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윤의 작심한달] 5. “모든 농사꾼들에 경외를”…도시촌놈, 주말농장 고군분투

이채윤 2024. 6. 1.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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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 찾게 시작한 농사에 실패 겪어
생장 부진에 볼멘소리 이어가
소소한 재미 추구·귀촌 의향 있으면 추천
바쁜 도시인에겐 어려운 취미 될 수도

해가 바뀔 때마다 올해는 무언가 큰일을 이루겠다고 마음먹지만, 연말이 되면 어떤 다짐을 했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해지곤 합니다.

‘작심삼일’의 사전적 의미는 ‘단단히 먹은 마음이 사흘을 가지 못한다는 뜻으로, 결심이 굳지 못함을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삼일’에 그치는 ‘작심’을 자꾸만 계속해 작심 일주일, 작심 한 달, 작심 일 년으로 이어갈 수 있다면 ‘굳지 못한 결심’은 느슨한 채로 이어져 목적지에 이를 수 있을 겁니다.

작심삼일을 밥 먹듯이 일삼는 이채윤 기자가 여러 취미를 찾아 한 달 동안 체험해 봅니다.

작심삼일을 반복해 작심한달을 한다면 ‘내 일’이 ‘내일’이 될 거란 기대로 말입니다. 일터가 아닌 곳에서 삶의 재미를 찾는 독자들에게 참고가 될 만한 생생한 경험담을 전합니다.
 

▲ 밭을 배정받은 후 아무 작업도 하지 않은 이랑의 모습. 이채윤

도농복합도시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기에 교외의 우뚝우뚝 서있는 기다란 비닐하우스를 쉽게 볼 수 있었지만, 단 한 번도 흙을 밟아본 적은 없었다.

지금껏 내 손으로 돌보던 수많은 식물들은 나와 오랜 시간 함께하지도 못했다. 내 손을 거친 식물들은 나의 지나친 관심에 물을 너무 많이 먹거나, 무관심 속에 물을 너무 먹지 못해 내 방에서 죽어나가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은퇴하면 농사지으며 안빈낙도 하고 싶다”는 바람이 마음 한쪽에 늘 자리잡고 있었다.

농촌에서 살아보고 싶다. 유년 시절 시골 이모 댁에서 보던 밭이랑과 그 위에 사뿐이 내려앉은 작물들이 이리저리 출렁거리는 모습이 내게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텃밭이 있는 마당 넓은 집에 살며 땀 흘려 채소를 기르면서 지내보고 싶다. 자급자족에서 오는 여유로움, 성취감 그리고 농촌의 자유로움은 도시인의 로망이다.

주변에서 만류했지만, 도시에 찌들고 일에 찌든 도시인의 로망을 찾아보기 위해 주말농장을 빌려 농사를 시작했다.

지난 봄, 지난해부터 봐놓은 춘천의 한 주말농장에 등록했다. 4개의 이랑, 약 10평 크기의 밭을 오는 11월까지 내맘대로 사용할 수 있다. 반려견의 이름을 따 ‘차차네텃밭’으로 멋진 아이덴티티도 부여해줬다.

농사를 한 번도 지어보지 않아서 걱정이 앞섰지만, 같이 할 친구가 텃밭을 가꿔본 경험이 있다며 호언장담했기에 그를 믿었다.

‘어쩌면 내 안의 숨은 재능으로 ‘귀농로망’을 실현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라며 머릿속 수확의 기쁨이 옥수수 키만큼 먼저 웃자랐다. 어리석게도...
 

▲ 신북읍 장날 야심차게 샀던 고추와 방울토마토 등 첫 모종들이 생명력을 뽐내고 있다. 이날 나의 자신감도 맘껏 뽐내던 날이었다. 이채윤

■1주차: 풋내기 농사꾼의 밭 고르기 -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4월 중순 부푼 마음을 안고 춘천 신북읍의 한 장터에서 토마토와 고추 등 모종을 샀다.

주말농장을 시작하기 전 초보 농사꾼에겐 ‘쌈 채소’를 추천한다는 정보를 봤지만 쌈 채소를 기르는 건 마뜩잖았다. 결실... 열매를 얻고 싶었으며 그만큼 자신있었고 또 호기로웠다.

