 있었다. 사건을 이첩하기로 했던 10시 반이 지난 시간이었고, 사건을 경찰에 들고 간 해병대수사단 1광수대장은 사건 이첩을 진행 중이었다. 이때 1광수대장 최모 중령 휴대폰으로 김계환 사령관, 해병대 비서실장 등이 전화했으나 최 중령은 받지 않았다. 최 중령은 추후 진술에서 "경찰 사건 인계가 가장 중요한 업무라고 생각했고, 경찰에게 사건 인계에 열중하고 있었던 상황이라 끝나고 전화를 할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오전 11시 13분 김계환 사령관은 박진희 보좌관의 전화를 통해 우즈베키스탄 출장 중이던 이 전 장관에게 이첩 사실을 보고했다. 11시 27분에는 신범철 당시 국방부 차관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11시 50분, 해병대 수사단은 경북경찰청에 사건 이첩을 완료한다. 

국방부는 이첩 사실을 대통령실에 보고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사령관과의 통화를 종료한 직후 신범철 차관은 11시 29분 임기훈 국방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후 11시 33분에는 조태용 안보실장과 통화했다. 조태용 안보실장과 이종섭 장관의 통화도 이후 두 차례 이어졌다. 

상황을 정리하면 이렇다. 이종섭 장관이 대통령실 내선 전화를 받고 하루 만에 지시를 뒤집었는데, 그 지시가 해병대로 내려간 뒤에는 그대로 이행이 되지 않았다. 급기야 사건이 경찰에 이첩되기까지 했다. 대통령실의 외압이 사실이라면, 그 외압을 넣어서 일이 해결된 것이 아니라 외압이 먹히지 않았다는 의미가 된다. 

바로 이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 본인이 등장한다. 오후 12시 7분, 윤석열 대통령이 이 전 장관에게 개인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약 4분간 통화했다. 그리고 이 통화 직후인 12시 14분, 윤석열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이시원 공직기강 비서관이 수사 외압 의혹 관련자들의 통화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임기훈 국방비서관이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 약 44초간 짧게 통화했다. 임 비서관은 12시 29분에도 이 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 36초간 통화했다. 

임기훈 국방비서관과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의 통화가 있던 12시 28분, 이 전 장관과 함께 우즈베키스탄에 있던 박진희 보좌관은 김계환 사령관에게 텔레그램으로 두 가지를 물었다. 하나는 경찰로 사건의 이첩 여부가 확인이 되었는지, 다른 하나는 임성근 1사단장이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지였다. 결국 임성근 1사단장을 수사 선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대통령실과 국방부 수뇌부의 관심사였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윤 대통령은 이 전 장관에게 12시 43분에도 전화를 걸었다. 이때 윤 대통령과 이 전 장관은 약 13분간 통화를 했다. 이 통화가 진행되고 있던 때인 12시 45분, 김계환 사령관은 박정훈 대령에게 구두로 보직 해임을 통보했다. 

8월 2일 오후부터는 국방부 검찰단이 전면에 나섰다. 국방부 검찰단은 오후 2시, 경북경찰청에 이첩된 사건 기록을 회수하기 위한 회의를 여는 한편, 박정훈 대령 이하 해병대 수사단에 '집단항명 수괴' 혐의를 적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이후 이 혐의는 ‘항명죄’로 바뀌었고 피의자는 박정훈 대령에 한정됐다.) 이 회의가 있기 전인 오후 1시 25분, 윤석열 대통령은 임기훈 국방비서관과도 통화했다. 

임 비서관은 이후 오후 1시 42분에 국방부 유재은 법무관리관에게 전화를 했다. 유 법무관리관이 지난 21일 국회 채 해병 특검법 입법 청문회에 나와 진술한 바에 따르면, 임 비서관은 이때 유재은 법무관리관에게 ‘경북청에서 전화가 갈 것’이라고 말했다. 임성근 1사단장이 혐의자로 포함된 사건 기록 회수 과정에 국방부보다 대통령실이 먼저 나섰다는 것을 보여주는 정황이다. 이후 유 법무관리관은 노규호 경북청 수사부장과 통화했고, 국방부 검찰단은 오후 7시 20분에 경북경찰청으로부터 사건을 다시 인계받았다. 

