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당뇨, 난청 형제…“아빠, 우리 남기고 떠나지 마”

고나린 기자 2024. 6. 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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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나눔꽃 캠페인
지난달 27일 오후 엄마의 영정사진이 있는 안방에서 아빠와 아이들이 대화하고 있다.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온천역에서 굽이굽이 이어진 비포장도로를 10㎞가량 달리다 보면 계곡과 밭 사이에 자리 잡은 검은 지붕 집이 보인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20만원, 지은 지 70년 정도 됐다. 장마철엔 비가 새기도 하고, 벽지와 장판은 곳곳이 울었거나 색이 변했다. 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기름보일러를 쓰는데, 한겨울엔 거실 하나 방 두 개인 집 난방비가 100만원까지 나올 때도 있다.

이 집에 아빠 박아무개(52)씨와 삼형제가 산다. 문밖에서 축구공을 통통 튀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축구를 사랑하는 첫째 민성이(가명·17)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잔소리쟁이 준형이(가명·15)가 둘째, 왈가닥 해준이(가명·9)가 막내다. 이 집에서 아이들은 나고 자랐다.

첫째와 막내는 장애가 있다. 고등학생인 민성이는 또래보다 성장이 더뎌 초등학교 때부터 특수학급에서 공부했고, 지난해 1월 지적장애 3급 진단을 받았다. 현재 초등학교 5학년 수준의 사고가 가능하다. 중학교 1학년 때는 혈당이 700까지 올라 학교에서 쓰러진 일도 있다. 소아 당뇨 2형 진단을 받은 민성이는 매일 아침 스스로 인슐린 주사를 놓는다.

막내 해준이는 태어나자마자 받은 청력검사에서 이상을 보였다. 뱃속에서 점점 자라야 하는 소리 세포가 성장을 멈춰 ‘감각신경성 난청’ 진단을 받았다. 1살 때 인공와우 이식 수술을 받았다. 해준이도 또래보다 70%가량 성장이 더뎌 일주일에 3시간씩 언어 치료를 받는다. 여름엔 더 덥고 겨울엔 더 추운 집을 떠날 수 없는 이유도 민성이와 해준이의 학교 때문이다. 이 집을 떠나면 특수학급이 있는 학교를 다시 찾아야 하는데, 새로운 곳에 적응하지 못할까 아빠는 걱정이 많다.

둘째는 꼼꼼하고 살뜰한 ‘잔소리쟁이’다. 양배추, 토마토, 당근 같은 채소와 닭가슴살, 잡곡밥 위주의 식사만 할 수 있는 민성이가 밥투정을 부리면 준형이의 잔소리가 시작된다. 아빠는 투닥이는 형제를 보며 “(준형이는) 나보다 더 독한 놈”이라며 웃는데, 형과 동생을 챙기며 일찍 철들어버려서다.

‘축구공, 메달, 트로피’. 민성이가 사랑하는 물건이 빼곡한 방 안에 아빠와 세 형제가 모여 앉았다. 민성이는 지난해 충남 장애인 체육대회에서 아산 대표 선수로 준우승을 했다. 일주일에 2번씩 수영 연습을 하고 수영이 끝나면 또 축구를 하러 나갈 만큼 운동을 좋아한다. 민성이의 성격엔 세심한 면도 있다. 커피 만들기와 제과제빵을 좋아해 바리스타를 꿈꾼다. 당뇨 때문에 직접 만든 걸 먹어볼 수는 없다. 발랄한 막내 해준이가 형들 틈에서 “꺄아아아아아” 해맑게 웃었다. 아직 간단한 단어 정도만 말할 수 있는 해준이는 혼자만의 세상에 푹 빠져 노는 걸 좋아한다.

암으로 세상 떠난 엄마…아빠 신경은 온통 삼형제에게

아빠 엄마와 세 형제가 오밀조밀 살아가던 집에 파란이 인 건 지난해 6월이었다. 엄마가 혈액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빠의 시선과 신경은 이후 온통 아이들을 향했다. “아빠가 없으면 불안하대요. 자기들만 남겨두고 떠날까 봐.” 박씨가 말했다.

엄마의 빈자리가 생긴 뒤 첫째 민성이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하던 폭식 행동을 보였다. 아빠가 조금이라도 늦게 들어오면 “불안하다”고 전화를 걸었다.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직접 마주했던 막내 해준이는 3일 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고 잠만 잤다. 둘째 준형이는 상심에 빠진 아빠 대신 형과 동생을 챙겼다.

박씨는 “생업에 종사하면서 홀로 아내 병간호를 하다 보니 시간이 없어 민성이의 지적장애 검사도 지난해에야 받으러 갔다. 아이들에게 소홀했던 게 마음의 짐으로 남아 최대한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민성이네 가족은 주말에 더 바쁘다. 토요일 아침에는 해준이의 언어치료 센터에 갔다가 오후에는 엄마에게 읽어줄 편지를 들고 봉안당에 간다. 저녁엔 함께 운동을 하거나 영화를 보고, 일요일엔 등산을 간다. 아빠는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다. 박씨는 “시내에서 엄마 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막내를 보면 마음이 쓰인다”고 했다.

