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주스·코코아값 급등… 세계경제 최대 복병 된 ‘기후플레이션’

김정훈 기자 2024. 6. 7.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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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고온에 물가 비상
오렌지주스

지난달 29일 인도 델리 문게쉬푸르 관측소 수은주가 섭씨 52.9도까지 치솟았다. 인도 기상청은 “센서 오류일 수 있다”고 했지만, 델리에 있는 다른 관측소도 나란히 50도를 육박하며 기록을 갈아치웠다. 평년보다 7~8도 높은 기온에 인도의 전력 사용량은 사상 최고치를 연일 갱신하고 있다. 베트남·태국·필리핀 등 동남아 전역이 체감 기온 50도에 육박하는 이른 더위로 몸살이다.

동남아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미국 국립환경정보센터(NCEI)에 따르면 지난 4월은 가장 더운 4월이었다. 지구 표면 온도가 20세기 평균(섭씨 13.7도)보다 1.32도 높았고, 지표면 기온으로만 보면 1.97도 더 뜨거웠다. ‘역사상 가장 더운 달[月]’ 기록은 11개월 연속 이어지고 있다. NCEI는 올해가 역사상 가장 더운 해가 될 확률이 61%에 달한다고 전망한다. 이러다 보니 세계 곳곳에서 말라 비틀어지는 작물들이 속출하며 가격이 몸살을 앓는다. 올해 세계 경제 가장 큰 위험 요인은 기후라는 말이 나온다. 이상 기후(climate)로 물가가 오르는 것(inflation)을 의미하는 ‘기후플레이션(climateflation)’도 비상이다.

그래픽=이진영

◇세계 곳곳 농작물 가격 몸살

오렌지주스 농축액 선물(先物) 가격은 지난달 말 파운드당 5달러에 육박하며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전 세계 오렌지주스의 70%를 브라질산으로 만드는데, 브라질이 최근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수입산 농축액 가격이 1년 전보다 70% 가까이 오르자, 엔화 가치 하락이 극심한 일본에서는 아예 오렌지 주스 생산을 포기하는 업체들이 나온다.

국제 코코아 가격은 지난 10년 동안 미터톤당 약 2500달러 선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국제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는 서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와 가나에 심각한 가뭄이 번져 상황이 달라졌다. 연말 4500달러까지 오르더니 투기 수요까지 유입되며 4월 중순에는 1만1000달러까지 갔다.

지중해 연안국의 가뭄 피해로 올리브 생산량도 확 줄었다. 비싸진 올리브유 절도가 급증하자 스페인 수퍼마켓 체인들이 주류나 와인병에만 사용하던 도난 방지 보안 태그를 올리브유에도 붙이기 시작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보도했다. 국제 커피 원두 가격은 베트남과 브라질의 가뭄과 냉해로 직격탄을 맞았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급등했다가 지난해 간신히 안정됐던 농산물 가격은 올 들어 다시 상승세다. 호주·러시아 등의 악천후로 밀 선물 가격은 10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옥수수 등 주요 8개 농산물 선물 가격으로 산출하는 블룸버그 농업지수는 상승세로 전환했다.

◇원자재와 물류비도 들썩

미 에너지청(EIA)은 “지난달 마지막 주 미국 뉴욕 도심과 보스턴 등 주요 지역의 기온이 평년보다 4~5도 높았다”며 “날씨가 따뜻해서 줄어드는 주거·상업용 난방 수요보다, 에어컨을 틀기 위한 냉방 수요가 더 빨리 급증하고 있다”고 밝혔다. 따뜻한 겨울에 주춤했던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지난 2월 가장 낮았던 때보다 70%가량 상승한 단위당 2.76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트레디션에너지의 개리 커닝험 연구원은 “냉방 수요 급증으로 현재 재고가 소진되면 미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단위당 4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에어컨 수요가 갈수록 폭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남아 폭염도 국제 전력 수요를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더위는 국제 물류비도 끌어올린다. 파나마 운하청은 이달부터 하루 통항량을 32척으로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평균 통항량인 36척에 못 미친다. 파나마 운하에 물을 공급하는 가툰 호수의 수위가 가뭄 여파로 낮아졌기 때문이다. 선박들이 병목 현상을 피하기 위해 파나마 운하를 우회하는 장거리 항로를 택하면서 물류 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최근 몇 년처럼 가뭄이 계속되면 라인강 수위가 낮아져 유럽 물류가 차질을 빚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지난 3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에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부추기는 지구온난화와 폭염’ 보고서가 실렸다. 독일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 연구팀이 121국에서 30년간 집계한 월별 소비자물가지수와 날씨 데이터 총 2만7000개를 분석했다. 연구팀은 폭염이 2035년까지 식량 물가를 연간 최대 3.2%포인트, 전체 물가를 연간 최대 1.2%포인트 밀어올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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