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우리 하늘에 뿌렸다…비행기·첨단무기 GPS 무력화 노리나 [박수찬의 軍]
북한은 지난 29일부터 31일까지 서해 지역에서 사흘 연속 위성항법장치(GPS) 전파 교란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를 전후러 서북도서 일대에 GPS 교란신호가 탐지됐다. GPS 교란으로 인한 군사작전 제한은 현재까지는 없다.
여객선과 달리 GPS에 의존하는 어선에는 이같은 문제가 심각하다. 날씨가 좋지 않은 바다 한가운데서 GPS가 오작동을 일으키면 북한 해역으로 넘어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북한이 이같은 교란 공격을 통해 경험을 축적, 전면전 상황에서 적용할 가능성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의 전자전으로 우크라이나군이 쓰던 미국산 정밀유도무기의 명중률이 급락했던 것과 유사한 상황을 한국군이 겪을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오랜 기간 GPS 교란 기술 쌓아온 북한
위성으로 위치·시각정보를 제공하는 항법체계인 GPS는 현대 문명의 모든 활동을 뒷받침하는 원천 기술이다. 전투기, 군함, 통신기, 감시장비, 정밀유도무기도 GPS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GPS는 편리하지만 2만㎞ 상공에서 인공위성이 쏘는 전파라 강도가 휴대전화의 약 1/100 정도에 불과하다. 전파를 받는 기지와 가까운 곳에서 교란전파를 쏘면 쉽게 교란할 수 있다. 이것이 GPS 전파 방해 공격 기술의 시초다.
GPS 전파방해가 처음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2003년 이라크 전쟁에서다. 전쟁을 앞두고 미군은 GPS 수신기를 장착한 정밀유도무기의 위력을 믿었다.
하지만 막상 실전에서는 엉뚱한 곳에 떨어졌다. 미군은 이라크에서 누군가가 러시아산 GPS 재머로 정밀유도무기의 GPS 수신기를 마비시켰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라크전쟁에서 효과가 입증된 러시아 GPS 재머는 암시장에서 휴대형부터 차량 탑재형까지 활발하게 거래됐고, GPS 교란 기술은 전 세계로 퍼졌다.
GPS 재머를 손에 넣은 국가 중에는 북한도 포함되어 있었다. 북한이 GPS 재머를 입수한 시기는 불명확하지만, 군 당국과 정보당국에선 2008년을 전후로 북한이 4~24와트 출력을 내는 러시아산 GPS 재머를 얻은 것으로 추정한다.
북한은 2008년 이전부터 GPS에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군이 지난 2009년 배포했던 ‘존경하는 김정은대장 동지의 위대성 교양자료’에는 지난 2006년 12월 북한군 지휘부가 김정은이 인공위성 자료와 GPS 좌표를 이용해 작성했다는 작전지도를 보고 경탄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GPS를 군사작전에 활용했을 정도라면, GPS 전파방해 작전도 적극적으로 쓰려고 했을 것이다.
한·미 연합군이 토마호크 등의 정밀유도무기로 북한 지도부를 정밀타격할 위험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북한으로선 많은 비용이 드는 지대공미사일보다는 GPS 재머가 더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러시아에서 GPS 재머를 들여온 북한은 이를 모방해 GPS 재머를 만들었다. 이후 러시아보다 싼값에 수출을 추진했다. 2000년대 중동에선 GPS 재머의 성능을 담은 북한의 무기 카탈로그가 등장할 정도였다.
현재 북한은 황해남도 연안, 개성 등과 중·동부전선 일대에 GPS 재머를 설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사시 전방 지역 한국군의 GPS 사용을 교란하려는 의도에서다.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하면서 GPS 전파방해는 약간의 돈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게 됐다.
알리익스프레스나 이베이를 비롯한 전자상거래 사이트에선 수많은 종류의 GPS 재머가 팔리고 있다. 용도에 따라 손목에 차는 것부터 차량에 탑재하거나 삼각대에 설치하는 것까지 다양하게 ‘픽’ 할 수 있다.
