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분양가의 습격] ④ 더 좋아지고 편리해지니…"더 비싸졌다"

이수현 2024. 5. 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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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마감재·IT시스템·커뮤니티 시설 등 고급화 설계 잇따라 채택
층간소음·제로에너지 규제 더 강화되며 분양가 추가 상승 가능성도
치솟은 분양가에 '고급화 설계' 포기 단지도

[편집자주] 분양가가 치솟고 있다. 3.3㎡당 전국 평균 분양가가 2000만원 수준까지 다다랐다. 서울 강남 한복판 아파트에서는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됐는데도 6000만원대 분양가가 시세보다 저렴하다며 청약자들이 몰리고 있다. 서울 일각에서는 1억원 넘는 분양가에도 고급 아파트가 속속 팔려나가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왜 이렇게 분양가가 치솟기만 하는지 그 원인을 파헤쳐본다.

[아이뉴스24 이수현 기자] "조합원들은 재건축 중 수년간 집을 떠나 있어야 해요. 새집을 얻기 위해서 많은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데 누가 다른 아파트보다 안 좋은 새집에 입주하고 싶을까요. 이왕 재건축한다면 지역에서 가장 좋은 대장 아파트에 들어가고 싶은 게 당연하죠."(서울 재건축 사업장 조합원 A씨)

분양가 상승세 속에서 아파트 고급화 열기는 뜨겁다. 주거의 질과 단지의 가치를 동시에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고급화 설계가 활용되면서 각 건설사가 조경과 디자인, 마감재 등 외적인 부분에서 경쟁을 이어 나가는 중이다. 그중 조합원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정비사업의 경우 조합원의 선택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고급화 설계를 강조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일반적으로 아파트 동과 동을 연결하는 스카이브릿지는 하이엔드 브랜드에만 조성되는 대표적인 시설이다. 사진은 대우건설이 한남2구역(한남써밋)에 제안한 스카이브릿지 투시도. [사진=대우건설]

실제로 최근 정비사업 시공사가 선정된 한 건설사는 하이엔드 브랜드를 약속하며 해외 유명 조경업체와 협업하거나 지하에 대규모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하기로 하는 등 단지 고급화를 강조했다. 또 다른 건설사도 하이엔드 브랜드 적용과 함께 외국산 고급 마감재와 단지 특색을 살린 차별화된 설계를 홍보하며 사업을 수주했다.

치열해진 건설사들의 고급화 경쟁은 하이엔드 브랜드 출시로 이어졌다. 현대건설 '디에이치'를 비롯해 DL이앤씨 '아크로', 롯데건설 '르엘', 대우건설 '써밋', SK에코플랜트 '드파인' 등 건설사마다 고급 브랜드를 내세웠다. 그리고 각 브랜드는 국내외 유명 건축 디자이너를 초청하거나 실내 수영장 등 대형 커뮤니티 시설을 조성해 하이엔드 브랜드의 강점을 살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정비사업 조합원들도 고급화 설계 선호는 마찬가지다. 커튼월(벽면을 유리로 마감하는 공법)과 대리석 바닥 등 고급화 설계가 단지 가치를 높이는 하나의 공식으로 자리 잡은 탓이다. 이에 더해 청약 시에도 고급화 단지를 내세울 경우 수요자들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어 인근 단지 대비 상대적으로 비싼 분양가에도 높은 청약 경쟁률을 기대할 수 있는 점도 조합원이 고급화 설계를 선호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과거에는 지방과 수도권, 서울 등 지역마다 마감재 등 설계에 대한 기준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기준이 허물어진 느낌"이라면서 "대다수 조합원이 정비사업을 진행하면서 고급화 설계를 단지에 적용하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 주택 경기 침체에…고급화 설계 포기하는 조합

다만 고급 마감재가 공사비 상승의 원인 중 하나라는 지적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또한 건설 경기 침체 속 분양가가 상승하면서 시공사와 조합, 또는 조합원들 사이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현장도 나오고 있다.

