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단 7천만원 못줘” 파혼담 속출…허한 마음 달래려 복권방 몰리는 中청년들

송광섭 특파원(song.kwangsub@mk.co.kr) 2024. 6. 1.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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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취업난에 일확천금 꿈
복권 구매 80%가 18~34세
즉석복권 없어서 못팔 정도
고시원 같은 ‘청년 양로원’엔
부모 눈치 피해 ‘백수’ 몰려
예단 7천만원·금붙이 7개
억소리 혼수에 결혼도 포기
지난 26일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의 한 쇼핑몰에 위치한 복권방에서 중국 MZ세대들이 즉석복권을 구매한 뒤 자리에서 바로 당첨 여부를 확인해 보고 있다. [사진 = 베이징 송광섭 특파원]
“취업은 포기, 주식은 쪽박, 가상화폐는 금지. 이번 생, 복권당첨 외엔 방법 없다.”

중국 베이징 시내에 위치한 유명 라마교 사원 ‘융허궁’은 취업성공이나 결혼을 비는 곳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최근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이곳에서 즉석복권을 긁으며 기도하는 사진과 영상이 화제를 모았다. 청년들의 소원 목록에 ‘복권 당첨’이 오른 것이다.

지난 25~26일 취재를 위해 융허궁 인근 복권방을 둘러봤더니, 모든 가게에서 즉석복권이 매진된 상태였다. 복권이 인기를 끄는 것은 한국이나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중국 청년들의 경우 취업은 요원하고 중국 증시는 지지부진한데다 가상화폐 거래까지 금지된 터라 더욱 복권으로 몰린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중국 복권 판매액은 2020년 3340억위안(약 62조5000억원)에서 지난해 5797억위안(약 108조5000억원)으로 급증했다. 복권 구매자의 약 80%는 18~34세 청년이다.

같은 날 방문한 베이징 차오양구의 한 쇼핑몰에서도 이같은 복권 열풍을 목격할 수 있었다. 한쪽 구석에 위치한 복권방에는 중국 MZ세대인 ‘주링허우(1990년대생)·링링허우(2000년대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연인끼리 또는 친구끼리 복권방 앞을 지나갈 때면 발걸음을 멈추고 들여다봤다. 다양한 종류의 복권이 신기한 듯 둘러보고 가거나 자연스럽게 몇 장을 구매한 뒤 그 자리에서 바로 긁어보기도 했다.

복권방에서 일하는 20대 A씨는 “가게를 찾는 손님 대부분이 20·30대”라며 “유독 즉석복권의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중국 MZ세대가 가장 선호하는 복권은 ‘꽈꽈러(刮刮乐)’라고 불리는 즉석복권이다. 당첨 여부를 바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긁는 재미는 덤이다.

중국 상하이에 거주하는 대학생 푸 모씨는 “복권을 자주 사는 편”이라며 “한번에 많게는 100위안(약 1만9000원)어치를 구매한다”고 전했다. 이어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갈 때면 그 곳에서만 파는 복권을 기념품처럼 산다. 여행을 멀리 갈수록 복권을 더 많이 산다”고 덧붙였다.

인근 또 다른 복권방 주인 50대 B씨는 “즉석복권은 요새 없어서 못 팔 정도”라며 “당국에서 물량을 배분하다 보니 입고되는 날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어쩌다 입고되면 하루나 이틀 만에 동이 난다. 요새는 ‘따러토우(중국판 로또)’ 등 다른 복권을 찾는 손님도 늘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중국의 극심한 취업난과 연관이 깊다고 보고 있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부족함 없이 자라온 중국 MZ세대들이 취업난을 겪으면서 불안한 미래를 맞닥뜨리게 됐다”며 “복권 열풍은 이러한 불안과 혼란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당국은 지난해 6월 청년(16~24세) 실업률이 21.3%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자 그 해 7월부터 통계 발표를 중단했다. 이후 지난 1월 중·고교, 대학생을 제외한 실제 구직자만을 집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통계 기준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14~15% 수준의 높은 청년 실업률은 지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청년 전용 ‘양로원’까지 생겼다. 집에만 있기 눈치가 보이는 청년들이 저렴한 비용을 내고 생활하는 시설이다. 한국의 고시원과 비슷하지만, 카페나 노래방 등 다양한 시설을 구비하고 공동체험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는 것이 특징이다. 월 이용료는 1500위안(약 28만원)가량이다. 청년층의 좌절이 심상치 않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최근 새 시대의 일자리 사명으로 ‘고품질 완전 고용 촉진’을 주문하기도 했다.

‘불혼주의(不婚主义)’도 최근 중국 MZ세대를 대표하는 주요 키워드다. ‘결혼을 기피한다’는 의미의 신조어인데, 가장 큰 걸림돌은 ‘고액 예단·예물’이다. 중국에서는 결혼할 때 신랑이 신부에게 예단 성격으로 지참금을 주는데, 여성 인구가 적다 보니 신부 측에서 큰 액수를 요구하는 사례가 많다.

지참금은 지역별로 차이가 있다. 중국 SNS에서 퍼지고 있는 지역별 평균 시세를 보면, 푸젠성이 30만~39만위안(약 5600만~7300만원)으로 가장 많다. 저장성(23만~30만위안), 장시성(18만~27만위안), 후난성·산시성(15만~18만위안), 베이징·상하이·텐진(12만~15만위안)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여기에 ‘3금(三金)·5금(五金)·7금(七金)’ 등의 예물을 요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3금은 금반지, 금귀걸이, 금목걸이를 뜻한다. 5금은 3금에 금팔찌와 금팬던트, 7금은 5금에 금주판과 금발찌가 추가된 것이다. 5금만 해도 10만위안(약 1900만원)을 훌쩍 넘는다. 사람에 따라 집이나 차를 추가로 요구할 때도 있다.

SNS에는 ‘억소리’ 나는 결혼 비용 때문에 파혼을 결정했다는 경험담이 속출하는 중이다. ‘예비 신랑이 지참금을 깎으려고 해서 다퉜다’는 여성 네티즌부터 ‘신부를 돈 주고 사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며 지참금 문화를 비판하는 남성 네티즌까지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중국 정부도 이러한 문제를 잘 알고 있다. 중국 민정부는 지난 3월 고액 예물 등 결혼 관련 문제에 관한 종합적인 관리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라고 당부했다. 덩린 충칭시 민정국 부국장은 “일부 지방에선 고가 예물이 결혼 생활에 트라우마를 주고 일부 가정에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을 준다”고 지적했다.

이후 닝샤에서는 결혼 시 지참금을 1인당 가처분소득의 6배를 넘지 않는 선에서 정하도록 했다. 네이멍구의 한 부녀연합은 최근 ‘고액 예단·예물을 거부하고 검소한 결혼식을 옹호한다’는 취지의 제안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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