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폭우·태풍 ‘3재’가 닥치는, 무서운 여름이 온다

이오성 기자 2024. 6. 3.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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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에 폭염·폭우·태풍이라는 삼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서울의 폭염일수가 1년에 100일이 넘을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발표됐다.
2016년 8월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서울 시내의 풍경. 엘니뇨 영향으로 올해 날씨가 2016년과 흡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시사IN 포토

언젠가부터 여름은 무서운 계절이 되었다. 견딜 수 없는 폭염과 열대야, 그리고 그에 따른 온열질환자 폭증뿐만이 아니다. 길어진 장마와 예측하기 어려운 폭우로 전에 없던 심각한 자연 재난이 잇따르는 계절이 되어가고 있다.

2020년 여름에는 폭우로 전남 구례군을 비롯해 17개 지자체에 물이 범람해 이재민 8000가구가 발생했다. 2022년 8월에는 서울에 관측 사상 최대 일일 강수가 쏟아졌다. 이 비로 강남역 일대가 물바다로 변하면서 수도권을 충격에 빠뜨렸다. 지난해 장마철 강수량은 역대 3위를 기록하며 전국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최근 3~4년 사이 우리 기억에 뚜렷한 여름철 홍수 피해의 기억들이다.

올해 여름은 어떨까. 5월23일 기상청은 6~8월에 대한 3개월 날씨 전망을 발표했다. 전망은 %로 나타난다. 올해 6월과 8월의 기온이 평년보다 높을 확률이 50%, 7월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높을 확률이 각각 40%다. 강수량의 경우 7월과 8월에 평년과 비슷하거나 많을 확률이 각각 40%, 6월은 평년과 비슷할 확률이 50%다.

평년보다 기온이 높거나 강수량이 많을 확률이 40~50%라고 하면 ‘별거 아니네?’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상청의 날씨 전망은 확률이 ‘33.3%’ 이상일 경우 발생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걸 의미한다. 임교순 기상청 기후예측과 사무관은 “50%는 확률적으로 높은 수치라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올여름 폭염이 닥치고 큰비가 쏟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서울이 39.6℃(관측 사상 서울 최고기온), 홍천이 41.0℃(관측 사상 전국 최고기온)를 기록하는 등 역대 최악의 여름철 폭염이 기승을 부린 2018년에도 기상청은 비슷한 수치를 발표했다. 2018년 5월 기상청이 내놓은 3개월 날씨 전망에서 6월과 8월 기온이 평년보다 높을 확률 역시 40%였는데, 결과적으로 모든 폭염 기록을 갈아치웠다(그해 7월의 경우 기온이 높을 확률이 30%라고 전망했지만, 이는 틀린 전망이었다. 7월에도 평년을 훨씬 웃도는 더위가 덮쳤다).

수치 자체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40~50%라는 수치는 올여름 얼마나 무서운 폭염과 강우가 나타날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못한다. 같은 40%여도 어느 해에는 평년과 비슷한 날씨가 나타나고, 어느 해에는 극단적 날씨가 나타나기도 한다. 다만 평년 수준을 뛰어넘는 ‘폭염과 많은 비’에 대한 준비가 필요함을 뜻한다.

김해동 계명대학교 교수(환경공학)는 기상학자다. 기상청 연구관을 거쳐 학계에 몸담은 그는 도시 열섬 등 여름철 폭염 문제에 관해서도 많은 연구를 해왔다. 그는 올해 날씨를 전망하려면 2016년 날씨를 참고하라고 조언했다. 공통점은 엘니뇨다. 엘니뇨가 강해졌다가 약해지는 해라는 점이다.

먼저 엘니뇨가 무엇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엘니뇨는 주기적으로 동태평양 적도 지역의 해수 온도가 올라가는 현상이다. 몇 개월 또는 몇 년에 걸쳐 엘니뇨가 발생하면 뜨거워진 해수가 전 세계로 번지면서 곳곳에 고온다습한 기후가 조성된다. 폭염과 폭우가 빈번해지는 것이다. 엘니뇨 자체는 자연현상이지만, 기후변화로 해수 온도가 오르는 ‘상승작용’이 더해진 결과 위력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2023년은 매우 강력한 엘니뇨가 발생한 해였다. 올해 초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해가 지구 관측 사상 가장 더운 해였다고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엘니뇨 영향이 컸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2023년 전국 평균기온은 13.7℃로 1973년 이후 가장 높았다. 종전 최고였던 2016년(13.4℃)보다 0.3℃나 높았다.

타이·필리핀 등 체감온도 50℃

올해 3월 세계기상기구는 지난해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군 엘니뇨 현상이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엘니뇨가 약해지면 올해 폭염과 폭우도 함께 약해지지 않을까.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 오히려 엘니뇨가 발생한 이듬해에 더 심각한 폭염과 폭우가 올 수도 있다. 바닷물이 여전히 뜨겁기 때문이다.

