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트코 ‘폭염산재’ 사망 1년…36도 주차장서 4만보, 달라진 게 없다

이지혜 기자 2024. 6. 20. 17:4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건설노동자 “뙤약볕에 달궈진 철근에 잘못 닿으면 화상”
택배노동자 “어디서 쓰러지면 아무도 못 찾아” 두려움
20일 인천 연수구에 있는 코스트코코리아 송동국제도시점에서 카트를 옮기고 있는 카트노동자 모습. 민주노총 제공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h:730’을 쳐보세요.)

1년 전, 6월19일은 서울 최고온도가 34도에 이르며 지난해 폭염의 시작을 알린 날이었다. 찜통 같은 대형마트 실내 주차장에서 하루 4만보씩 걸으며 쇼핑카트를 정리하던 30대 노동자 고 김동호씨가 폭염 속에 쓰러져 숨졌다. 당시 ‘폭염산재’를 막자며 세상이 떠들썩했지만 그것도 잠시, 더위와 함께 관심도 떠났다. 꼬박 1년 뒤, 여름은 어김없이 돌아왔지만 야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근무환경은 딱히 달라진 게 없다.

코스트코 광명점에서 일하는 이교덕(55)씨의 일터도 숨진 김씨와 똑같은 실내 주차장이다. 숨이 턱 막히는 폭염에 자동차 엔진이 내뿜는 열기까지 더해져 주차장 온도는 바깥보다 2도 더 높은 36도에 이르는데, 그는 여기서 하루 8시간 동안 카트를 이리저리 옮기며 적게는 2만5천보, 많게는 4만보를 걷는다. 이씨는 20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요즘 체감상으로는 완전히 동남아 열대지방 날씨인데, 주차장에 환기장치도 제대로 안 열려있어서 바람도 안 분다”며 “습도까지 높아지면 걷기도 힘들 정도라 장마철이 제일 걱정”이라고 했다.

지난해 김씨의 폭염산재 사망 이후로 에어컨이 설치된 휴게실이 마련되는 등 약간의 변화는 있었지만, 열댓명이 1400개의 카트를 돌려야 하는 과중한 업무는 그대로다. 여름철엔 주차장에 2명이 충원되는데 그마저도 다른 부서에서 ‘돌려막기’식으로 데려온다. 고용노동부 지침상 폭염특보가 내려지면 1시간당 10∼15분 이상 휴식을 부여하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잘 지켜지진 않는다. 이씨는 “휴식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진 않고 (카트를 빨리) 많이 끌어서 스스로 쉴 시간을 만든다”고 말했다.

마트산업노조는 지난해 폭염 산재사망 사고에도 불구하고 노동환경을 개선하지 않고 있는 코스트코에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는 “쇼핑카트를 6대 이상 끌지 않도록 한 취업규칙도 안 지켜지고 있고, ‘온열질환 예방 체크리스트’도 당사자 확인 없이 임의 작성되고 있다”며 “인력부족와 일관된 지침 없는 체계가 코스트코의 고질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건설현장 편의시설 실태 및 폭염지침 법제화 촉구 기자회견이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참석자들이 건설노동자를 온열질환으로부터 살려내라고 요구하며 상징의식(아이스 안전모 챌린지)을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야외 작업이 많아서 매년 폭염기마다 온열질환 사망자가 나오는 건설업도 마찬가지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여름철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 산재사망자 29명 가운데 20명이 건설업에서 나왔다. 하지만 건설노동자의 여름철 근무조건은 심지어 ‘퇴보’하고 있다. 전재희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죽을 만큼 더운 정도가 아니라 정말 더워서 사람이 죽는 곳이 건설현장인데, 폭염기에만 반짝 대책들이 나오고 묻히기를 반복하고 있다”며 “심지어 최근엔 건설 경기가 침체하고 노조 탄압도 심해지는 상황이라 작업중지권이나 편의시설 보장을 요구하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36년차 형틀목수 전아무개(66)씨는 여전히 태양을 가릴 지붕 하나 없이 쫄딱 비를 맞은 것처럼 땀에 젖어 일한다. 땡볕에 일하다가 쓰러질 것 같은 어지러움을 느낀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공사장 안에는 가벽 때문에 바람 한 점 안 부는 거 아세요? 콘크리트가 굳을 때도 열을 내고, 온갖 알루미늄과 철로 된 자재들도 달궈져서 계란 까면 바로 후라이됩니다.” 전씨는 아무리 땀이 줄줄 나도 팔토시와 넥워머까지 하고 작업을 한다. 자칫 뙤약볕에 맨살을 오래 내놓거나 햇볕에 달궈진 철근에 잘못 닿으면 화상을 입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옥외노동자의 폭염 피해를 막기 위한 안전보건 규정은 ‘그늘진 장소 제공’이 전부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5월 ‘폭염 대비 근로자 건강보호 대책’을 수립해 체감온도 31도가 넘으면 오후 2∼5시 사이 옥외작업을 중지하도록 했지만, 권고사항에 그쳐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씨는 “여름은 매년 더 뜨거워지는데, 노조 탄압이 심해진 뒤로는 사용자들이 샤워실도 설치를 안 해주고 있다”며 “이름 있고 큰 현장에나 대형 선풍기 정도 설치해주는 식”이라고 말했다.

택배노동자도 ‘폭염산재’ 위험군 가운데 하나다. 건축법상 창고에 해당하는 물류센터 건물은 환기도 단열도 안돼 폭염에 취약한 탓이다. 시흥·안산 지역 10년차 택배노동자로 하루에 200∼300개의 택배 박스를 나르는 최현규(45)씨는 “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갑자기 힘을 쓰고 무거운 짐을 들면 순간 어지럽다”고 말했다. 최씨는 “이런 폭염 날씨엔 물을 많이 마셔야 하는데 화장실 갈 시간도 아껴서 일해야만 시간 내에 배송 업무를 끝낼 수 있다”며 “대충 입만 헹구고 일한다. 동료들끼리 ‘어디서 쓰러지면 아무도 못 찾는다. 이상 생기면 꼭 전화해라’고 말하곤 한다”고 덧붙였다.

택배노동자가 열사병으로 쓰러졌다는 뉴스는 매년 들려오지만, 노동환경이 나아졌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최씨는 “집배 센터에 천막 하나 생긴 거 빼고는 나아진 게 없다. 샤워실도 없고 화장실도 부족한 상황”이라며 “노동자들 요구로 설치됐던 제빙기마저, 올해는 회사에서 식중독 관리가 안된다며 다 회수해버렸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지난해 7∼8월 건설현장 31곳에서 222건의 체감온도를 측정한 결과, 기상청이 발표하는 체감온도와 건설현장이 평균 6.2도 차이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노조 제공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윤연정 기자 yj2gaze@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