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길의 이슈잇슈] "우린 짝퉁 안 파는데"…中에 손님 뺏긴 동대문 상인들의 한숨

박상길 2024. 6. 3. 14:2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동대문 쇼핑몰 내 한 입점업체. 오후 2시가 넘은 시각에도 운영을 하지 않고 있다. 가게 내부에는 임대 문의 안내가 붙어 있었으며 SNS를 통해 문의하라고 적혀 있었다. 박상길 기자
서울 동대문에 위치한 한 대형쇼핑몰 입구. 에스컬레이터에 '출입통제' 안내문이 붙어 있는 채로 운행이 중단됐다.<박상길 기자>
동대문 쇼핑몰 내부 전경. 중년 여성들이 쇼핑을 하고 있다.<박상길 기자>

"우리는 가짜 안 팔아요. 진짜 원단을 가져다팔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파는 것보다는 좀 비싸요. 하지만 품질만큼은 자신 있어요."

지난 30일 오후 동대문 쇼핑몰에서 만난 한 상인은 과일 몇 개로 늦은 점심을 해결하며 이같이 말했다. 중국 플랫폼인 알테쉬(알리·테무·쉬인)의 초저가 경쟁의 여파는 생각보다 컸다. 텅텅 빈 동대문 쇼핑몰을 직접 와서 눈으로 확인해 보니 '패션 성지'의 몰락이 피부로 확 와닿았다.

이날 방문한 동대문 쇼핑몰 일대는 목요일 오후라는 것을 감안해도 한적하다 못해 적막한 느낌까지 들었다. 동대문역사공원 14번 출구 지하철역에 좋은 물건을 싸게 판다는 안내 문구가 걸린 의류 상가를 지나가던 지하철 이용객이 구경하고 있었지만 상점 주인으로 추정되는 두 어르신은 "어세오세요"라거나 "구경해보시고 말씀해 주세요"라는 의례적인 인사치레도 하지 않았고 서로의 대화에만 집중했다.

1만5000∼1만9000원 대의 가격들로 비교적 저렴한 수준의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손님들은 드문드문 와서 옷이나 신발 등을 쳐다보거나 만져보기만 할 뿐 이내 발걸음을 재촉하며 지나쳐갔다.

지하철역을 빠져나와 바로 앞에 위치한 쇼핑몰 입구에 들어가자, 에스컬레이터에 붙은 '출입통제' 안내문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코로나로 인한 영업침체 때문에 일시휴업하는 관계로 도난 등이 안정상 문제가 발생해 폐문 조치한다"는 내용이었다. 코로나가 사실상 종료됐지만 여전히 출입통제는 풀리지 않았다.

쇼핑몰 내부에 입점한 대부분의 패션 업체에는 초특가, 원가처분, 빅 세일 등의 안내문구가 적혀 있었지만 찾는 손님이 적어 큰 의미는 없어 보였다. 건물내 업체들은 점심시간이 지났음에도 손님이 없는 곳들이 많았다. 손님이 없는 가게를 지키는 게 무료했는지 삼삼오오 모여 대화하며 시간을 때우는 상인들의 모습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최근 알테쉬의 초저가 경쟁의 여파인지 쇼핑몰에서는 젊은 여성을 보기 어려웠다. 대부분의 손님이 중년 여성이었다. 젊은 외국인 여성들도 간혹 보였고 쇼핑몰을 둘러보긴 했으나 이들 중에서도 정작 제품을 구매하는 사람은 없었다.

쇼핑을 마치고 나오는 외국인들의 손도 가벼웠다. 외국인들도 따져볼 건 다 따져보는 '똑똑한 쇼핑'을 하고 있었다. 피카츄 인형을 든 한 외국인 여성은 상인에게 가격을 물었고, 3만원이라고 하자 바로 인터넷을 켜며 가격을 따져보다 같이 온 일행과 자리를 떠났다.

바로 옆에 있는 다른 쇼핑몰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 쇼핑몰은 1층에 사람이 많아 상황이 다른가 2층으로 올라가 봤더니 손님들이 몰리는 에스컬레이터 바로 옆자리조차 손님이 없었다. 군데군데 임대 문의가 붙어 있는 공실에는 "적재된 물건을 자진 수거하지 않으면 폐기처분하고 관리비를 부과하겠다"는 안내문까지 붙어 있었다. 평일 손님이 없는 상황에 익숙해진 것인지 일부 업체 중에서는 아예 저녁에만 가게를 열거나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판매나 문의를 대신하는 곳들도 있었다.

동대문 쇼핑몰의 침체는 정부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동대문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코로나 엔데믹을 선언한 작년 2분기부터 3분기 연속 하락세를 유지했다가 올 들어 1분기 13.6%를 기록하며 전분기 대비 1.5% 포인트(p) 상승했으며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작년 4분기 7.8%에서 1분기 만에 12%로 4.2%p 껑충 뛰었다. 동대문 쇼핑몰 일대는 최근 명동 등 관광지에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나는 추세임에도 이곳을 찾는 관광객 자체가 줄어드는 것으로 전해진다.

상인들은 매출이 과거 동대문 패션타운 전성기 때와 비교하면 적게는 3분의 1, 많게는 10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동대문 패션타운 몰락은 소매상 얘기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도매상들도 중국 패션산업의 맹렬한 추격에 긴장하고 있다.

동대문패션타운관광특구협의회 측은 동대문 쇼핑몰 침체와 관련해 "중국 의류와 잡화가 무서운 속도로 우리나라를 추격하고 있어 큰 차이가 없는 상황"이라며 "상인들의 품질 개선 노력과 별개로 정부에서 개혁적인 수준의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박상길기자 sweatsk@dt.co.kr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