4월29일 체감온도가 50℃까지 치솟으면서 필리핀 전역에 폭염 경고가 내려졌다.ⓒEPA

특히 한반도가 속한 동아시아의 경우 인도양 해수 온도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인도양 해수 온도는 엘니뇨가 약화될 무렵 오히려 더 오르곤 했다. 올봄 뜨거워진 인도양의 영향으로 타이·필리핀·베트남 등 동남아에는 체감온도가 50℃ 안팎까지 오르는 최악의 극한 더위가 닥쳐 사망자가 속출하고 휴교령이 내려졌다.

동남아의 폭염은 동아시아에 폭우를 몰고 올 가능성이 높다. 뜨거운 인도양에서 많은 비구름이 발생하고, 비구름이 편서풍을 타고 동아시아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이런 아열대 수증기 통로를 ‘대기의 강’이라고 부른다. 지난 4월부터 중국 남부 광둥성, 광시성 등에 내리고 있는 기록적인 폭우가 대기의 강을 타고 발생했다. 이 비구름이 한반도에 드리우면 이번 여름 심각한 폭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김해동 교수는 올여름 눈여겨볼 자연현상으로 한 가지를 더 지목했다. 태풍이다. 엘니뇨가 약화한 2016년에 태풍이 26개 발생했는데, 이는 평년(25.1개)보다 조금 많은 수준이다. 이 해의 특이점은 태풍이 여름철 이후에 집중 발생했다는 점이다. 통상 태풍은 5월께에 시작해 늦가을까지 많이 발생하는데, 2016년에는 7~10월에 22개가 발생했다. 남부지방에 수천억 원대 재산 피해를 낳고 10명이 사망 또는 실종된 태풍 차바도 그중 하나였다. 이처럼 여름철에 태풍이 몰리는 경향 또한 엘니뇨가 약해진 해에 나타난 현상이라는 것이 김해동 교수의 설명이다. 그러니까 올해 여름은 뜨거운 바다로 인해 폭염·폭우·태풍이라는 삼재(三災)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5월20일 이런 전망을 뒷받침할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부경대 연구팀이 KBS 의뢰를 받아 지난 30년간 구로시오 해류를 분석해보니, 중심축이 매년 평균 6㎞씩 1.7도나 북상했다는 내용이다. 따뜻한 구로시오 해류는 한반도 바다가 뜨거워지는 원인이다. 한반도 인근의 고수온 현상은 태풍의 세력을 강화하거나 폭우를 몰고 오는 등 기상이변을 부를 수 있다. 앞서 말한 ‘삼재’의 발생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 셈이다. 지난 5월 어린이날 연휴에 쏟아진 많은 비 역시 이런 한반도 주변 기후와 무관치 않다.

2013년 태풍 ‘하이옌’이 필리핀 타클로반을 덮친 뒤 한 소년이 잔해를 둘러보고 있다.ⓒ시사IN 이명익

지난해 12월 기상청이 발간한 ‘지역 기후변화 전망보고서(개정판)’는 섬뜩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온실가스 배출 정도에 따른 ‘4개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국내 17개 광역 단위 지방자치단체의 기후변화를 전망했다. 이 보고서는 한국의 극한기후 현상이 어디까지 나타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 보고서는 네 가지 시나리오에 따른 전망치를 폭염, 강수량, 일교차 등으로 보여준다. 〈그림〉을 보자. ‘폭염일수’ 시나리오 네 가지 가운데 가장 낙관적인 것과 가장 비관적인 것 하나씩만 추렸다. 폭염일은 일 최고기온이 33℃ 이상인 날을 말한다. 가장 낙관적인 ‘SSP1-2.6’은 ‘재생에너지 확대로 화석연료 사용이 최소화되는 친환경적 경제성장’을 가정한 시나리오다. 가장 비관적인 ‘SSP5-8.5’는 산업발전에 중심을 두어 화석연료 사용이 높고 도시 위주의 무분별한 개발이 확대되는 상황이다.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부터 보자. 서울의 경우 한 해 폭염일수가 현재(2000~2019년 평균) 15.0일인데, 시나리오 전반기(2021~2040년)에는 30.8일로 두 배 이상 늘어난다. 앞으로 16년 안에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중반기(2041~2060년)에는 37.6일, 후반기(2081~2100년)에는 42.7일로 더욱 늘어난다. 현재 폭염일수가 32.4일로 가장 많은 대구는 전반기에 45.5일로 늘고, 후반기에는 60.5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한다. 1년에 꼬박 두 달을 폭염에 시달려야 하는 셈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다.

