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뭐 해?’… 애인에게 묻듯, 내 호흡에게 문자 보내보세요

김한수 기자 2024. 5. 29.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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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찾는 사람들]
기독교→출가→환속→명상
‘반려명상’ 이끄는 성소은 작가
'선방에서 만난 하나님', '경전 7첩 반상' '반려명상' 등의 저자 성소은 ‘경계 너머, 아하!’ 대표가 경기도 의정부 자택 아파트 앞 테라스 평상에 앉아 명상하고 있다. 그는 "명상은 밖으로 향한 시선을 안으로 돌리는 스위치"라며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남강호 기자

“뇌는 수다쟁이입니다. 생각은 계속 다른 생각으로 꼬리를 물지요? ‘생각을 하지 말자’고 하면 그 생각까지 더해지고요.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도 꿈을 꾸면서 생각 아닌 생각을 이어갑니다. 그러면 뇌는 언제 쉴까요? 역설적으로 집중할 때 쉽니다. 명상은 뇌를 쉬게 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입니다.”

지난 16일 오후 7시 서울 청계천변 한 빌딩의 ‘마인드랩’ 강의실. ‘코어를 키우는 퇴근길 반려명상’ 강좌에서 성소은(55) 강사는 참가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강좌는 운동을 통해 코어근육을 키우듯 직장인들이 일상에서 명상을 통해 마음의 근육을 키우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일상에 밀착한 인문학적 명상수행 저서를 펴내고 안내하는 성 작가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고교 졸업 후 문교부 공무원, 주한 일본대사관 직원으로 일한 그는 일본 릿교대 법학과와 도쿄대 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했다. 학부와 대학원을 모두 장학금으로 다닌 그는 대학원 졸업 후 국제기구에서 근무했다. 종교적 이력은 더욱 색다르다. 어린 시절 순복음교회 신자였던 그는 성공회 신자(세례명 클라라)를 거쳐 2000년대 초반 출가해 ‘광우 스님’이 됐다가 3년 수행 후 환속했다. ‘선방에서 만난 하나님’ ‘경전 7첩 반상’ ‘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오강남 공저) 등의 책을 냈고 최근 ‘반려명상’(삼인)을 출간했다. ‘반려명상’은 3년간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PaTI)에서 MZ세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명상 수업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지난주 성 작가를 만나 젊은이들과 함께하는 명상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경력이 다양합니다. 여러 종교를 방랑한 끝에 명상에 정착한 셈인데요, 환속 후 명상 전파에 나섰나요?

“아닙니다. 저를 명상수행으로 이끌었던 내면의 과제가 풀려서 자연스럽게 되돌아온 것입니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것과 같습니다. 환속 당시에는 명상 자체보다는 기독교와 불교를 모두 체험한 제 경험을 바탕으로 종교 간 벽을 허무는 일에 일조하고자 했습니다. 명상은 ‘그냥 하면 되는 것’이라 여겼으니까요. 그렇게 시작된 유유(遊遊)녹명종교나눔터가 ‘종교너머 아하!’를 거쳐 현재의 ‘경계너머 아하!’로 이어졌습니다. 10여 년 동안 ‘오강남의 열린종교아카데미’를 비롯해 다양한 강의 프로그램과 국내외 이웃 종교 탐방, 여러 경전을 소리 내어 읽고 명상하는 일요경전명상 등을 해왔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직접 경험하고 능동적으로 조율해나가는 명상수행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명상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뭐라고 하시겠어요?

“삶을 재편하는 것입니다. 잘못 꿰어진 단추를 풀고 첫 단추부터 다시 꿰는 작업입니다. 명상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이 단추를 다 풀고 다시 꿸 의지를 내고 용기 내 실천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지요. 삶의 관성에 저항해야 하니 한동안은 상당한 힘이 필요한 게 사실이에요. 그래서 명상에 닦을 수(修), 행할 행(行)이 붙어 ‘명상수행’이라고 하지요.”

-청년들과 명상 수업을 해보시니 어떻던가요?

“우리 모두가 안고 있는 문제의 바탕에는 자기에 대한 무지가 있어요. 자기 인생을 살면서 정작 자기가 뭘 좋아하고, 뭘 잘하는지, 뭘 못하는지 몰라요. 바깥일, 남 일에는 관심도 많고 잘 알면서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놀랄 만큼 알지 못해요. 학생들을 보면 수북한 과제와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서 무방비로 심리적 중압감에 노출돼 있는 경우가 많고, 한편으로는 인스타그램에 범람하는 타인의 욕망에 전염된 경우도 많아요. 안팎의 부조화는 번 아웃과 멘붕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이런 문제들은 모두 가지일 뿐이에요. 뿌리를 봐야해요.”

-어떤 점을 강조했나요?