이같은 추세는 북한군이 손쉽게 GPS 재머를 늘릴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저렴한 가격에 상업용 GPS 재머를 구입해서 개조하면, 국지적으로 전파방해를 할 수 있는 장비를 얻는다.
이렇게 GPS 재머의 보유량이 늘어나면 북한군은 전·평시에 다양한 작전을 추가로 펼칠 수 있다.
서북도서나 휴전선 일대 장사정포나 해안포를 움직이면서 GPS 재머를 가동, 한국군의 대응을 방해할 수 있다.
GPS 전파방해 강도를 대폭 높여 인천·김포공항을 오가는 여객기 이착륙을 방해하거나 사고를 유도할 수도 있다. 이는 외국 항공사의 여객기 운항을 중단시켜서 한국에 경제적 타격을 입히는 결과로 이어진다.
실제로 핀란드 항공사 핀에어는 지난 4월 말 에스토니아에 대한 러시아의 GPS 교란으로 헬싱키에서 에스토니아 타르투로 가던 항공기 2대가 회항한 뒤 해당 노선 운행을 잠정 중단했다.
공중정찰을 수행하는 무인기의 비행을 방해해 특정 지역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하거나 무력화, 탈취할 수도 있다. 지난 2011년 12월 이란은 미국의 최첨단 스텔스 드론 RQ-170 센티널을 GPS 신호교란 방식으로 강제 착륙시켰다.
이란은 드론의 GPS 연결을 차단, 자동 비행 모드로 전환하도록 유도하면서 비암호화 GPS 주파수를 찾도록 조작했다.
이후 드론이 아프가니스탄 기지로 가는 것처럼 거짓 신호를 보내서 이란 영토에 착륙시켰다. 이란은 이후 RQ-170을 복제했다.
북한 핵·미사일 능력이 고도화하면서 한반도 유사시 핵·미사일 관련 시설이나 전쟁지도부를 한·미가 선제공격하는 시나리오도 현실화할 수 있다. 이때 북한이 GPS 재머를 네트워크로 묶어서 가동한다면, 정밀유도무기의 위력이 떨어질 수 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에서는 미국이 지원한 엑스칼리버 155㎜ GPS 유도포탄이 러시아군의 GPS 전파방해로 정확도가 70%에서 6%로 급락했다. 올해 초에 벌어진 일이다. 미국산 합동정밀직격탄(JDAM)과 하이마스(HIMARS) 다연장로켓, 에이태큼스(ATACMS) 전술지대지미사일 명중률도 영향을 받았다.
GPS 전파방해에 의한 피해를 줄이려면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일각에선 GPS 재머를 파괴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GPS와 스타링크에 의존하는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의 GPS교란에 맞서 관련 무기나 장비를 없애는 작전을 지속하고 있다.
미 포브스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은 개전 이래 지난해 말까지 46개의 전파방해 체계를 파괴했다. 공개된 사례에선 드론이 전파방해 체계를 탐지한 뒤 전투기가 정밀유도폭탄을 투하하는 방식이 사용됐다.
미국산 AGM-88 함(HARM) 대레이더미사일이 있지만, 값이 비싸고 방공망을 제압이 우선인 상황에서 전자전장비 공격은 쉽지 않다.
이와 관련해 미국은 새로운 옵션을 검토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GPS 정밀유도무기의 사용이 제약을 받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구체적인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무선 주파수를 식별하는 추적기를 갖춘 정밀유도무기가 해당 위치로 날아가면 방공레이더나 GPS 전파방해장치를 파괴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 국방부는 최근 관련 추적기 획득 계약을 맺었다.
북한은 10여년 전부터 한국을 겨냥해 GPS 교란을 진행해왔다. GPS는 한국 사회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시스템이다. 유사시 전투와 국민생활에도 필수적이다. 북한의 GPS 교란이 지금 당장 별다른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고 안심하는 대신 철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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