청각장애가 있는 막내 해준이가 착용하고 있는 인공와우 기기의 배터리. 습기에 약해 1년에 한번씩 100만원이 넘는 배터리를 새로 갈아 끼워야 한다.

한 달 180만원, 삼형제 키우기엔 빠듯한 살림

아빠와 세 형제가 놓인 현실은 엄혹하다. 지게차 운전을 하던 아빠는 지난 1월 회사가 이전하며 일자리를 잃었다. 틈날 때마다 면접을 보러 다닌다. 현재 한달 수입은 한부모 가정·장애아동 수당 등 90만원과 국민취업지원제도 수당 90만원 등 총 180만원이다. 이 돈으로 아내의 항암치료와 장례를 치르며 생긴 빚 1500만원에 대한 대출 이자와 냉난방비, 생활비 등을 감당한다.

아이들에 드는 돈도 만만찮다. 당뇨가 있는 민성이는 식단 관리가 중요해 일주일 식비만 10만원이 든다. 주기적으로 병원 진료를 받고 인슐린 처방을 받아야 한다. 막내 해준이의 언어치료는 여러 단체들 지원을 받지만 1년에 약 500만원은 아빠가 부담한다. 치료를 받고 나서 해준이는 ‘안녕하세요’를 또박또박 말할 수 있게 됐고, ‘축구하러 가자’처럼, 간단하게나마 하고 싶은 말을 꺼낼 수 있게 됐다. 포기할 수 없는 비용이다. 해준이 귀에 착용하고 있는 인공와우는 습기에 민감해 여름에 땀을 흘리거나 비를 맞으면 종종 부식된다. 소리가 끊겨 들리는 현상이 생기면 두통까지 이어져 1년에 한번씩 100만원 넘는 배터리를 새로 갈아 끼워야 한다.

둘째 준형이는 요즘 공부에 관심이 많아졌다. “수학 점수는 올랐는데 영어가 떨어져서 영어를 더 많이 공부해야 할 것 같다”고 아빠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기특했다. 다만 국·영·수 학원에 다니기 시작하며 한달 학원비 25만원이 들게 됐다.

지난달 27일 오후 충청남도 아산시에 있는 집 앞에서 아빠와 아이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근처에 사는 할머니가 세 형제 양육을 돕지만 3년 전 대장암 수술을 받은 이후 건강이 크게 안 좋아졌다. 할머니는 “애기들 맛있는 거라도 사주려면 뭔들 못 하겠나”라는 생각으로 하루 3시간씩 우체국에서 청소 일을 하고 버는 68만원을 살림에 보탠다. 일이 끝난 뒤에는 매일 민성이네 집을 찾아 빨래를 하고 끼니를 차린다. 할머니는 “내가 힘들까 봐 첫째는 분리수거를, 둘째는 음식 차리는 걸 나서서 도와준다. 얼마나 착하고 예쁜 애들인지 모르겠다”고 입이 마르도록 아이들을 칭찬했다. “죽을 때까지 아들과 손자들을 챙기고 싶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숨 막히는 현실 틈새, 계곡과 밭 사이 자리한 검은 지붕 삼형제네 집 안으로 뉘엿한 햇살이 들이쳤다. 박씨는 “내가 좀 더 힘을 내서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다. 지금처럼 잘 웃고, 어른들 공경 잘하고, 착하게 커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잘 키워보고 싶다’는 아빠 마음이 간절했다.

세 형제가 방을 나섰다. 민성이는 해준이를 번쩍 안아 들었고 준형이는 축구공을 챙겼다. 산책에 나서기로 했다. ‘꺄르르’ 해준의 웃음소리가 아빠와 형제들을 재촉했다.

글 고나린 기자 me@hani.co.kr 사진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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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이후

한겨레와 초록우산이 함께한 ‘2024 나눔꽃 캠페인’을 통해 ‘희미한 한쪽 귀로 사는 10살…엄마 아빠 잃고 세상도 멈췄다’(한겨레 5월1일치 14면) 기사에서 시현이의 사연을 전해드렸습니다. 시현이의 사연이 소개된 뒤 258분께서 “시현아 응원할게!”, “시현아 힘내자”, “시현아 건강하게 자라요”라는 따뜻한 응원 메시지와 함께 1806만6300원(5월30일 기준)의 정성을 모아 재단에 전해주셨습니다. 초록우산은 “소중한 후원금은 시현이의 수술비 및 언어, 운동, 작업, 연하, 감각통합치료 등 재활치료비와 치료부대경비로 활용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전해왔습니다. 시현이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귀중한 나눔을 결심하고 실천해주신 모든 후원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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