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뻬 입고 연기하는 게 편하다”…배우 고두심, 7년 만에 연극 복귀

남지은 기자 2024. 7. 1. 14:4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일단 이거부터 먹어봐요. 먹고 해, 먹고." 지난 27일 경기 성남아트센터 대기실에서 만난 배우 고두심(73)은 오래 알고 지낸 친구 엄마 같았다.

"제주의 대자연에서 살아와서인지 매니큐어를 바르면 답답하고 힐을 신으면 발에 쥐가 나요. 좋은 옷 입고 세련되게 꾸미는 역할보다 '몸뻬' 한장 걸치고 어디서든 털썩 주저앉을 수 있는 역할이 마음이 더 편해요." 그가 자꾸 몸뻬를 고집하자 조현탁 감독이 최근 종영한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에 부잣집 엄마 복만흠으로 캐스팅하기도 했다.

고두심의 연기는 비슷한 엄마여도 기시감이 느껴지지 않고 보는 이들을 빠져들게 만든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고두심이 7년 만에 음악극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7일까지 성남아트센터)에 출연한다. 블리츠웨이스튜디오 제공

“일단 이거부터 먹어봐요. 먹고 해, 먹고.” 지난 27일 경기 성남아트센터 대기실에서 만난 배우 고두심(73)은 오래 알고 지낸 친구 엄마 같았다. 만나자마자 맛집에서 사 왔다는 김밥을 종류별로 건네주고도 더 맛있는 게 없을까 간식을 또 주섬주섬 꺼냈다. 함께 자리한 그의 동생은 “원래 남을 잘 챙기고 수더분한 언니”라고 했다.

1972년 문화방송(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이후 주로 소박한 서민 가정의 억척스러운 엄마 역을 맡은 것도 이런 성격이 반영됐다. “제주의 대자연에서 살아와서인지 매니큐어를 바르면 답답하고 힐을 신으면 발에 쥐가 나요. 좋은 옷 입고 세련되게 꾸미는 역할보다 ‘몸뻬’ 한장 걸치고 어디서든 털썩 주저앉을 수 있는 역할이 마음이 더 편해요.” 그가 자꾸 몸뻬를 고집하자 조현탁 감독이 최근 종영한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에 부잣집 엄마 복만흠으로 캐스팅하기도 했다. “저의 도시적인 이미지를 강조하고 싶다더라고요. 그런 감독을 만나 어쩌다 한번씩 예쁘게 나오는 걸로 만족합니다. 하하하.”

7년 만에 출연한 음악극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6월27일~7월7일 성남아트센터)에서도 남편을 찾아다니며 혼자 억척스럽게 아이를 키우는 엄마 윤옥이로 나온다. 6∙25 전쟁으로 헤어진 부부의 일대기를 다룬 이 작품에서 고두심은 20대부터 90대까지 다양한 연기를 펼친다. “전쟁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윤옥이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사는 모습은 그 시절 아픔을 감추고 삭이면서 한생을 살아낸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그는 “늘 보던 헌신하는 엄마이지만 한 여자의 일대기를 조명한다는 점에서 남다르다”고 했다.

52년간 ‘누구의 엄마’로 살면서 시대에 따른 엄마 역할과 분량의 변화를 느낀다고 한다. “‘전원일기’가 끝날 무렵 이미 제가 맡은 맏며느리가 너무 순종적이라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더 주체적이고 욕망에 충실한 엄마가 많아졌잖아요. 무엇보다 엄마 캐릭터에도 서사를 담는 시대가 되면서 엄마가 과거보다 더 각광받는 점이 좋아요.” ‘히어로는 아닙니디만’에서 복만흠은 초능력자이고, ‘계룡선녀전’의 선옥남은 699년 전 나무꾼과 가정을 꾸린 선녀다. 그러나 “국민 엄마로 불리는 건 부담스럽다”며 웃었다.

블리츠웨이스튜디오 제공

고두심의 연기는 비슷한 엄마여도 기시감이 느껴지지 않고 보는 이들을 빠져들게 만든다. 지상파 3사의 연기 대상을 모두 거머쥐었지만 자신을 특별한 배우로 여기지 않는 것이 52년 롱런의 비결 같았다. 데뷔 이후 연기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2~3년마다 한번씩 연극 무대에 오른 그는 지금도 계속 배운다고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다가 배우가 됐어요. 연기를 따로 공부한 적이 없어서 연극을 시작했는데 무대에 서면 긴장하지만 해냈다는 희열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죠. 이번 작품을 하면서도 (이순재, 이정길, 임동진 등) 고령에도 무대를 누비는 배우들을 보며 작품에 임하는 태도 등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요.”

