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뻐해 주세요" 했는데…털 옷 입은 이중섭 마지막 편지[박현주 아트클럽]
'이중섭 덕후' 서울미술관 안병광 회장 최근 소장
타계한 부인 마사코 여사 집 정리 중 발견
2년 만에 대형 소장품 기획전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신사임당 이중섭 김환기 이우환 등 한국 미술사 총망라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아빠가 잠바를 입고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남덕군(야마모토 마사코)
야스카타군(태현)
야스나리군(태성)
기뻐해 주세요."
1954년 겨울 추운 날이었다. 제3회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 참석하기 위해 통영에서 올라온 친구들이 양피 점퍼를 선물로 가져왔다. 피난 시절 중 가장 행복했던 시기인 ‘통영 시절(1953년 11월 ~ 1954년 5월)’에 만난 '통영의 친구들'은 그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양피 점퍼를 입은 이중섭과 팔짱을 끼고 포즈를 취한 유강열(1920~1970)과 친구들은 빛바랜 사진으로 남아 영원한 우정을 자랑한다.
양피 점퍼를 받은 이중섭은 가족들에게도 뽐냈다. 마치 산타클로스처럼 털 달린 옷을 입은 모습을 그려 두 아들에 똑같이 그림 편지를 썼다. ‘아빠는 친구들이 준 양피 점퍼를 입고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며 일본에 있는 가족을 안심시키는 이중섭의 가장으로서의 애틋한 마음이 전해진다.
4명이 이어진 그림은 부질없는 희망이 됐다. 가족 상봉을 고대하던 이중섭은 끝내 가족을 만나지 못했다. 이 편지를 보내고 2년 후인 1956년 9월 영양실조와 간암으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향년 39세, 무연고자 시신으로 망우리 공원묘지에 묻혔다.
이중섭의 애틋하고 희망에 찼던 마지막 편지가 공개되어 또다시 가슴을 울리고 있다.
서울미술관이 2년 만에 선보인 기획전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전에 '이중섭 마지막 편지화' 3점이 국내 최초로 선보인다.
서울미술관을 설립한 유니온약품 안병광 회장은 "최근 1954년 첫째 아들 태현에게 쓴 이중섭의 편지화 3점을 소장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중섭은 아들에게 편지를 보낼 때, 같은 그림과 글을 담은 똑같은 편지를 두 개 제작하여 태현, 태성에게 각각 보내곤 했다. 두 아들을 공평하게 대하려는 아빠 이중섭의 자상한 배려심이 느껴진다.
편지화는 2022년 타계한 야마모토 마사코(한국 이름 이남덕) 여사의 집을 가족들이 정리하던 중 발견된 여러 통의 편지 중 하나다. 당시 발견된 편지는 대부분이 글로만 작성된 글과 편지였으며, 그 중 아들 태현과 태성에게 보낸 해당 삽화 편지가 함께 발견되었다.
서울미술관은 "이번 전시에서 소개하는 편지는 누상동 시절 이중섭의 마지막 편지로 추정된다"며 "봉투는 현재 유족이 소장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 전쟁으로 인해 가족과 헤어져야 했던 이중섭은 일본에 있는 가족을 그리워하며 생전 100여 통의 편지를 보냈다. 화가였던 이중섭은 글과 더불어 가족과의 추억이나 재회하고자 하는 열망을 그림으로 담은 편지를 전했고, 오늘날 이중섭의 편지들은 ‘편지화’라는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이중섭의 편지화는 그림을 담은 그림 편지와, 그림과 글을 함께 실은 삽화 편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 전시에서는 글 편지 1장과 삽화 편지 2장으로 구성된 3장의 편지화를 소개한다.
이중섭의 편지화는 볼수록 애틋하고 사랑스럽다.
두 팔을 벌려 아들을 안고 있는 마사코와 이중섭을 중심으로 가족이 원형 구도를 이루는 모습은 단란한 가족을 연상시키며, 네 가족이 하나가 되기를 바랐던 이중섭의 소망을 드러낸다.
