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을 준비했는데…임용 두 달 만에 꿈이 꺾였다[어느 젊은 공무원의 죽음]
“합격했어”
토목 전공을 살려 지망한 공무원
10년 수험 생활…38세에 이룬 꿈
“가르쳐주고 혼내야 하지 않나”
공문 작성법도 배우지 못했는데
1개월차에 주어진 고난도 업무
수만장 법령집·서류 검토 요구
“그만둘까. 내일까지 생각해오래”
시보 신분서 잘릴까 걱정하며
‘일 못하면 면직’ 검색하며 불안
‘민폐 없이 자살하는 법’ 찾기도
“충분히 잘했을 친구였는데…”
충북도 직장 내 괴롭힘 감사 중
지난해 9월 어느 날이었다. 최모씨(38)가 대학 선배 이모씨(40)를 찾아 서울로 왔다. 최씨는 가방을 열어 무언가 꺼내 보였다.
“합격했어.”
9급 지방직 공무원 시험의 합격증서였다. 대학 시절 7급 공무원을 준비하다 9급 공무원으로 목표를 바꾸고 10년 만에 얻어낸 결과였다. 전화로 소식을 전해도 됐을 텐데, 굳이 직접 합격증을 보여준 게 최씨답다고 이씨는 생각했다. 무뚝뚝하지만 책임감 강하고 다정한 친구다. 좋은 일이 생기면 부러움이나 질투 없이 마음껏 축하해줄 수 있는 친구다.
“시드니 여행 갈 생각이었는데 같이 가자! 임용돼서 발령받으면 시간 없잖아.” 이씨가 말했다. 두 사람은 대학 때 여행동아리 회장을 이어 맡았다. 최씨는 수험 생활 탓에 해외여행도 제대로 가지 못했다. 두 사람은 바로 호주에 가기로 했다.
최씨는 급하게 결정한 와중에도 여행 일정을 꼼꼼하게 챙겼다. 여행 여정과 이용 호텔에다 예상 비용도 적었다. ‘세금 및 봉사료’를 더해 1원 단위까지 계산했다. 보조배터리는 모델명도 기록했다. 투박한 다이어리에 세세하게 메모하는 게 오랜 습관이었다.
9월17일 떠나 호주 멜버른과 시드니를 거쳐 28일 귀국하는 11일간의 여정이었다. 꿈에 그리던 공무원 시험 합격 뒤 잡은 첫 해외여행은 희망과 설렘으로 가득했다. 여행 중 찍은 사진엔 자신감 넘치는 최씨의 모습이 보인다. 최씨는 호주에서 돌아온 뒤 태국 여행 코스도 미리 짰다. 행복한 앞날만 남은 것 같았다. 기쁨을 준 첫 여행은 마지막 여행이 되었다. 최씨는 공무원에 임용되고 두 달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임용 직후 법률 검토 업무 투입
최씨와 중학교 때부터 친했던 25년 지기 김모씨는 여행을 다녀온 최씨가 자신의 조부상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왔던 날을 선명하게 기억했다.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온 최씨의 표정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애도를 표하면서도 밝게 빛나던 그 눈빛이 아직도 기억나요. 앞으로 시작될 공무원 생활에 대한 기대감과 잘하고 싶어 하던 마음을 한참 이야기했거든요.”
김씨는 최씨의 합격 소식을 듣고 “눈물이 났다”고 했다. 고생만 하던 친구가 이제야 빛을 보는구나 싶어 “결혼만 하면 되겠다”며 축하했다.
최씨가 시험에 합격한 건 중소기업에 취직해 회사 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다. 10년 가까이 별다른 수입 없이 수험 생활이 길어지자 택한 대안이었다. 입사 후 몇달 지나지 않아 시험에 덜컥 합격한 것이다. 회사에서도 주변에서도 ‘요즘 공무원 생활이 쉽지 않다’며 계속 회사에 다닐 것을 권했지만, 그는 오랜 소원을 이루는 길을 선택했다.
최씨 친구들은 그가 소신이 있으면서 강직하고, 요령을 피울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공무원에 정말 잘 어울리는 성격”이라고 했다. 친구 정모씨는 “(최씨의) 꿈이 공무원이었다. 고등학교 때 건축가를 꿈꾸기도 했는데, 대학 토목학과를 나온 뒤에는 공무원을 지망했고 전공을 살리고 싶어 했다”고 전했다.
최씨가 큰 기대를 안고 괴산군청에 처음 출근한 게 지난 1월2일이었다. 그가 남긴 다이어리를 보면, 이틀째 되는 날 비로소 컴퓨터가 설치됐다. 그날 오후 2시에서 3시까지 재해 예방 사업 추진을 위한 관내출장 신청을 올렸다.
임용 직후 최씨의 이름으로 작성된 공문을 보면 그가 어떤 업무를 맡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전기사업허가 신청에 따른 자연재해대책법 검토 회신’ ‘개간대상지 선정 신청에 따른 자연재해대책법 검토 회신’ ‘전기사업허가 신청(개발행위 의제)에 따른 자연재해대책법 검토의견 회신’ ‘도시개발구역지정 신청을 위한 협의 요청에 대한 자연재해대책법 검토의견’ 같은 것이다.
