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와도, 적게 와도 문제…제주 관광 해법은 없을까['피크아웃' 제주]

2024. 6. 10.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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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기·관광지·특정 메뉴 집중 현상 심해
재방문율 높이려면 관광자원 다양화 필수
헬스케어타운 전경. 사진=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의 딜레마. 유럽 어느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화산에 의해 형성된 독특한 지형과 청정 해안이 조화를 이룬 천혜의 관광지 제주도가 안팎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내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선 일명 ‘비계 삼겹살’ 사건으로 촉발된 제주의 물가와 불친절 문제가 부상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격리가 본격적으로 풀리며 해외 관광지가 대체재로 떠오른 가운데 내국인들이 제주에 등을 돌릴 수 있는 악재가 등장한 셈이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낙인효과’로 인해 이 같은 흐름이 장기화하는 것이다.

도민들은 도민들 나름대로 고통을 겪어왔다. 매년 제주도 인구의 20배에 달하는 관광객이 몰려오면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고물가, 자연환경 훼손, 교통체증에 시달려왔다. 불편을 감수해도 제주도민 1인당 소득은 전국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관광객 지갑에서 흘러나온 돈의 ‘낙수효과’가 도민에게 닿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제주살이 열풍이 불기 시작한 10여 년 전에도 내외국인 사이에 같은 문제가 제기되고는 했다. 관광객들의 볼멘소리도 하루 이틀 나온 얘기가 아니다. 즉 바로잡을 기회가 많았다는 뜻이다.

결국 화살은 도정으로 향한다. 2006년 7월 특별자치도 출범과 함께 제주도는 이름 그대로 유례없는 행정상의 자치권을 부여받았다. 관광업계에서는 4년마다 치러지는 지방선거로 인해 도정의 일관성이 유지되기 어렵다는 한계는 존재하나 장기적 관점에서 도를 대표하는 큰 줄기의 관광전략이 부재하다는 점은 아쉽다는 얘기가 나온다. 


 하드웨어 위주 정책, 외형만 성장시켜


과거 대표 신혼여행지로 꼽히던 제주도는 1990년대 해외여행이 대중화하며 한 차례 위기를 겪었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일명 ‘웰빙’ 바람이 불고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영감을 얻은 트레일 코스 ‘올레길’이 인기를 끌며 내국인 관광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때마침 한류 바람이 불며 외국인 관광객도 증가했는데 2006년 제정된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제주특별법)’에 따라 외국인 방문객에 대한 무사증(법무부 장관이 고시하는 국가 제외) 정책이 시행되며 중국인 관광객이 급증했다.

2010년부터는 투자이민제도를 실시하면서 제주 부동산에 대한 해외자본 투자도 본격화했다. 이 과정에서 제주도는 관광산업의 외형적 성장에 박차를 가했다. 개발사업 인허가를 간소화하는 등 관광 인프라 구축에 힘썼다. 민관 차원의 호텔, 리조트 개발을 늘리는 한편 면세점을 유치하기도 했다. 급증하는 관광객을 수용하기 위한 숙박시설과 쇼핑시설을 늘리기 위해서였다.

최근 논란이 됐던 서귀포시 남원읍 소재 리조트 역시 2012년부터 중국계 기업 백통신원에 의해 개발이 추진돼 2025년 완공을 앞두고 있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의 대표사업인 신화역사공원과 헬스케어타운도 중국 자본을 유치하는 방식으로 추진됐다.

그 결과 외형적인 성장에는 성공했다. 관광객 수는 2013년 1000만 명을 돌파했고 그해 외국인 관광객 수도 220만 명을 기록했다. 제주연구원 집계에 따르면 관광 수입은 집계를 시작한 2015년 4조6910억원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인 2019년 7조3660억원까지 매년 증가했다.

그러나 인허가 간소화로 인한 난개발과 중국자본잠식 논란이 뒤따랐다. 2016년부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를 둘러싼 갈등으로 유커들의 발길이 끊기자 일부 개발부지는 공사가 중단된 채 폐허로 남았다. 국내 민간 부동산 개발자들도 우후죽순 분양형 호텔이나 타운하우스 등을 개발했다. 제주도는 2015년 ‘관광숙박시설 적정공급 종합대책’을 마련해 숙박시설 공급관리에 나섰지만 ‘개발 붐’은 여전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제주도는 다른 지역 대비 토지 용도변경과 건축 인허가가 수월한 지역으로 꼽힌다”며 “그러다 보니 사업자가 부도를 내면서 분양형 호텔 또는 건물 등이 경매에 많이 나오는 편이며 공기업이 일대 토지를 수용해 사업을 추진하다 환경단체, 주민들과의 소송전에서 패소해 공사가 중단된 채 방치된 곳도 있다”고 설명했다.


 관광지 ‘쏠림 현상’, 모두의 불편으로


관광객이 증가해도 제주도민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 또한 오랫동안 제기됐다. 관광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유커들이 중국자본이나 대기업이 운영하는 호텔, 리조트에 묵고 중국계 음식점에서 식사를 한 뒤 면세점에서 쇼핑만 하고 떠난다는 것이다.

제주도 내 면세점 수익은 코로나19 확산 전까지 연 1조원에 달했다. 그러나 낙수효과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외국인면세점에 관광진흥기금을 부과하는 등의 방안이 수년째 논의됐으나 실질적인 진전은 없는 상황이다. 제주관광진흥기금은 제주관광사업 추진에 활용되거나 도내 관광사업체가 매년 1000억원 규모 융자를 저리에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도민들의 수익 확대를 가져올 수 있다.

