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화가들…올 들어 잇단 에세이·작품집 출간

송경은 기자(kyungeun@mk.co.kr) 2024. 6. 3.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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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종 화백 ‘시화기행’ 완간
화가 시선으로 기록한 여행기
김재신·김선우 작가 첫 에세이
그림 너머 생각들 글로 풀어내
식물세밀화가 연구노트도 눈길
작품 이해 돕고 작가 친밀감 쑥
‘도도새 화가’로 불리는 김선우 작가가 작업실에서 집필을 하고 있다. 김 작가는 올해 1월 그의 작품 세계와 사유를 담은 첫 에세이 ‘랑데부’를 출간했다. 흐름출판
“읽는 이들이 내 시와 그림의 창을 통해 떠나지 못한, 혹은 떠나왔던 여행의 상념을 어루만졌으면 싶다. 나는 화가다. 그리고 시인이다.” (김병종 ‘시화기행’)

“내가 예술을 통해 우리들의 삶과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데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며, 그러한 사랑을 지속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왔다고 고백하고 싶었다.” (김선우 ‘랑데부’)

화가들의 제1 언어는 그림이다. 말로는 다 형언할 수 없는 감정과 생각을 한 폭의 장면으로 보여 준다. 그것을 느끼는 것은 온전히 보는 이의 몫이다. 하지만 때때로 관람객은 화가가 어떤 의도로 그림을 그렸을지 궁금해 한다. 그런 화가들이 직접 자기 생각을 글로 풀어 쓴 책들이 최근 잇달아 출간됐다. 그림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이 아니더라도 화가의 글은 그들의 사유하는 힘과 일평생 구축해온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도록 해준다. 이처럼 ‘글 쓰는 화가’들은 글과 그림이라는 두 가지 언어로 소통의 접점을 넓혀가고 있다.

김병종 화백의 그림과 글이 실린 이탈리아 여행기 ‘시화기행 4’. 문학동네
국내 대표적인 문인 화가인 김병종 화백은 지난 3일 시와 그림, 에세이를 함께 담은 릴레이 여행기 ‘시화기행’의 3·4편을 내면서 시리즈를 완간했다. 2021년 프랑스 파리에서의 이야기인 ‘시화기행 1’을 시작으로 미국 뉴욕(시화기행 2), 아일랜드 더블린(시화기행 3), 이탈리아(시화기행 4)까지 세계 곳곳을 거닐면서 그린 그림과 글을 책으로 펴냈다. 지난 2019년 9월부터 신문에 기고했던 연재물을 엮은 것으로, ‘시화기행’은 말 그대로 ‘시(詩)’와 ‘화(畵·그림)’가 있는 기행문이란 의미다. 김 화백은 “낮 동안 눈으로 손으로 쓰다듬었다가 홀로 기록하는 밤 시간은 고요한 황홀”이라고 밝혔다.

화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도시의 모습은 새롭다. 도시에 깃든 역사와 현지 미술 작품에 대해 깊이 있게 알 수 있는 것은 물론, 있는 그대로를 찍은 사진이 아닌 작가의 해석이 들어간 그림으로 표현된 장면들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일상적인 요소들까지 멈춰서 생각해보게 한다. “로마를 걷는 것은 그냥 땅 위를 걷는 것이 아니다. 역사의 숨결 위를 걷는 일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고작으로 꼽히는 ‘최후의 만찬’이 다빈치의 작품 중 가장 많이 손상된 작품이라는 것과 리하르트 바그너가 ‘파르지팔’을 완성했다는 이탈리아 남부의 절벽마을 라벨로에 얽힌 예술, 김 화백조차도 작업실에 들어가 처음 화면 앞에 서면 ‘백(白)의 공포’가 밀려와 그때마다 두 미켈란젤로(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와 미켈란젤로 메리시)를 떠올린다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MZ세대 인기 작가인 ‘도도새 화가’ 김선우 작가는 앞서 지난 2월 첫 에세이 ‘랑데부’를 출간했다. 멸종된 도도새를 2015년부터 지난 10여 년 간 캔버스 위에 소환해온 작가가 세상과 작업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풀었다. 김 작가는 “스스로 날기를 포기해 멸종한 도도새 이야기를 우연히 접하고 도도새의 비극적인 얘기가 현대인들한테 어떤 메시지가 되지 않을까, 우리도 현실에 안주해서 자기만의 특별한 무언가를 고민하지 않는다면 도도새처럼 자신의 본질적인 무언가를 잃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내 그림은 우리 현대인들의 자유와 꿈에 대한 이야기”라고 밝혔다.

책에는 ‘The Finders’(2023), ‘Heart of Icarus’(2023) 등 최신 작품도 함께 실렸다. 주로 도도새가 꿈을 꾸며 별을 바라보거나 소원을 비는 장면들이다. 미술대학 졸업자의 99%가 취직을 선택하고 단 1%만이 작가의 길을 걷는 현실 속에서 최근에야 비로소 전업 작가가 됐다는 그의 고백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작가들의 고민을 떠올리게 한다. 화가의 작가노트와 작업실 등 작품 뒤에 가려진 이야기들도 눈길을 끈다. 이처럼 그림 너머의 생각들을 직접 풀어낸 화가의 글은 작품의 이해를 돕고, 나아가 활자를 통한 대화로 작가와 친밀감을 쌓게 해 팬심을 자극하는 효과가 있다.

앞서 김재신 화백도 지난해 12월 그의 30년 작품 인생을 담은 첫 에세이 ‘바다를 읽어 주는 화가 김재신’을 출간했다. 물감을 수십 층 쌓아 올리는 조탁 기법으로 바다의 물결과 윤슬을 표현하는 김 화백은 ‘파도’ 연작 등 특유의 바다 그림으로 주목받아 왔다. “그림을 파기하기도 하고, 색을 덮고 다시 덮기를 몇 번째. 어느 날 여러 색으로 덮인 그림을 보다 학생들이 쓰던 조각칼로 선을 하나 그어 보았다. 조각칼에 드러난 여러 색의 층을 본 순간. 그것은 자개였다. 어릴 때 늘 보아 오던 자개의 다채로운 빛이 그 한 줄에서 엿보였다. 겹겹의 색깔은 어린 날의 어떤 날, 가족, 반짝거리던 자개, 다양한 기억을 한꺼번에 소환했다.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식물세밀화가 송은영 작가의 식물 연구노트를 엮어 지난 4월 출간된 ‘식물이라는 세계’도 눈길을 끈다. 송 작가는 세계적으로 가장 오래된 전통을 자랑하는 영국 보태니컬아티스트협회(SBA)의 한국인 최초 정회원인 SBA 펠로우로, 한국과 영국을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책에는 그동안 작가가 직접 관찰하고 연구하며 그려온 주요 식물의 학명과 서식지, 개화 시기, 꽃말은 물론 식물세밀화가이기에 알 수 있는 디테일한 각 식물의 생물학적 특성과 생애에 관한 깊이 있는 이야기가 담겼다. 화가의 책이지만 교양과학 서적으로 분류됐을 정도다. 식물에게서 삶의 지혜를 얻는다는 송 작가는 “내 그림의 테마는 늘 생애다. 식물의 생애를 관찰하다 보면 긴 시간을 거치는 인간의 생애를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압축해 보는 듯하다”고 밝혔다.

한편 전통 채색화가인 김은희 작가는 올해 2월 우리나라 전통 색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쓴 작품집 ‘색(色)·우리색’을 출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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