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여왕'과 '선업튀'를 경험하고 나니 '졸업'이 지루하고 피곤하다
[엔터미디어=수사연구 박기자의 TV탐정] 한동안 낡은 장르로 취급받던 로맨틱 코미디가 다시 부활했다. 최근 종영한 tvN <눈물의 여왕>과 <선재 업고 튀어>는 로맨틱 코미디가 아직도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눈물의 여왕>과 <선재 업고 튀어>가 장르상 특별한 장치가 있는 건 아니다. <눈물의 여왕>은 신파극 주말극 분위기의 전개에 재벌가 홍해인(김지원)과 그녀의 상대적으로 평범한 남편 백현우(김수현)의 로맨스로 인기를 끌었다. <선재 업고 튀어>는 타임워프를 영리하게 차용한 면은 눈에 띠지만, 임솔(김혜윤)과 류선재(변우석) 사이를 오가는 설정과 대사들은 2000년대 초반 유행한 <그 놈은 멋있었다>류의 인터넷 소설에서 레퍼런스를 삼은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이처럼 익숙한 로맨스물이라 손쉽게 시청자의 사랑을 받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눈물의 여왕>과 <선재 업고 튀어>는 과거 <미녀와 야수>류의 로맨스와는 다른 새로운 방식의 여주와 남주의 관계성을 보여줬고, 이 부분이 시청자에게 어필한 부분이 크다.
과거 로맨스의 공식은 여주인공이 처음부터 사랑을 느끼는 식은 아니었다. 뜬금없이 낯선 대상이 나타나서 그녀 주위를 맴돈다. 그녀는 그 남자의 사랑의 대상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남자에 불안함을 느끼다가, 점점 그의 진심을 알고 그 남자와 가까워진다. 알고 보니 무서운 야수 같은 남자는 마법에 걸린 잘생긴 왕자였다.
이 공식은 SBS <파리의 연인>을 비롯해 수많은 로맨틱코미디에서 변주되어 왔다. 하지만 <눈물의 여왕>과 <선재 업고 튀어>는 다르다. 이 두 작품에서 홍해인과 임솔은 낯선 야수의 사랑의 대상이 되어, 그 남자에게 사랑을 느끼는 존재가 아니다. 두 여주인공은 처음부터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이 명확하다. 부부 사이에 권태기가 있긴 했으나, 홍해인에게 백현우란 처음부터 자신을 위한 순애보를 보여주는 편안한 남자였다. 류선재는 임솔을 인생의 어둠에서 구해주긴 했으나, 일단 태생 자체가 내추럴 본 아이돌 같은 우상 같은 존재다. 그렇기에 홍해인과 임솔은 두 명의 남주에게 긴장하거나, 겁먹을 필요가 없다. 두 사람에 백현우와 류선재는 편안히 기대거나 끊임없이 전력을 다해 사랑을 줄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당연히 백현우와 류선재 역시 나쁜 남자의 위험함이 없는 존재들이다. 물론 약간의 까칠함이 남아 있긴 하지만 그 정도야 매력 포인트로 보일 정도의 까칠함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시청자들은 여주인공과 함께 이 남주들을 무한히 사랑해도 무해할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처럼 두 드라마 모두 여주인공이 남자주인공을 사랑하는 감정을 비탕에 깔고 직진으로 시작한다. 그 점이 과거의 다른 로맨스물과 포인트가 다른 셈이다.
반면 방영 중인 tvN 드라마 <졸업>은 좀 다르다. <졸업>은 과거 대치동 학원가의 선생과 제자관계였던 서혜진(정려원)과 이준호(위하준)가 이번에는 선후배 학원강사로 만났다가 연인으로 발전하는 전개다. <졸업>은 어찌보면 로맨스보다 블랙코미디 성향이 강하다고 보이지만, 서혜진과 이호준의 관계는 전형적인 로맨스의 전개를 따라간다. 익숙했던 제자가 낯선 남자가 되어 그녀를 사랑의 대상으로 삼고, 가끔은 무례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점점 많은 시간을 보내며 일을 하다 보니 그녀 역시 과거 제자였던 이 남자에게 마음이 가는 전개다.
<졸업>의 전개가 이미 익숙하고 지루한 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게다가 서로의 감정을 알지 못해 오해와 걱정을 하는 전개 자체가 그렇게 달콤하지도 않다. 지금 이 사회에서는 어찌 보면 '밀당'이 달콤함이 아닌 일상의 스트레스로 느껴질 수도 있는 상황 아닌가? 설령 그것이 현실의 연애관계라 해도, 이제 시청자는 현실의 로맨스를 확장한 드라마보다 차라리 가상의 새로운 로맨스에 더 몰입하기 쉬운 것이다. 실제 일상에서도 알고 보면 '덕질'이 가장 손쉽게 빠지는 로맨스인 것처럼.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tvN]
Copyright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곽선영·이민기 매력적인 ‘크래시’, 잘 나가는 이유 있었네 - 엔터미디어
- “안 좋아할 방법이 없어” 정려원 고백, 알고보니 쌍방구원 ‘졸업’의 첫사랑 - 엔터미디어
- 뭐 이런 슈퍼히어로급 몰입감이...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에 빠져드는 이유 - 엔터미디어
- 김희선은 끝내 이 부서져 가는 가족을 지켜낼 수 있을까(‘우리, 집’) - 엔터미디어
- 주종혁의 환멸을 통해 드러난 방송가 연예 비즈니스의 민낯(‘비밀은 없어’) - 엔터미디어
- 이효리 이름값으로 경주여행을...‘이효리 사용 설명서’ 보유자들의 현명한 선택 - 엔터미디어
- 기자를 휘어잡을 만큼 달변가인 형사들도 카메라 앞에만 서면 왜? - 엔터미디어
- 5%대 시청률로 초대박 낸 ‘선업튀’, 과연 판타지 드라마가 대세인 걸까 - 엔터미디어
- 이효리가 껴안은 건 그녀의 엄마만이 아니었다(‘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 - 엔터미디어
- 당신은 강형욱과 피식대학의 사과를 어떤 잣대로 판단하십니까? - 엔터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