밭에 도착해 모종을 어떻게 심을지 눈으로 가늠하던 중 주말농장을 운영하는 농장주 K씨께서 우리에게 다가와 조언했다.

“퇴비를 뿌리고 비닐을 바로 깔면 가스가 차. 지금 심으면 다 죽어. 며칠 후에 심어야지...”

그리하여 정수리와 등이 뜨거워지던 농장 방문 첫날 오후, 가슴에 고이 안고 갔던 모종들은 넓은 새집을 마련해주지도 못한채 K씨의 지시에 따라 퇴비 20㎏만 뿌리고 밭을 뒤적였다.

작물을 심기 전 땅에 영양분을 담뿍 주는 것인데 땅을 고르는 일은 힘이 정말 많이 들었다.

무엇이든 기초를 단단히 하는 일은 어렵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 날이었다.

온몸 구석구석이 저려와 포기하고 싶어졌다. 힘이 부친 탓에 괭이질은 제자리걸음 상태였다. 서투르게 땅을 고르는 나에게 K씨는 삽과 괭이질을 알려줬다.

퇴비를 편 후 며칠 지나 이랑에 잡초를 막기 위한 비닐멀칭 작업을 했다. 비닐을 펼치고 당긴 다음 이랑을 덮고, 비닐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흙을 덮어줬다.

비닐을 덮어준 뒤 첫삽을 떴다. 모종삽으로...방울 토마토, 오이, 참외, 옥수수, 수박, 호박 등의 모종들을 심었다.

이때도 빠질 수 없는 K씨의 ‘지도 편달’ 끝에 생각보다 그럴듯해 보이는 ‘차차네텃밭’이 만들어졌다.
 

▲ 초보 농사꾼의 실수와 더운 날씨로 인해 농작물들이 죽어버렸다. 이채윤

■2주차: 다시 원점으로 - 당겨놓은 화살을 놓을 수 없다


며칠 뒤 찾은 주말농장의 차차네텃밭엔 하늘을 보며 위로 자라야 할 작물들이 땅바닥에 고개를 쳐박고 말라가고 있었다.

지난주에 새집을 찾아 심어주었던 모종들이 모두 죽어버렸다. 주말농장 초보의 시련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모종을 심을 때부터 문제가 있었던 게 드러났다.

우리의 히어로 농장주 K씨는 “물을 충분히 주지 않은 마른 땅에 연약한 모종을 심고, 모종을 심은 뒤에 물을 줬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모종들이 연약한 뿌리로 충분한 수분을 섭취할 새없이 뙤약볕을 견디다가 죽고 만 것이었다. 게다가 햇빛이 내리쬐는 날씨에도 사흘 정도 물도 주지 않고 방치했던 것도 죽게 만든 원인 중 하나였다.

그놈의 물주기가 문제였다... 내방에서 죽어나가던 수많은 화분들이 또 떠올랐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재빠르게 죽은 모종들을 다 뽑고 수박, 참외, 고추, 방울토마토, 딸기, 오이 모종을 다시 사서 심었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주말농장 임대 기간이 아직 6개월이나 남았다.
 

▲ 이웃 밭에서 옥수수들이 생명력을 드러내며 허리춤을 넘어 쑥쑥 자라고 있다. 이채윤
▲ 이웃 밭과 비슷한 시기 심은 차차네 텃밭 옥수수들은 힌 뼘 정도 자랐다. 이채윤

■3주차: 부진한 생장에 한숨짓는 한주 - 굼벵이가 담벽 뚫는다


근로자의 날인 5월 1일 마음을 다잡고 다시 모종을 심었는데 2주가 지나도 ‘차차네텃밭’의 작황 상태는 좋지 않았다.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일주일에 서너 번은 밭에 가서 물을 주고 들여다 봤지만 생장 속도가 느렸다.

이웃하고 있는 옆 밭은 비슷한 시기에 같은 옥수수를 심었는데도 허리 높이까지 자랐다. 그러나 우리 옥수수는 한뼘정도만 크고 더이상 클 생각을 하지 않아 절로 비교가 됐다.

방울토마토도, 고추도, 딸기도 당최 클 생각을 안 했다. 심지어 꾸준히 관리했음에도 오이는 죽어버렸다.