바닷바람 등의 영향으로 여름에 비교적 덜 더운 부산과 인천도 마찬가지다. 폭염일수가 현재 8.1일인 부산은 전반기에 15.8일로 늘고, 중·후반기에는 20일이 넘어간다. 폭염일수가 6.8일에 불과한 인천의 추세도 비슷하다. 폭염일수가 6.8일인 강원도 역시 후반기에는 18.3일로 세 배 가까이 는다.

가장 비관적인 시나리오를 보자. 서울의 경우 전반기에는 폭염일수가 33.4일로 낙관적인 시나리오와 비교해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후반기에 충격적인 수치가 나온다. 무려 109.8일이다. 1년 중 3분의 1 가까운 시기를 폭염에 시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유례없는 ‘농작물 대란’ 공포

서울뿐 아니다.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서울·대구·광주·대전·세종·경기·충북·전북 등 8개 지역의 폭염일수가 1년에 100일이 넘는다. 가장 비관적인 수치라고는 하지만, 전 세계 기후위기 대응이 지금처럼 제자리걸음에 머물 경우 미래세대가 맞닥뜨릴 현실이다. 이때가 되면 ‘사계절’이라는 말은 사라지고, 공포의 여름이 지배하는 세상이 올 것이다.

길고 무더운 여름은 농작물 생장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다. 4월25일 농림축산식품부( 농식품부)는 올해 사과·배·복숭아 등 주요 과수가 현재까지 저온 피해 없이 생육이 양호하다고 밝혔다. 지난해 봄 때 아닌 한파로 사과 등 과수의 꽃이 죽어버려 ‘금사과’ 대란이 일어났지만 올해 봄 상황은 괜찮다는 것이다.

그러나 농식품부의 설명은 다소 섣부르다. 우리는 아직 여름을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수 등 대다수 노지 농사는 여름 날씨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무 덥거나 비가 많은 여름철 날씨는 농작물에게 치명적이다. 생장 자체에도 문제가 생기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병충해다.

탄저병으로 썩어버린 사과.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잘 번지는 탄저병은 지난해 사과 흉작의 요인이었다.ⓒ연합뉴스

‘탄저병’이라는 병충해가 있다. 과일에 까만 점이 생기면서 점차 썩어 들어가는 병이다. 비가 많이 내리고 기온이 높은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잘 번진다. 지난해 사과는 물론 배·복숭아 등 과일값이 치솟은 데에는 탄저병 탓도 컸다. 봄철 저온 피해로 애당초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과실수가 줄어든 데다,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나무들마저 여름철에 심각한 탄저병 피해를 입으면서 수확량이 급감했다.

여름철 배추 수급을 책임지는 ‘고랭지 배추’도 위험하다. 강원도 태백과 삼척 등 해발고도가 높고 선선한 지역에서 생산되는 고랭지 배추 덕에 우리는 여름철에도 김치를 담가 먹을 수 있다. 여름 배추의 생육 적정 온도는 18~20℃인데, 최근 강원 산간 지역의 기온 역시 30℃를 훌쩍 넘는 일이 잦아지면서 작황이 불안정하다.

특히 비가 많이 온 뒤에 발생하는 ‘배추 무름병’이 문제다. 비를 맞고 물러진 배추가 악취를 풍기며 썩어가는 병이다. 지난해 여름에는 강원도 산간 지역에 무름병이 번지면서 피해가 심각해 농식품부 장관이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미 올해 잦은 비와 이상기온으로 감자·마늘·양파 농가 등에도 비상이 걸렸다. 땅이 축축해서 씨감자를 심지 못했고, 일조량 부족으로 마늘이 생장하지 못하고 잘게 쪼개지는 ‘벌마늘’ 피해가 속출했다. 최근 전남 무안군 등 양파 농가에서는 극심한 병충해가 창궐하며 피해 보상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폭염과 폭우, 게다가 태풍 발생 가능성까지 커진 올해 여름을 지나면 자칫 유례없이 심각한 농작물 파동을 겪을 수도 있다.

5월16일 정부는 ‘2024년 여름철 자연재난(풍수해·폭염)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경로당에 지급하는 냉방비 지원금을 5만원 증액하고, 전국 503개 병원 응급실에서 온열질환자 발생을 감시하는 내용 등을 담았다. 침수 우려 지하차도는 담당자 4인 이상이 관리하며, 반지하주택 등에는 침수 방지시설을 설치하는 내용도 있다. 행정안전부는 “여름철 기상특보 때 위험지역 출입 자제와 사전 대피에 적극 협조해주고, 폭염 시간대에는 무리한 외출을 자제해 스스로 안전을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예년과 비교해 그리 특별한 대책이 담긴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무서운 여름이 다가온다.

이오성 기자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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