편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소재는 ‘복숭아’로, 천도복숭아는 악한 기운을 막는 벽사의 힘을 지니고 있어 신선의 과일로 알려져 있고, 복숭아 나무가 무성한 곳은 ‘무릉도원’ 이라 칭하며 이상향을 뜻한다.
이중섭은 부처와 같은 자태를 취하고 있는 마사코와 탐스러운 복숭아 위에서 놀고 있는 아들들의 모습을 통해 천국에 있는 가족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외로웠던 이중섭의 삶에 늘 가족과 함께 하고 있음을 잊지 않게 해주었던 이중섭의 편지는 일본에 있는 가족들에게도 살아가는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내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는 어머니의 인품에 아버지도 경애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홀로 두 아들을 키우며 바쁘게 살아가면서도 평생을 사랑했던 아버지 이중섭의 조국인 한국을 잊지 않으려고 한국어를 배우시기도 했습니다.”
둘째 아들 야마모토 야스나리(태성)는 "2022년 8월13일, 100세까지 장수하고 떠나신 어머니와 한국 미술계 및 언론 관계자들의 인연이 생전 어머니의 삶에 큰 지지대가 되어줬다"며 그간의 감사의 마음을 한국에 전했다.
안병광 회장은 미술계에서 알아주는 '이중섭 덕후'다. 2010년 6월 서울옥션 117회 경매에서 35억6000만원에 낙찰된 '이중섭 '황소' 구매자로 알려지면서 국내 최고 미술컬렉터로 부상했다.
'이중섭 소 그림' 소장 배경 일화도 유명하다. 32년전 영업사원 시절, 비를 피하던 처마밑에서 운명처럼 '소'를 만나면서 '이중섭 마니아'가 됐다. 힘들었던 생활, 유리문 안으로 보이는 '황소' 그림은 위안과 희망으로 다가왔다. '언젠가 돈을 벌면 저 그림을 사야지' 그 소망은 이루어졌다. 2010년 35억6000만원 낙찰 최고가 기록을 안 회장이 쏘아 올렸고 2012년 서울미술관을 지어 이중섭 '황소'를 위대하게 모셨다. 하지만 미술관 운영은 적자가 계속 됐다. 빛이었던 '황소'를 내놓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다시 경매에 내놓은 '소'는 2018년 47억에 낙찰, 이중섭의 최고가를 경신했다. 극진 대접한 안 회장에게 8년 보상의 댓가로 12억 원을 안긴 작품이다.
안 회장은 서울미술관을 개관하면서 '이중섭은 죽었다', '이중섭은 살아있다', '중섭 르네상스'전을 잇따라 열며 국민화가 이중섭을 재조명했다.
“미술사적인 가치가 있고 교육적인 가치가 있는 작품만을 수집한다"는 안병광 회장의 컬렉팅 철학은 서울미술관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가 소장한 작품을 모두 내놓고 국민이 함께 미술품을 향유하는 전시 공간으로 운영한다. 교과서나 미술 도록 등 책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들을 원화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2년 만에 연 이번 대형 소장품 전시인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는 안 회장의 소장품을 잘 지키고 있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중섭 작품을 비롯해 신사임당부터 김환기 이우환 등 한국 미술사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명작이 총망라된 전시는 관람료 2만 원이 아깝지 않다는 분위기다.
이 전시와 함께 현대미술 단체전도 선보인다. '햇빛은 찬란'을 타이틀로 ‘빛’을 테마로 미디어, 설치, 조각, 회화 등을 전시한다. 권용래, 바이런 킴, 박근호(참새), 이상민, 이은선, 정정주, 루시 코즈 엥겔만(Lucy Cordes Engelman), 토시오 이에즈미(Toshio Iezumi)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 미술관은 깊이 있는 감상을 위해 매일 오후 2시 정규 도슨트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무료 오디오 가이드가 제공된다. 전시는 12월29일까지.
☞공감언론 뉴시스 hy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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