그의 이름으로 작성된 마지막 공문의 제목은 ‘공장 신설승인 신청에 따른 자연재해대책법 보완사항 요청’이었다. 민감한 개발 관련 민원에 관해 법률을 해석한 뒤 보완사항을 검토한 것이다. 임용 1~2개월 된 9급 신규 공무원이 맡아서 처리하기에는 난도가 높은 것이다.
법률 검토가 필요한 일이기에 그는 매일같이 수만장에 달할 것으로 보이는 법령집과 업무 관련 서류를 들여다봐야 했다. 단기간에 익힐 수 없는 분량이었다. 전문성도 필요한 일이었다.
쏟아지는 상사의 질책에 수치심
늦깎이 신임 공무원인 최씨는 상사의 압박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최씨가 출근 후 첫 토요일에 친구와 한 통화에서는 상사가 “너 지금까지 뭐 했냐”며 화를 냈다는 내용이 등장했다. 첫 출근 후 책상이 없고 이틀째 되는 날 책상과 컴퓨터가 설치됐다. 신임 공무원으로 일할 수 있는 교육을 아무것도 받지 않은 상태였다. 기존 근무자들은 공문 작성법 등을 알려주지도 않았다. 최씨는 전임자가 쓴 공문을 찾아 베껴가며 처리해야 했다.
각종 법령과 지침서는 하루이틀 만에 보고 이해할 수 있는 분량이 아니었다. 주말에도 독서실에 가서 계속 지침을 볼 정도로 일이 많았다. “왜 아직도 안 봤냐”는 불호령이 계속 떨어진다고 최씨는 하소연했다. 일주일쯤 지난 뒤부터 사직을 생각했다.
“혼나는 건 상관없는데 가르쳐주고 혼내야 하지 않나.” 최씨는 친구에게 말했다. 그가 남긴 전화 통화 녹음에는 주변에 사람들이 있어도 매일같이 30분에서 1시간 이상 혼난다는 하소연이 자주 등장한다. 실제로 회의 상황을 녹음한 것에는 상사가 면박을 주는 목소리도 담겼다.
최씨의 노트에는 “내일까지 생각해올 것”이라는 말도 적혔다. 최씨는 친구에게 “그만둘까. 생각을 정리해서 내일까지 얘기하래”라고 말했다. 최씨 유족들은 팀에서 퇴사를 종용했다고 여긴다.
최씨의 휴대전화와 노트북에는 공무원 생활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 시도한 여러 노력과 함께 두려움이 엿보인다. 공무원의 일상과 경험담을 담은 유튜브 영상 시청 기록이 남았다. 시보 신분인 자신이 잘릴 수도 있는지 걱정한 듯 관련 내용을 검색한 기록도 나온다.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1월27일 최씨는 ‘민폐 안 주고 자살하는 방법’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인격적으로 수치스럽다고 말하더라고요. 두 달밖에 안 됐는데 얼마나 잘할 수 있겠어요.” 친구 김씨가 말했다. “임용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눈빛이 완전 달라졌더라고요. 한번은 친구 여럿이 모였는데, 멍한 표정으로 본인 힘든 이야기를 혼잣말로 하더라고요. ‘사람이 이렇게 빨리 무너질 수 있구나’ 했어요. 그때 말렸어야 했는데….”
최씨의 마지막 한 달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됐다. 야근이 이어졌다.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공부해야 했다. 하루라도 혼나지 않는 날이 없었다. 출근하면 “그만두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인터넷에서 ‘일 못하면 면직’ 같은 말을 검색하며 불안해했다.
2월18일 무렵부터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구체적인 방법을 찾았다. 24일 토요일 불면증으로 수면제 처방을 받았다. 주말 수면제로 밀린 잠을 몰아 잔 듯하다. 26일 월요일에는 지각했다. ‘이대로 연락이 안 되면 무단결근입니다’라는 상사의 문자메시지가 왔다. 최씨는 그 주 내내 다시 자살법을 찾았다.
3월4일 이후 다시 출근하지 않았다.
“조금 일찍 됐다면 그만둘 수 있었을 텐데”
최씨가 숨진 채 발견된 뒤에는 여러 이야기가 돌았다. 그가 평소 우울증이 있었다거나 술을 마셨다는 식의 이야기였다. 친구들은 “우울증과 거리가 멀었고 평소 술을 마실 시간도 없었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다며 국민신문고에 진정했다. 괴산군 관계자는 “충북도에서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충북도 감사실 관계자는 “진정 내용에 대해 관련자 등을 조사 중”이라고 했다.
“만약에 좋은 상사와 좋은 직장 분위기에서 선배들이 열심히 가르쳐주고 했다면 충분히 잘했을 친구였어요.” 공무원이기도 한 친구 정씨가 말했다. 다른 친구 김씨도 아쉬워하며 이렇게 말했다.
“차라리 그만두지, 그런 선택을 해서 야속하죠. 공무원에 조금 일찍 합격했다면 그만둘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10년 만에 어렵게 됐는데 그만둘 수는 없고…. 압박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세 살 터울인 친형은 동생을 생각하며 울었다. “부모님도 잘 챙기고 조카들도 잘 돌봐주는 동생이었어요.” 서울에서 생활하던 형은 동생에게 고마워했다. “공무원 합격하고 첫 추석 때 형제들이나 부모님에게 용돈을 챙겨주더라고요. 임용되기도 전이었는데 그동안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알뜰하게 돈을 모아왔던 거예요. 앞으로의 미래를 계획하던 때였는데….” 형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전현진·강한들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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