게다가 주말농장을 하는 다른 분은 쌈 채소를 심어 “2주 만에 벌써 3번은 수확했다”고 내게 은근한 자랑을 하는데 배가 아팠다. 다른 사람들이 다 가꾸는 쌈 채소를 심지 않은 게 후회가 됐다. 주말농장 초보들에게 쌈 채소를 추천한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절망하고 있는 나를 본 우리의 히어로 K씨가 깻잎 심기를 조언해 군데군데 심었다.

생장 속도가 느린 차차네텃밭을 볼 때면 꼭 내 자식만 못난이가 된 듯한 기분이 들어 한숨을 푹푹 내쉬게 되지만 자주 들여다봤다.

 

▲ 심은 지 26일 만에 고추가 열매를 맺었다. 지지대가 있어야 할만큼 성장했다. 이채윤

 

■4주차: 진딧물·잡초의 습격 이후 감격 - 고생 끝에 낙이 온다


물을 주다가 수박잎 뒷면을 들춰보니 진딧물이 득실거렸다. 다른 작물들도 확인해 보니 진딧물의 습격으로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근처 농자재마트에 가서 진딧물 약과 분무기를 사서 뿌렸다.

진딧물도 문제였지만 이랑 사이사이 잡초는 끈질기게 자랐다. 차차네텃밭의 옥수수보다 잡초가 더 무성하게 잘 자라는 이 상황이 아찔했다.

잡초를 정리하기 위해 호미로 땅을 멨다. 김메기... 틈틈이 잡초가 자라지 않도록 관리해야만 농작물들이 잘 자랄 수 있다고 K씨는 말했다.

며칠 뒤 드디어 고추와 방울토마토가 열매를 맺었다.

비록 느리게 자란다는 타박을 듣던 녀석들이었지만, 열매를 맺은 게 일주일 동안 나의 가장 큰 자랑거리가 됐다.

차차네텃밭은 다른 텃밭들보다 느리게 크는 농작물들만 있는 게 확실하지만, 그래도 자랐다. 기특했고 애틋했다.

최근 방울토마토와 호박 가지치기를 하고, 방울토마토와 고추에 지지대를 세웠다. 앞으로도 농작물의 결실을 보기를 기다리면서 계속 밭을 가꿀 예정이다.

한여름 빨간 맛을 선사할 수박, 전으로 부쳐 먹기 딱 좋은 애호박, 강원도의 여름 옥수수, 싱그러운 방울토마토, 아삭한 풋고추와 씨가 많은 참외를 내심 기대해 본다.

고작 손바닥만한 텃밭이 이렇게 나의 애간장을 태우는데 농촌의 모든 농사꾼들은 매년 어떤 마음일까. 이들에게 경외를 보내며, 멀리서 구입해 드시는 분들도 더 감사하며 드시길 바란다.

농사짓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아무것도 몰라 농사를 로망이라고 했던 오만한 도시촌놈은 고작 4개의 이랑 앞에서 겸허해진다.

 

▲ 퇴근 후 들린 농장에서 옥수수, 딸기, 수박과 호박 등에 물뿌리개와 호스 등을 이용해 물을 주고 있다. 이채윤

 

▶▶▶소소한 재미와 귀촌 의향 있으면 추천·바쁜 도시인이라면 어려울 수도

삶의 소소한 재미를 원하는 이라면 주말농장 등 농사를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직접 먹을 수 있는 농작물을 기르는 일에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매일 기상예보를 볼 때마다 밭 관리도 신경 쓰게 되고, 여가를 농사에 활용할 수 있는 등 여러모로 즐거움과 보람을 얻을 수 있다.

귀촌 의향이 있다면 주말농장을 활용해 농사를 지어보는 것도 추천한다. 아예 농사에 모르고 귀촌하는 것보다는 주말농장 등을 활용해 농사를 경험해 본다면 귀촌 결정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반면 바쁜 도시인이라면 농사는 선뜻 하기 어렵다. 퇴근길의 러시아워를 뚫고 교외에 있는 농장에 가는 건 힘이 들 수 있다. 게다가 주말에 꾸준히 시간을 낼 수 없어 관리를 소홀히 한다면 바로 티가 난다.

몸이 안 좋은 사람은 농사는 하기 힘들다. 쭈그리거나 고개를 숙이는 자세가 힘들다면 농사는 행복이 아닌 고역이 될 것이다.

#주말농장 #이채윤 #도시촌놈 #네텃밭 #옥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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