고두심은 배우로서 인정받을 수록 더 나은 걸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고 했다. “‘여기까지 보여줬으니 됐죠?’ 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작품을 할 때마다 보는 이들이 뭐가 더 있기를 기대하는 건 당연한 것 같아서 계속 발전하고 싶어요.”

나이가 들면서 ‘그때 좀 그래볼걸’ 돌이켜보게 된 것도 연기를 더 잘하고 싶다는 갈증 때문이다. “7남매로 자라 양보하는 게 습관이 되어서인지 20대 때도 상대를 너무 배려하며 살았어요. 나이 드니 그때 좀 나만 생각하며 살아볼 걸 싶기도 했어요. 배우는 경험이 최고인데 그렇게 살아보지 못해서 그런 연기를 할 때 스스로 부족함을 느껴요.” 1979년 영화 ‘아침에 퇴근하는 여자’ 등 몇편 외에는 멜로 연기를 못한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근데 그거 아세요? ‘애마 부인’ 캐스팅 제안이 저한테 가장 먼저 왔었다는 사실. 하하하.”

고두심이 인생작으로 꼽은 ‘사랑의 굴레’. 한국방송 제공
고두심이 인생작으로 꼽은 ‘전원일기’. 문화방송 제공
고두심이 인생작으로 꼽은 노희경 작가의 작품 중 ‘꽃보다 아름다워’의 한 장면. 한국방송 제공

70대가 된 요즘은 좋은 어른이 되는 것에 관심이 많다. 2017년 ‘불효자는 웁니다’ 이후 7년 동안 연극 무대에 서지 않은 이유도 후배들에게 폐 끼치는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암전이 되면 젊었을 때는 더듬더듬 잘 찾아갔는데 이제는 앞이 잘 안보이더라고요. 내 몸의 모든 기능이 내 생각대로 안되니까 함께 연기하는 후배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조금 주저하게 됐죠.” “따뜻하고 편안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 의외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려고 노력한다. “‘물처럼 살고 싶다’는 제목의 시를 책상에 붙여두고 곱씹으며 물 흐르는 것처럼 평화롭게 살자 마음을 다잡아요. 모두를 보듬으며 모나지 않게 살고 싶어요.”

유튜브, 오티티(OTT)로 옛 작품을 다시 보는 시대가 되면서 그의 명대사 “잘났어 정말~”(‘사랑의 굴레’)이 다시 유행하는 등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고두심은 재조명되고 있다. 특히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한 데뷔 초창기 이력이 눈길을 끈다. 남아 선호 사상이 가득했던 시절에 “오빠 밥해주겠다”는 ‘핑계’로 겨우 서울에 올 수 있었고 배우의 꿈을 이뤘다. 대본 리딩 때 지나치게 긴장하는 등 준비가 안 된 자신의 모습과 여자 후배들에게 담배 심부름을 시키는 등 부당한 환경에 실망해 연기를 중단하고 다시 회사에 다니다가 1년여가 지난 뒤 ‘갈대’란 작품으로 복귀했다.

무작정 성공을 좇지 않고 부족한 걸 인정하고 부당한 걸 아니라고 말하며 ‘자신만의 길’을 걷다 보니 “스스로 연기를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전원일기’와 “연기 변신을 한” ‘사랑의 굴레’ 그리고 ‘꽃보다 아름다워’부터 ‘우리들의 블루스’ 노희경 작가 작품까지 “연기 인생에 영향을 미친 인생작”들을 만나 지금까지 달리고 있다.

그래서 그는 요즘 젊은 친구들에게 “자신만의 철학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젊었을 때는 너무 힘들고 어떻게 해야 인생을 잘 살아낼 수 있을까 무섭기도 하지만, 그냥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내 생각대로 꿋꿋하게 가다 보면 길이 보이는 것 같아요.” “촬영장이 일터이자 쉼터”라는 고두심도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계속 배우며 나아갈 예정”이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