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된 가족 걱정, 브로커에 진 빚…사연 없는 아이 없죠” 7년간 탈북 청소년 도운 중학교 선생님

김영우 기자 2024. 6. 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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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사연이 없는 아이가 없었어요. 제가 도울 수 있는 한 어떻게든 도와야겠더라구요.”

경기 파주 탄현중에는 탈북민 학생들과 7년째 인연을 맺어오고 있는 선생님이 있다. 남현욱(47)씨가 그 주인공이다. 남씨는 지난 2017년부터 3년간 탈북민의 초기 정착 교육을 맡는 하나원 산하의 하나둘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일했다. 탈북 청소년들을 가르치며 이들의 어려움을 알게 된 남씨는 하나둘학교를 나온 뒤에도 탈북 청소년 2명에게 개인적으로 영어를 가르쳤고, 이 두 학생은 올해 초 대학교에도 입학했다고 한다.

지난 9일 오후 경기 파주의 한 중학교에서 남현욱씨가 하나둘학교 학생들에게 받은 편지를 읽고 있다. /김영우 기자

남씨가 탈북 청소년들을 돕기로 한 것엔 첫 부임지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남씨는 경기 시흥의 한 고등학교에서 8년간 근무했는데, 이곳은 반 전체 학생의 3분의 1이 기초생활수급자처럼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었다고 한다. 남씨는 “간호사나 유치원 교사가 되고 싶다는 평범한 꿈을 아이들이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며 “내가 직접 EBS로 아랍어를 배우고 아이들에게 가르쳐 수능을 칠 수 있게 도와줬다”고 말했다. 당시 남씨가 아랍어를 가르친 학생 중 16명이 수능에서 아랍어 1등급을 받았는데, 남씨는 이때 자신이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고 한다.

이런 어려운 사람들을 향한 관심이 지난 2016년엔 탈북민에게까지 확장됐다고 한다. 계기는 탈북 청소년을 주제로 한 세미나를 들으면서다. 남씨는 “세미나에서 부모 없이 혼자 남한에 온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며 “탈북 청소년들에게 내가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세미나를 들은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하나둘학교 파견 교사를 뽑는다는 공고가 올라왔고, 남씨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지원해 9대1의 경쟁률을 뚫고 하나둘학교 영어 교사로 부임했다.

남씨가 하나둘학교에서 처음 만난 탈북민들은 남한 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특히 남한에 온 지 얼마 안 된 아이들에게 남한의 예절과 문화를 새로 가르치면서 ‘남북 아이들이 문화적으로도 큰 차이를 겪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남씨는 “체험학습을 하고 돌아오면서 하나원 근처에 있는 절에 들렀는데, 한 아이가 감나무에 달린 감을 보고 ‘저건 왜 안 따먹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며 “‘남한에서는 원래 안 따먹는다’고 답을 하니 아이가 갑자기 나무에 올라타 감을 따려고 해 당황한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남씨가 나무에 올라탄 아이를 제지하고 있는 사이 종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다른 아이는 절의 범종을 치고 있었다고 한다.

남씨는 하나둘학교에서 근무하면서 북한의 열악한 실상에 대해서도 처음 알게 됐다고 한다. 남씨는 “식사 시간이나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북한에서 공개처형을 본 일이나 부모가 고문을 받고 온 일을 얘기할 때가 있었다”며 “차라리 다른 인종의 일이라면 감정이입이 안 됐을 텐데, 어릴 때 내 친구들과 비슷하게 생긴 아이들이 그런 말을 하니 충격이 더 크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남씨는 또 “내가 맡은 아이 중엔 탈북 과정에서 가족이 중국 공안에 붙잡혀 북송된 아이도 있었고, 탈북 브로커에게 1500만원 빚을 지고 남한에 와 빚 갚을 걱정을 하는 아이도 있었다”며 “이들의 사연을 듣고 내가 도울 수 있는 한 어떻게든 이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지난 9일 오후 경기 파주의 한 중학교에서 남현욱씨가 하나둘학교 학생들에게 받은 편지를 읽고 있다. /김영우 기자

하나둘학교에서 근무하던 시절부터 탈북 청소년들을 도울 방법을 생각하던 남씨는 아이들이 사회에 나간 뒤에도 공부를 할 수 있도록 10개월에 걸쳐 40분짜리 수업 동영상 149편을 손수 찍어 유튜브에 올렸다. 형편이 좋지 않지만 열심히 공부하려는 아이들에게는 사비로 매달 10만원씩 장학금도 줬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2019년부터는 자신이 살고 있는 경기 부천에 정착한 탈북민 학생 2명과 개인적으로 만나 매주 영어를 가르쳤고, 이 두 학생은 올해 대학교에 입학하는 쾌거를 이뤘다. 남씨는 “아이들을 처음 만났을 땐 나를 딱딱하게 대해서 철이 빨리 들었다고 생각했다”며 “4~5년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이 나에게 장난도 치고 어리광도 부리는 걸 보고 아이들이 자기 나이에 맞는 모습을 찾아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남씨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탈북 청소년들에게 도움을 줄 생각이라고 한다. 영어 교사로 근무하던 남씨가 작년에 진로 교사로 보직을 바꾼 것도 그 때문이다. 남씨는 “탈북 청소년들의 교육 지원에 대해 논의를 할 때 교육청에선 대부분 진로 교사를 부른다”며 “내가 진로 교사가 돼 목소리를 내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탈북 청소년 2명의 대학 진학을 도운 남씨는 작년부턴 새로운 탈북 청소년에게 진로 상담을 해주며 이 학생의 대학 진학을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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