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이 게 맛을 알아? [더 나은 경제, SDGs]
대표적인 연기파 배우 신구(88)는 2002년 당시 햄버거 체인 롯데리아에서 선보인 크랩 버거의 론칭 광고에 출연했었다. 광고 콘셉트는 세계적 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작품 ‘노인과 바다’를 패러디한 것으로, 신구가 원작의 청새치 대신 대게를 잡은 뒤 힘겹게 귀항하는 모습을 담았다.
작은 쪽배에 기대 큰 대게를 담고 귀항하는 길에 더 큰 어선을 만나게 되고, 이 어선에 타고 있던 청장년층 어부들은 이 모습을 보고 환호한다. 그러자 지친 표정으로 배에 누워있던 신구는 이들을 향해 ‘니들이 게 맛을 알아?’라고 일갈하며 흐뭇한 표정을 짓고 사라진다.
지난 22일 국내 한 언론사 국제 콘퍼런스에 산나 마린 전 핀란드 총리가 연사로 나섰다. 마린 전 총리는 1985년생으로, 총리로 취임했던 2019년 당시 34세였다. 역대 세계 최연소 여성 국가수반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는 재임 중 사생활 노출과 관저 사교 파티 논란으로 여러 구설에 오르긴 했지만, 러시아의 안보 위협에 맞서 핀란드를 지난해 4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31번째 회원국으로 가입시키는 등 역사적인 업적을 남긴 정상으로 평가받는다. 마린 전 총리는 취임 때 당시 사울리 니니스퇴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았는데, 두 사람의 나이 차이가 무려 37세여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지난 4월에는 북대서양 강국 아일랜드의 총리로 37세의 사이먼 해리스 고등교육부 장관이 임명됐으며, 올해 초 프랑스에서는 35세의 가브리엘 아탈 총리가 사상 최연소로 취임하기도 했다. 앞서 2017년에는 당시 31세였던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국민당 대표가 총리로 취임하면서 선거로 뽑힌 역대 세계 최연소 국가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쿠르츠 전 총리는 앞서 외무 장관 재직 당시 27세였는데, 이 역시 세계 최연소 기록이었다.
한국에도 최근 이 같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주 개원한 제22대 국회에 젊은 정치인이 대거 입성했다. 연령별로 보면 40대 30명, 30대 14명이 각각 금배지를 달았다. 최연소는 경기 화성정에서 재선한 전용기(32)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 21대에 이어 다시 등극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에서도 지역구 최연소인 김용태(34, 경기 포천·가평) 의원이 당선됐다.
사회 곳곳에 젊음을 앞세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만큼 우리 경제와 산업계에도 활력과 변화가 뒤따라야 하겠다.
구성원의 나이에 대해 다소 보수적인 재계의 이사회에선 젊은이를 찾아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 기준 상위 500대 기업 중 353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사외이사의 평균 연령은 60.5세였다. 70대 9.2%, 60대 51.2%, 50대 33.2%, 40대가 6.0%였다. 이에 비해 30대는 0.5%에 그쳤다.
더불어 30대 그룹 295개 계열사 임원을 조사한 결과 여성의 비율이 고작 7%에 불과했다.
12월 결산기업의 주주총회 시즌이 끝난 지난 4월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을 보면 주요 대기업 이사회 일원으로 올해 사외이사에 선임된 최연소 인물은 41세로 카카오 이사회에 입성한 차경진 한양대 경영정보시스템전공 교수다. 역대 국내 대기업 최연소 사외이사 역시 카카오 이사회의 박새롬 성신여대 융합보안공학과 교수다. 2020년 선임 당시 국내 등기이사로는 가장 젊은 30세였다.
1963년 8월28일 미국 워싱턴의 링컨 기념관 광장에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구절로 시작돼 전 세계 큰 울림을 전한 연설은 위대한 비폭력 운동가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목사를 세계적 리더의 반열에 올렸다. 차별과 갈등을 종식시키려는 인류 역사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은 킹 목사의 당시 나이는 불과 34세였다. 이듬해 당시까지 역사상 최연소로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39세 불의의 총탄에 쓰러졌다.
최연소나 30대 혹은 40대 등 상대적으로 젊은 연령대를 무차별적으로 중시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연령마다 경험과 경륜, 깊이가 다른 만큼 무조건 젊은 나이로 바뀌어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핵심은 신구(新舊) 조화를 어떻게 이루어 낼 것인가이다. 우리 사회의 가장 보수적인 집단에서도 장년과 노년층뿐만 아니라 능력 있는 청년과 여성까지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도 여성에게 열려있고 동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그동안 저출생 대책에만 380조원의 예산을 쏟아붓고도 ‘인구절벽’이라며 사회 곳곳에서 위기감을 호소하고 있다. 그런데도 청년들이 견디고 헤쳐나가야 할 사회적 허들은 여전히 만만치 않다. 그들에게 평평한 운동장에서 능력을 펼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한, 결코 아이를 낳거나 결혼하는 일이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니들이 게 맛을 알아?’는 지쳤지만 큰 대게를 잡은 노장이 젊은층을 무시하려고 한 말이 아니다. 대게를 못 잡은 청년이 어른들에게 대항하는 의미로 써서는 더더욱 안 된다. 경륜, 노력과 젊음은 이 드넓은 바다 어디에서나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말이다. 대게라는 소중한 자원(資源)은 쉽게 잡기 어렵지만, 바다 어느 곳에서나 존재하고, 또 누구나 잡을 수 있고, 결국 모두 함께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 모임인 주요 7개국(G7) 중 영국의 리시 수낵 총리는 44세,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82세지만 영·미 관계는 역대 어느 때보다 좋다는 평이 나온다.
김정훈 UN SDGs 협회 대표 unsdgs@gmail.com
*김 대표는 한국거래소(KRX) 공익대표 사외이사, 유가증권(KOSPI) 시장위원회 위원, 유엔사회개발연구소(UNRISD) 선임협력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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