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의 종착지 폐암'…세브란스병원, 치료 가능성 제시

이지현 2024. 5. 30.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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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 폐암 발병 원인의 85% 차지
담배 속 타르 등이 폐 세포 DNA 파괴
세브란스병원 폐암센터 금연클리닉
개인 맞춤형 다양한 프로그램 제공
폐암 신약개발 주도하는 조병철 교수
렉라자 성공 이후 4세대 항암제 연구
ROS1 돌연변이 표적항암제 FDA 승인
제이인츠바이오와 새 폐암치료제도 개발
'JIN-A02' 올해 말 임상 2상 시험에 진입
슈퍼컴퓨터 활용한 AI 기반 연구도 활발
DGIST 핵심단백질자원센터 연구진 합류
5·6세대 항암제 선제적 개발 기반 마련

매년 5월 31일은 ‘세계 금연의 날’이다. 흡연의 해악을 알리고 금연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세계보건기구(WHO)가 1987년 지정했다. 담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크게 달라졌다.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흡연은 드라마나 영화 등에 자주 등장하는 단골손님이었다. 성인이 되는 관문으로 여겨지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엔 흡연은 폐암 등 여러 심각한 질병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는 인식이 높아졌다.

조병철 세브란스병원 폐암센터 교수(앞줄 가운데)가 연구실 팀원들과 ‘파이팅’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제공

 흡연, 폐암 발병 원인의 85%

WHO에 따르면 흡연은 폐암 발병 원인의 85% 이상을 차지한다. 흡연자가 비흡연자보다 폐암에 걸릴 확률은 15~30배 높다. 2020년 국제암연구소(IARC) 통계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220만 명이 폐암을 진단받았다. 이 중 180만 명이 폐암으로 숨졌다.

담배 연기 속 타르와 각종 유해 물질은 폐 세포의 DNA를 파괴한다. 손상된 DNA 탓에 세포 돌연변이가 발생해 비정상 세포, 종양으로 바뀐다. 흡연은 심혈관계 질환,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뇌졸중, 구강암, 식도암, 췌장암 등의 원인이다. 흡연자는 비흡연자보다 심장마비를 일으킬 확률이 2~4배 높다. 뇌졸중 발생 위험도 2배 이상 높다.

폐암 예방을 위해 금연을 결심했다면 금연클리닉을 활용하면 도움이 된다. 세브란스병원 폐암센터는 흡연자가 금연에 성공하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세계적 폐암 권위자인 조병철 교수가 직접 클리닉을 챙기고 있다. 금연클리닉을 찾으면 흡연자의 흡연 습관, 니코틴 의존도, 건강 상태 등을 평가해 개인 맞춤형 금연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돕는다. 니코틴 대체 요법과 다양한 약물 치료 옵션도 제공한다. 니코틴 패치, 껌, 로젠지, 흡입기 등을 통해 흡연자의 니코틴 갈망을 줄이고 비니코틴 약물 처방도 병행한다. 흡연 유발 요인을 피하거나 대처하는 방법을 교육해 금연 동기를 부여하고 인지 행동을 교정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조 교수는 흡연자 건강을 위한 다양한 연구와 치료를 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은 금연과 관련된 신약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최신 임상시험과 연구를 통해 효과적 금연 치료법을 개발하고 있다. 종합 건강 평가를 통해 흡연자가 금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건강상 이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폐 기능 검사, 혈액 검사, 심장 건강 검사 등을 통해 흡연으로 인한 건강 문제를 조기에 발견하고 관리한다.

 폐암 신약 개발도 활발

조 교수는 흡연 등으로 발생한 폐암을 치료하기 위한 신약 개발 연구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3세대 표적 항암제인 유한양행의 렉라자 성공 후 4세대 항암제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조 교수는 렉라자 개발 당시 세포실험부터 임상 3상까지 모든 과정을 주도했다. 그는 “3세대 표적항암제로 타그리소가 있지만 환자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준다는 점에서 (렉라자 개발의) 의미가 크다”며 “기존 1·2세대 항암제는 종양이 뇌로 전이되는 것을 막지 못했지만 렉라자는 뇌혈관 장벽을 통과할 수 있어 뇌전이 환자에게도 치료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했다.