더 좋은 아파트를 원하는 정비사업 조합과 손해를 볼 수 없는 시공사 사이 공사비 갈등은 공사 중단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사진은 서울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 타워크레인이 서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서울 송파구 잠실진주아파트는 아파트 고급화를 두고 조합원 간 갈등이 나온 현장 중 한 곳이다. 지난해 시공단이 평당 공사비를 660만원에서 889만원으로 인상해줄 것을 요청하자 일부 조합원은 조합이 요청한 고급 마감재가 공사비의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이에 조합은 시공사에 마감재를 지정해달라고 요청해 평당 공사비를 889만원에서 823만원 수준까지 낮췄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하이엔드 브랜드를 적용하면 일반 브랜드에 없는 커뮤니티 시설이 추가되고 마감재 또한 외국산 고급 자재 사용한다"면서 "단지 내 식재되는 나무마저 하이엔드 브랜드는 더 비싼 것을 사용하니 일반 브랜드와 비교해 공사비와 분양가가 상대적으로 더 비싸진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정비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철제 난간을 썼지만 현재는 시야를 방해하지 않는 대신 더 비싼 강화 유리로 난간을 적용하는 단지가 많은 것처럼 기술 발전과 유행에 따라 사용하는 마감재가 달라진다"면서 "계약 당시 선정한 자재가 유행이 지나거나 더 비싼 자재가 나오는 경우 마감재 변경을 원하는 조합과 공사비를 인상하려는 시공사 사이 갈등이 발생하는 현장이 많다"고 설명했다.

주택경기 침체가 이어지는 가운데 고급화 설계를 두고 갈등이 이어지면서 조합원들 사이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자재비와 인건비와 달리 마감재는 공사 중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만큼 나빠진 건설경기에 대응해 공사비를 줄여 가격경쟁력을 높이려는 현장이 나오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2구역 조합과 홍제3구역 조합은 시공사와 협의 끝에 고급 마감재를 일반 마감재로 바꿨다. 당초 홍제3구역은 시공사가 공사비를 평당 512만원에서 898만6400원으로 올려달라고 요청했지만 고급 마감재를 일부 포기하면서 약 100만원 내려간 784만원 수준으로 합의했다. 북아현2구역도 고급 마감재를 포기하면서 평당 공사비를 859만원에서 748만원까지 낮췄다. 두 단지 모두 마감재 변경으로 평당 공사비를 100만원 이상 줄였다.

◇ 층간소음 규제에 제로에너지 인증까지…"분양가 더 오른다"

업계에서는 고급화 설계와 함께 내년 본격 시행되는 제로에너지와 층간소음 관련 규제도 분양가 상승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소비자들에게 주택은 더 좋아지겠지만 그에 따라 분양가는 더 부담해야 하는 셈이다.

내년부터 제로에너지와 층간소음 관련 규제가 시행되면서 분양가 상승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인 서울 시내 아파트 공사현장 모습. [사진=뉴시스]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부터 신축 공동주택을 건설할 때 소음 기준에 미달하면 준공 승인이 불가능해진다. 이전까지는 권고 수준에 그쳤지만 내년부터는 소음 기준을 충족할 때까지 보완시공이 의무화된다. 이에 대해 정부는 권고 수준인 현 기준을 강화하는 만큼 추가 공사비 인상은 없다고 강조했지만 업계에서는 공사비 인상을 우려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정부는 내년부터 30가구 이상 민간 아파트에 '제로에너지 건축물 인증'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다. 제도가 시행되면 각 아파트는 에너지자립률(단위면적당 1차에너지소비량 대비 1차에너지생산량의 비율)에 따라 1~5등급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을 받는다. 높은 인증을 위해서는 창호와 단열재 등 성능을 강화하거나 단지마다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추가해 에너지 자립률을 높여야 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의 층간소음 규제로 바닥을 더 두껍게 만들어야 하는 만큼 재료비 상승으로 인한 공사비 상승 요인이 될 것"이라면서 "제로에너지 건축물 인증 또한 건물을 더 좋게 만들지만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하기 위한 추가 설비 등을 감안하면 공사비는 당연히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이수현 기자(jwdo95@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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