관광객들이 특정 관광지, 특정 먹거리에 몰리고 있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관광객이 증가하며 공항이나 일명 ‘신제주’라 불리는 제주 시내, 유명 관광지 인근에 교통체증이 심해지므로 관광객과 제주도민 모두 불편을 겪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치솟는 물가도 문제다. 한국은행 제주본부가 조사한 '5월 제주지역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달의 물가수준전망CSI는 전달보다 4포인트 오른 133으로 집계됐다. 이 지수는 작년 10월 143에서 올해 2월(125)까지 하락세를 이어가다 다시 오름세로 돌아서며 1년 후 물가가 지금보다 오를 것으로 보는 기류가 강해지고 있다. 

소비자심리지수 또한, '96.9'로 전달보다 1.3포인트 내려갔다. CCSI는 경제상황에 대한 소비자들의 심리를 종합적으로 나타내는 지표로, 기준값 100보다 작으면 장기평균(2003~2022년)치와 비교해 비관적이란 의미다. 제주지역 CCSI는 지난해 7월을 제외하면 2022년 7월(87.7)부터 22개월 동안 비관적 전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성수기에만 인파가 집중돼 항공료와 숙박비, 렌터카 요금 등이 고공행진하는 점도 문제다. 특히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관광지 주변 식음료점과 숙박시설 등이 내국인에게 ‘배짱 장사’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됐다. 최근 비계 삼겹살 논란이 현주소다. 

제주도의 행정 역시 문제를 키웠다. 2018년엔 교통체증을 이유로 ‘렌터카 총량제’를 실시하고 렌터카 감차에 들어가면서 렌터카 대여료가 급등했다. 최근엔 제주도가 관광객에게 입도세 개념의 ‘환경보전분담금’을 부과하겠다는 계획을 추진하면서 국민 여론은 더 악화했다. 결국 관광단체가 나서 반대하자 도에선 관련 논의를 유보했다.


 관광 다양화, 질적 성장 필요해

관광정책에 대한 지적도 제기된다. 제주 관광의 질적인 부분을 개선해야 한다는 논의는 지속됐지만 가시적인 성과나 방향성이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 관광객 수로 따지면 내국인 비중이 70%를 차지하지만 외국인 관광객 위주의 정책을 추진하는 것 역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제주도는 2016년 ‘제주관광 질적 성장 기본계획’을 마련해 발표했다. 해당 계획은 투어버스 도입 등 일부 성과는 있었지만 국가별 타깃 마케팅과 외국어 지원 등 외국인 관광객 대상 정책이 대다수였다. 제주도는 “교통·숙박·음식·쇼핑에 대한 관광객들의 불친절·서비스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부서 간 정보공유와 협업체계를 구축해 체계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몇 년 새 달라진 관광 트렌드에 발맞춰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2022년 제주연구원이 발간한 ‘데이터로 보는 제주관광 트렌드 분석 및 2023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유명 관광지 위주의 단체 여행에서 맛집, 카페 위주의 개별 여행으로 관광 트렌드가 변하고 있다. 최근 소매점이나 음식점에 대한 불만이 폭증하고 렌터카 수요가 늘게 된 원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관광상품을 다양화하면 개별 관광객의 동선이나 방문 시기를 분산하고 재방문율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그동안의 관광지 육성 정책이 사실상 실패했다는 점을 고려해 민간이 개발한 현장을 발굴하는 것이 더 실효성 있다는 평가다.

현지 관광업 관계자는 “요즘 제주도 관광객들은 커플이나 가족과 함께 와서 스냅 사진 찍는 것을 선호하는데 누구나 아는 유명한 곳보다는 개인이 자기 토지에 조성한 꽃밭이나 작은 농원, 숲 같은 곳이 포토 스폿으로 인기”라며 “제주도 자체에 풍광이 좋은 곳에 많으므로 발굴할 만한 관광지도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성수기에만 집중되는 수요로 인해 제주국제공항이 포화상태로 아슬아슬하게 운영이 되고 물가만 오르는데 제주도는 제2공항 조성이나 항공료, 물가 단속에는 손을 놓고 있었다”며 “제주도는 난개발만 심할 뿐 관광정책에 대한 도의 비전이나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번에 다시 논란이 터지자 제주도는 지난 5월 29일 ‘제주관광 대혁신’을 선포하고 내국인 여행객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대책을 세웠다. 도지사 직속 제주관광혁신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관광정보 제공, 관광객 불편사항 신고를 담당할 ‘제주관광서비스센터’를 설치한다는 것이 골자다. 제주관광협회는 6월부터 11월까지 숙박업과 음식점 등에 대한 가격 및 서비스 실태조사를 병행하고 단속 활동도 확대할 계획이다.

제주관광공사와 제주관광협회는 제주 여행객을 존중하고 공정 가격과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바탕으로 ‘제주와의 약속’ 릴레이 캠페인을 시작하기도 했다. 이전 참여자에게 지목된 참여자들은 본인이 실천할 수 있는 약속의 문구를 선택하거나 직접 작성한 뒤 서명하는 방식으로 동참할 수 있다.

제주관광공사 관계자는 “우선 올해에는 도민들의 캠페인 참여를 유도하고 관광 현장을 관리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며 “관광상품 개발 등 새로운 사업은 차차 진행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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