렉라자를 활용하는 EGFR 돌연변이 폐암 환자는 세계에서 매년 250만 명 넘게 발생할 정도로 흔한 폐암이다. 조 교수팀은 ROS1, KRAS 등 다른 돌연변이 표적항암제 연구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ROS1 돌연변이 표적항암제인 레포트렉티닙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는 데 큰 역할을 했다. KRAS 돌연변이 폐암 표적항암제 ‘D3S-001’ 개발도 이끌고 있다. 폐암 치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

조안나 제이인츠바이오 대표


조 교수는 조안나 제이인츠바이오 대표와 함께 새 폐암치료제 ‘JIN-A02’도 개발하고 있다. 유한양행이 지분 15.9%를 보유한 제이인츠바이오는 항암 신약과 희귀의약품 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바이오기업이다. 연세대에서 공중보건학을 전공한 조안나 대표는 다년간의 연구 경력과 글로벌 제약사 경험을 바탕으로 제이인츠바이오를 이끌고 있다.

이들이 개발하는 JIN-A02는 EGFR 돌연변이 중 치료가 어려운 C797S 돌연변이를 표적으로 하는 4세대 항암제다. 지난달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미국암연구학회(AACR)에서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했는데 낮은 용량으로 진행하는 초기 단계 연구에서 22㎜였던 종양이 약물 투여 후 77.3% 줄어 5㎜까지 작아졌다. 이보다 용량이 다소 높은 연구에서도 종양 크기가 35.3% 줄었다. 뇌전이 병변 크기는 28.6% 감소해 7㎜에서 5㎜로 줄었다. JIN-A02가 폐 원발 종양뿐 아니라 뇌 전이 병변에서도 효과적이라는 의미다. 폐암 환자 삶의 질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으로 평가받는 JIN-A02는 올해 말 임상 2상시험에 진입할 예정이다.

조 교수는 “JIN-A02는 암세포가 커지는 것을 억제하고 폐암 특성상 뇌로 퍼지는 것을 막아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암 사망률 1위인 폐암에서 80%를 차지하는 비소세포폐암은 완치가 가능한 환자가 20%에 그친다. 조 교수는 “폐암은 치료 지침이 6개월마다 바뀔 정도로 까다로운 병”이라며 “신약 개발 노력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어 희망이 될 소식도 곧 전해질 것”이라고 했다.

디지스트 핵심단백질자원센터 연구팀이 신약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디지스트 제공

 DGIST와 협업해 인공지능도 활용

최근엔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핵심단백질자원센터 연구진이 조 교수와 제이인츠바이오의 신약 개발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이들은 슈퍼컴퓨터를 활용한 인공지능(AI) 기반 연구를 통해 폐암 신약 개발의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영국 대학평가기관인 타임스고등교육(THE, Times Higher Education)은 개교 50년 이내인 신흥대학 대상 평가에서 DGIST를 국내 3위로 선정했다. AI 기반 신약 개발 연구에서 독보적 역량을 보유했다는 평가다.

슈퍼컴퓨터를 활용한 AI 분석을 통해 신약 후보 물질을 발굴하고 임상시험 성공 가능성을 예측하는 기술을 개발해왔다. 이런 기술은 신약 개발 속도를 크게 단축하고 성공률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최성균 DGIST 핵심단백질자원센터장과 유우경 교수팀은 슈퍼컴퓨터를 활용한 AI 기술을 통해 기존에 개발된 약물을 폐암 항암제로 재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들은 독성시험을 통과한 안전한 약물을 재조합해 신약개발 실패 확률을 크게 줄이고 있다.

항암제 투여 시 발생할 수 있는 돌연변이 위치를 예측해 5·6세대 항암제를 선제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조 교수는 “DGIST의 AI 기술은 JIN-A02의 개발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고 했다. 폐암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다. 개인의 예방 노력도 중요하다. 금연은 폐암 예방을 위한 가장 효과적 방법이다. 폐암뿐 아니라 다양한 질병 위험을 줄여준다. 담배를 끊는 것은 개인의 건강을 지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가족과 친구, 사회 전체의 건강을 지키는 일이라고 조 교수는 설명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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