사진 : 대통령실

회수 이후에도 중간보고서는 "임성근 책임 물어야"....최종보고서 뒤집혀

경찰로부터 회수해 온 채 해병 사망 원인 사건은 그로부터 일주일이나 지난 8월 9일, 국방부 직할 수사 기관인 국방부 조사본부로 이관됐다. 이틀 후인 8월 11일 기록을 인계받아 재검토를 시작한 국방부 조사본부는 8월 14일 중간 보고서를 제출한다. 국방부 조사본부의 중간 보고서 내용은 해병대 수사단 보고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해병대 수사단이 특정했던 혐의자 8명에서 말단 간부 2명을 제외한 6명을 혐의자로 포함시켰다. 임성근 1사단장도 포함됐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국방부 검찰단에 중간보고서에 대한 의견을 요청했다. 그리고 두 부서의 의견을 받은 후 작성된 최종 보고서에는 혐의자가 2명으로 축소됐다. 임성근 사단장은 결국 혐의자에서 제외됐다. 현재 경북경찰청은 국방부로부터 다시 사건을 이첩받아 채 해병 사망 원인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이다. 

세 갈래로 진행되는 수사·재판… "특검 필요"

경찰이 진행 중인 채 해병 사망 원인 수사와 별개로 박정훈 대령은 군사법원에서 항명 혐의 재판을 받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들이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에 외압을 가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채 해병이 사망한 지 벌써 1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그 어떤 의혹도 해소되지 못하면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특검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지난 5월 채 해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무산된 바 있다. 

박정훈 대령 측은 해병대의 채 해병 사망 원인 수사 과정에서 발생한 수사 외압 의혹과 부당한 지시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특검 도입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7월 31일 대통령이 격노를 했었다고 전해지는데 그 자체는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거죠. 도대체 뭘 보고 격노를 했냐는 말입니다. 당시 해병대 수사단에는 경력이 많은 수사관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며칠 밤잠을 설쳐가면서, 격무를 치뤄가면서 만들어낸 서류입니다. 그 서류를 읽어보지도 않고 잘못됐다고 말할 수가 있나요? (...) 이첩이 강행된 이후에, 박정훈 대령을 항명 사건으로 입건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그 단계, 특히 기록을 회수하는 단계에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개입됐다면 이것은 명백한 불법행위입니다. 특검으로 갔을 때 밝혀져야 될 부분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대통령의 격노는 어째서 시작됐는가 하는 것이고요. 정말 항간에 떠도는 바와 같이 김건희 여사를 통한 로비가 있었느냐. 그 문제가 있을 거고 또 하나는 대통령이 기록 회수나 (박정훈 대령) 입건, 구속영장 청구 및 기소 단계에서 어느 범위까지 개입을 한 것인지입니다." 박 대령을 변호하고 있는 김정민 변호사가 말했다. 

뉴스타파는 김형래 대령, 임기훈 전 비서관, 박진희 전 국방부 장관 군사보좌관, 임성근 전 1사단장 등 당시 사건 관계자들과 대통령실에 입장을 물었지만 답변은 오지 않았다. 이종섭 전 장관의 변호인은 "(박정훈 대령에 대한 인사조치와 항명죄 수사, 사건 기록 회수와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구체적인 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고, 이첩 보류 지시는 장관의 판단과 결정이었다"고 밝혔다. 국방부 긴급 현안회의 당시 정종범 부사령관의 메모에 윤석열 대통령 여름 휴가 복귀일인 8월 9일이 기재되어 있던 것에 대해서는 "장관의 빠듯한 일정을 고려한 것"이며 "대통령 휴가나 보고, 승인과는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오는 19일이면 채 해병 순직 1주기가 된다. 앞서 채 해병의 유가족은 언론에 공개한 입장문을 통해 "1주기 전에 사건 진상 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해달라", "저희 아들 희생에 대한 공방이 마무리되고 이후에는 우리 아이만 추모하면서 남은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뉴스타파 강혜인 ccbb@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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