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빨대 꽂는 부모들과 방송사들에게 '우리, 집'이 주는 교훈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골프 여제 박세리 부친이 벌인 충격적인 만행, 요즘 어딜 가나 그 얘기들을 하며 안타까워한다. 부모 자식 간에 얽힌 가정사이긴 하나 박세리의 위상이 워낙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지라 여느 유명인과는 다른 차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리라. 방송에서 계속 '리치 언니' 이미지를 쌓아 왔는데 이제 어쩔 건가. 나이를 먹어가며 어지간한 일은 남모를 사정이 있겠거니, 이해 해보려 한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이해 못 하겠는 게 있다. 반려견 유기와 자식 등에 빨대 꽂는 부모다. 생활비 정도 보조 받는 거야 키운 공이 있으니 그러려니 하자. 그러나 오랜 시간 등골 빼먹는 것으로 부족해 자기 자식 얼굴에 먹칠을 하다못해 쪽박을 차게 만드는 사람들. 들어보면 그간 뒤로 빼낸 액수가 어머 어마하다.
더구나 이런 사람들이 몇 년에 한 번씩 나오지 않나. 그럴 때마다 물음표가 생긴다. 애도 아닌 어른이거늘 그리 되도록 왜 가만히 있었을까, 왜 당하고만 있었나. 아마도 오랜 시간 일종의 세뇌를 당해왔기 때문이지 싶다. '나는 너를 위해 희생해왔어. 내 삶은 없었어. 이게 다 너를 위한 일이야. 네가 나 없이 뭘 할 수 있어?' 이런 식으로. 흔히 말하는 '가스라이팅'을 가장 많이 하는 게 가족이란다.
현재 10화까지 방송된 12부작 MBC 금토드라마 <우리, 집>에 '가스라이팅'이 자주 등장한다. 김희선이 가정 심리 상담의사 '노영원' 역할인데 자신의 이름을 건 심리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니 사회적으로 오은영 박사와 같은 위치가 아닐까? 오은영 박사는 전문용어가 아닌 '가스라이팅' 대신에 '심리적 지배'라고 부르자고 제안을 했는데 노영원은 편의상 대중적인 표현 '가스라이팅'을 자주 쓴다. 왜 '가스라이팅'이 자주 나오느냐. 이 드라마에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인물이 많아서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노영원의 남편 '최재진'(김남희). 최재진은 어머니 홍사강(이혜영)에게 일평생 세뇌를 당했고 동료 의사인 오지은(신소율)에게도, 더 나아가서 사이코패스지 싶은 이세나(연우)에게도 걷잡을 수 없이 휘둘린다. 여기서 기막힌 것이 노영원의 아들 최도현(재찬)이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는 사실. 가정교사를 가장한 문태오(정건주)와 선배 소이(한성민)가 시키는 대로 끌려 다니는 유약한 면을 보인다.
드라마 <우리, 집>이 주는 교훈이 있다. 세뇌를 당한 피해자가 가해자의 마수에서 간신히 벗어나더라도 또 다른 인물에게 세뇌 당하기 쉽다는 것. 현재 최재진 부자 두 사람 모두 정신을 차렸다는 전개지만 그렇게 쉽사리 벗어날 수 있을까? 의사고 법조인이고 다 필요 없다. 내 삶에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게끔 자존감 높은 아이로 기르는 것이 현명하고 바람직한 교육이다. 누군가의 조언을 기꺼이 참고하되 취사선택하는 혜안을 갖도록, 가족은 물론이고 이 세상 누구에게도 흔들리지 않도록 심지 굳은 아이로 길러야 하겠다.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그리고 중요한 거 한 가지, 나는 살아오는 동안 누군가를 가스라이팅 한 적이 없나, 각자 되돌아보면 좋겠다.
<우리, 집>이 주는 경고? 몇 년 전부터 성업 중인 공개 심리 상담 방송들을 향한 경고라고 할까? 특히 아동을 앞세운 방송들. 현재까지 극중 대놓고 악한 인물이 두 사람이다. '이세나'와 '문태오'. 그런데 이 둘 모두 노영원의 솔루션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다. 가족이어도 나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 잘라내라고 하는 너도 네 가족을 삭제할 수 있는지 어디 한번 두고 보자는 식이다. 특히 살인을 저지른 문태오는 어린 시절 노영원에게 상담을 받았던 문제 아동의 형이었다.
채널A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가 아이들의 얼굴을 공개하는 부분에 대해 시작할 때부터 반대해왔다. 다행히 이름 석 자는 알리지 않지만 일단 얼굴이 공개되고 사는 환경까지 다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상이 한번 나오면 평생 따라다닐 텐데, 채널A에 요청해서 지운다고 해도 어딘가에는 남아 있을 수 있지 않은가. 매주 방송이 끝나면 어김없이 아이든 부모든 인터넷 상에서 입도마에 오른다. 욕받이가 되는 거다. <우리, 집>, 이 드라마에 노영원에게 상담 받고 나가는 두 아이의 원망으로 가득한 표정, 눈빛이 나왔다. 이 장면, 심리 상담 프로그램 제작진들이 보고 참고했으면 좋겠다.
정석희 TV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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