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영감과 섬광] 여름엔 부디 먼 곳으로 떠나라!

장석주 2024. 6. 5.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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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여름은 수국, 능소화, 장미꽃, 배롱나무꽃, 달리아, 꽃양귀비, 낮달맞이꽃, 땅비싸리, 우단동자꽃 같은 꽃들을 데리고 온다. 수국은 희고, 능소화와 배롱나무꽃은 붉다. 꽃들의 방향은 종일 데워진 공기 속에 녹아든다. 누군가 초여름 저녁 공기를 들이켜며 커다란 개를 끌고 지나간다. 자두가 익고 복숭아가 익을 때쯤 나는 배낭을 메고 여행을 떠날 거다. 여행을 떠날 때는 김화영 산문집 <여름의 묘약>이나 알베르 카뮈의 <결혼 여름>,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그늘에 대하여>를 챙겨 가서 호젓한 바닷가에서 읽는 호사를 누리고 싶다. 책을 읽는 건 습기와 열대야와 지루함을 극복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 독서가 여름의 행복한 몽상을 키우는 데 자그마한 보탬이 된다고 믿는 까닭이다.

 도파민 분비가 활발해지는 계절

언제부터 여름을 좋아한 건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여름에 도파민 분비가 활발해진다는 점이다.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부른다. 삶에의 의욕이 불타오른다. 대관령 살바토레의 아름다운 여름 정원이나 제주 협재의 앞바다를 떠올리면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을 보며 싱싱한 야채를 아삭아삭 씹는 바다거북의 기분이 된다. 여름 기분의 성분은 들뜸과 행복감인데, 거기에 특별한 이유는 없다. 나는 한겨울에 태어나 시린 추위에 대한 무의식적 불안을 겪었다. 그런 탓에 나는 겨울엔 계절성 우울에 시달리고, 비관론적 사색에 빠지고, 비활동성 기질을 갖고 성장한다.

여름이 오면 돌연 내 존재의 저 심연에 숨은 기쁨과 명랑이 살아난다. 해가 끓는 정오, 아, 여름! 이제 살았구나, 안도한다. 어려서는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가 일조량과 관련이 있다고만 여겼다. 정신분석을 공부하고 나의 내면과 무의식을 분석하며 침잠과 은둔에 이끌리고 여름에 이끌리는 취향의 불가피한 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화단에 봉숭아꽃 몇 송이가 피는 시골 학교 교사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밤에는 시를 쓰고, 아내는 기타를 치며 노래를 흥얼거리면 좋겠다는 몽상을 키우곤 했다. 검은 염소 여섯 마리를 키우고, 벼슬이 잘생긴 늠름한 수탉과 암탉 몇 마리도 방목하고, 밤엔 어린 딸에게 동화를 읽어주려고 했다. 그 꿈은 산산조각 나고, 나는 세상 밖으로 내쳐졌다. 분노와 적대감으로 좌충우돌하며 젊은 날들을 흘려보낸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영향으로 시와 철학과 음악을 좋아하고 한 줌의 기쁨과 위안을 구했지만 결국 나는 한심한 영혼이 되고 말았다.

여름 저녁을 정말 좋아한다. 그 시각엔 공연히 낙관적인 기분이 깃든다. 그리고 세계가 낯설어지는 이상한 찰나도 있다. 나는 생산하는 자들에게 기생하며, 고작 책 몇 권이나 읽고 시를 썼는데, 일하지 않고 빈둥거린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평생 덧없고 하염없는 짓을 하며 산 것을 깊이 후회한다.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봉제공장에서 바늘귀에 실을 꿰고 옷에 단추를 다는 일이라도 할 것이다. 그마저도 실직했다면 아침에 집 나서는 딸의 구두라도 정성껏 닦아 놓으리라. 여름 저녁 선술집들은 술꾼들로 붐빈다. 상점의 실내 조명이 켜지고 주택가 창문들도 호박색 불빛으로 채워진다.

 세계가 낯설어지는 이상한 찰나

여름 저녁, 나는 퇴근해서 돌아오는 너를 기다린다. 너를 기다리며 무료하게 보낸 시간들. 그건 스물을 갓 넘길 무렵의 일이다. 너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회색빛 박모 속에서 가로등 불이 꽃처럼 피어나고, 나는 어둠에 삼켜진 정류장 주변을 서성인다. 그 시절 나는 기다림이 기다림 속에서만 탕진되는 그 무엇임을 알았다. 기다림이 유예되면서 생기는 권태가 기다리는 주체를 삼킨다.

너는 언제나 늦게 도착한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사는 동안 사랑하고 이별하는 쓰라림을 몇 번이나 겪었다. 연인과 헤어진 뒤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각자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서 살아간다. 어느 저녁 저무는 거리의 모퉁이에서 창마다 불이 켜진 누군가의 집을 바라보며 날카로운 슬픔에 심장이 찔리기도 할 것이다. 나는 너를 사랑했던가, 혹은 너는 나를 사랑했던가.

누군가 라디오를 틀었는지, 바람결을 타고 달콤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살면서 듣게 될까 언젠가는/ 바람에 노래를/ 세월 가면 그때는 알게 될까/ 꽃이 지는 이유를/ 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 될/ 또 다른 사람들/ 스쳐 가는 인연과 그리움은/ 어느 곳으로 가는가”(조용필, ‘바람의 노래’).

바람의 노래에는 사는 동안 실패와 고뇌의 시간을 비켜 갈 수 없다는 전언이 들어 있다. 창업을 하고 사업이 흥한 뒤 다시 무너지는 실패를 겪었다. 식구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나는 나락에 떨어져 비통한 시간을 보냈다.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남긴 것은 인생에 대한 한 줌의 소회다. 나는 왜 꽃은 피었다가 지는가를, 딸은 왜 빨리 자라서 품을 떠나는가를, 누구나 살며 사랑하다가 저 우주 너머로 사라지는 존재인 것을 겨우 깨닫는다.

 여름 기분을 물들이는 색은 파랑

정오의 태양이 정수리를 태울 듯이 쏟아지고, 숲속의 매미 울음소리가 바위를 쪼갤 듯 울어댄다. 여름엔 부디 먼 곳으로 떠나라! 여름엔 낯선 장소, 낯선 시간 속에서 더 행복해지려고 애써야 한다. 여름이 우리에게 부과하는 단 하나의 의무는 행복이다. 나는 어디선가 행복 한 줌을 훔칠 테다. 여름의 기분을 물들이는 색은 파랑이다. 파랑은 바다의 푸름, 녹색으로 가득 찬 여름 숲에 내리는 비의 푸름이다. 리베카 솔닛은 <길 잃기 안내서>에서 그 푸름에 대해 이렇게 쓴다. “세상은 가장자리에서, 그리고 깊은 곳에서 푸르다. 이 푸름은 사라진 빛이다.”

넘치는 빛이 사라지고 그 자리엔 파랑의 여름만 남는다. 여름은 어디에나 여름이라서, 좋다! 평생 여름을 사랑한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여름에는 누구나 평등하게 행복해지는 게 옳다. 당신은 행복한가? 거리에서 사람을 붙잡고 묻고 싶다. 당신도 어디선가 잘 익은 복숭아를 먹고, 밤이면 푸른 바다의 꿈을 꾸며 잠들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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