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바람 탄 자사주 취득… 개미 `추격매수 주의보`
연초부터 정부가 추진해 온 '밸류업' 정책이 하나의 투자 테마로 자리잡는 가운데 기업들의 자사주 취득 공시가 급증했다. 전문가들은 저평가 기업에 투자할 때 자사주 매입뿐 아니라 배당 등 다른 주주환원 정책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또 자사주 매입 공시 후 실제 취득이나 소각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어 유의가 필요하다.
2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와 코스닥 상장사 중 올 들어 지난 26일까지 자사주 취득을 공시한 기업은 총 201개사였다. 취득(예정 포함) 공시 금액 규모는 4조710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 178개사 대비 13%나 늘어난 수치다. 올해 자사주 처분 공시를 별도로 내놓은 곳도 13곳이나 됐다.
상장사의 순자산비율(PBR)과 자기자본이익률(ROE) 개선을 골자로 하는 밸류업 정책이 속도를 내면서 주주환원 확대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국내 상장사들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이 보유한 현금을 활용해 자사주를 매입하면 시중에 유동되는 주식 수가 줄면서 기존 주주의 보유 지분 가치가 상승한다. 자사주 소각시 총 발행주식 수 자체가 줄어들면서 주당 순이익(EPS)이 높아지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또 자사주 매입 시 시장은 해당 기업의 주식이 저평가 된 것으로 해석하면서 투자심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올해 선제적인 주주환원 확대에 나섰던 현대차그룹과 금융지주사 등의 경우 자사주 취득 공시 이후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하기도 했다.
기아는 지난 1월 25일 주주가치 제고 정책의 일환으로 올해 5000억원 규모 자사주 취득을 완료한 뒤 그중 절반(50%)을 소각하겠다고 공시했다. 공시 전일 대비 현주가 상승률(27일 종가 기준)은 41.4%에 달한다.
금융지주들도 올해 대규모 자사주 매입에 나섰다. 각각 3200억원, 3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공시한 KB금융, 하나금융지주의 경우 공시 전일 대비 주가가 각각 21.3%, 26.4% 상승했다.
이날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2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 등 밸류업 계획을 공개한 콜마홀딩스는 주가가 3.52% 급등하기도 했다.
하지만 몇몇 기업을 제외하고는 자사주 취득 공시 기업의 주가 수익률은 큰 변동성을 보였다.
기업의 자사주 취득 공시 익일 등락률 상위 기업을 분석한 결과 대동전자(29.9%), 삼목에스폼(29.86%) 등은 상한가를 기록했고 에스코넥(22.54%), 삼천당제약(16.17%), HLB바이오스텝(13.97%), HPSP(11.80%), 엔씨소프트(10.57%), 코스텍시스(9.65%), 이비테크(9.29%) 등도 큰 폭 상승세를 보였다.
이들 종목의 공시가 나오기 전날의 주가를 현 주가와 비교하면 어떨까. 최근 인공지능(AI) 열풍에 따른 고대역폭메모리(HBM) 기대감을 반영한 코스텍시스(102.6%)를 제외하곤 대체로 상승 폭을 반납했다.
삼천당제약(16.17%), HPSP(6.92%), HLB바이오스템(1.97%)은 플러스(+) 수익률을 지켰지만 삼목에스폼(0.11%)은 보합세, 에스코넥(-11.24%), 엔씨소프트(-2.01%), 이비테크(-2.91%) 등은 하락했다. 대동전자를 제외하곤 전부 코스닥 종목이다.
특히 대동전자의 경우 최근 허위 실적을 발표해 주가를 띄운 뒤 정정공시 요구를 받자 상장폐지 절차를 밟겠다고 공시하면서 자사주 매입 역시 주가 부양을 위한 카드였다는 의구심도 나오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자사주 취득이 추세적인 주가 상승으로는 이어지지 않는 만큼, 투자 시에도 유의해야 한다는 조언을 내놓고 있다.
자사주 취득에 그치치 않고 소각까지 이어져야 실질적인 주주환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데다가 자사주 취득이나 소각을 공시하고 실제 체결로는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또 재투자에 활용할 현금 재원 없이 무리한 주주환원에만 나설 경우 기업의 기초체력(펀더멘탈)이 약화할 가능성도 있다.
올 들어 현재까지 자사주 취득(예정 포함) 공시 금액 규모는 4조7100억원인 데 반해 소각 공시 금액은 2440억원에 그쳤다.
김민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저평가 기업의 자사주 매입은 주주환원에 관심이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로 인식 될 수는 있다"면서도 "소각을 전제로 하지 않은 자사주 매입은 기업 가치 상승으로 실질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닌 재무적인 의사결정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사주 매입 공시만으로 주가가 과도하게 상승하는 것은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밸류업 종목에 투자하고 싶다면 해당 기업의 과거 자사주 매입·소각 이력이라든지 배당이나 다른 형태의 주주환원을 같이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신하연기자 summer@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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