“저는 학생들에게 ‘먼저 자신과 사귀라, 자신과 연애를 해보라’고 권해요. 자기를 알고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믿음을 키우는 것이 삶의 뿌리를 튼튼하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사랑하는 남친, 여친이 생기면 그 사람이 계속 궁금하잖아요. 자꾸 보고 싶고, 수시로 ‘뭐 해?’ ‘밥 먹었어?’ ‘이 음악 어때?’ 하면서 카톡도 보내잖아요. 메시지 확인 안 하면 삐치기도 하고요. 그런데 우리 스스로에 대해서는 어떤가요? 우리의 안테나는 24시간 밖으로만 향해 있어요. 자기는 지금 사막의 모래처럼 바삭바삭 말라가는데 방치해둔 채 말이에요. 아침저녁으로 자기 안부를 묻고, 자기를 궁금해해야 해요. 자기 내면의 안전 보장이 우선이지요. 명상은 밖에서 안으로, 남에게서 자신으로 시선을 돌리는 스위치입니다.”

-책에서 ‘3분’을 강조하셨던데요. 노트북 부팅 시간, 전철이나 버스 기다리는 시간, 신호등에 멈췄을 때 등 짧은 시간에 ‘호흡에게 문자를 보내보자’고요.

“일상생활 틈틈이 자기를 의식하자는 것이지요. 풍경을 보듯이 자기를 관찰하고 객관화해보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관찰하면 ‘아, 내 말이 이렇게 나왔네?’ ‘난 이런 습관이 있었네?’ 하고 알아차리게 됩니다. 자기 생각, 안 좋은 습관, 힘든 감정을 물끄러미 지켜보면 거기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그럼 방황하는 마음이 집으로 돌아옵니다. 내 몸이 집이지요. 여기가 집인데, 마음이 입주(入住)하지 않고 늘 바깥을 떠도니 홈리스 상태인 것이죠. 불안할 수밖에 없지 않나요? 그래서 마음을 늘 곁에 두자는 뜻에서 ‘반려명상’이라고 이름을 붙였어요.”

-’나다운 욕망’이란 표현도 쓰셨어요.

“흔히 욕망은 나쁜 것으로 생각하지요. 저는 욕망이야말로 불안을 이길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도구라고 생각해요. 뒤끝이 허탈한 쾌락을 좇고 남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고양시키고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욕망을 말하는 거죠. 똑같은 사람이 없듯이 욕망도 각자 달라요. 그런데 너도나도 똑같은 욕망을 추구하는 게 불행이지요. 왜 모두 서울대를 가려고 하나요? 그럴 수도, 그럴 필요도 없어요. 나에게 특화된 ‘어떤 것’을 찾아야 해요. 내 안에서 부모나 사회가 교묘하게 심어둔 욕망을 빼내고 고통에 가려진 나만의 감각에 주목하고, 내 관심사를 추적해 가야 해요. 그러면 ‘나다운 욕망’이 드러나지요.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고, 외면해 왔던 고유성을 찾는 데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합니다. 나다운 삶의 궤도를 찾아야 남과 비교하거나 경쟁하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어요.”

-강의를 들은 학생들이 명상에 대해 ‘흐트러져 있던 문제들이 한눈에 보이게 차곡차곡 정리되는 느낌’ ‘휘몰아치는 감정과 생각을 내 앞에 앉혀놓고 대면하는 작업’ 등으로 정리한 점이 인상적이더군요.

“저도 깜짝 놀랐어요. 학생들이 이렇게 힘들게 사는구나, 싶어서요. 열등감, 부모와의 관계 등에서 어려움을 많이 겪더군요. 불면증도요. 정말 놀란 점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수업을 통해서는 자신들이 얼마나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를 만나고, 경험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게 해주는 것이 제게는 큰 과제였어요. 집중은 단순한 일이에요. 그냥 과거와 미래가 없으면 되는 거예요. 순간밖에 살지 못하면서 영원을 꿈꾸는 인간의 모순이 고통을 불러일으키지만 우직하게 ‘순간을 사는 연습’을 지속해 나가다 보면 그 속에서 영원을 경험하게 됩니다.”

-뇌를 쉬게 하는 방법은 집중이고, 집중은 명상을 통해 가능하다고 하셨는데요.

“맞아요. 뇌는 멀티태스킹에 적합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끊임없이 멀티를 해야 된다고 하잖아요. 그게 일을 잘하는 거라고. 한순간에 하나씩만 하는 것은 연습이 필요해요. 그 강력한 도구가 명상이고요. 그래서 모든 게 명상이 되는 거죠. 글쓰기 명상, 운전 명상, 걷기 명상, 구름 명상, 아이스크림 명상, 뭐든 다 가능합니다.”

-젊을 때부터 명상을 하는 게 좋은가요?

“그렇지요. 지금 토익 900점을 맞는 것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어요. 명상 습관을 들이는 것이 더 큰 효능감으로 되돌아올 거예요. 명상으로 훈련이 되면 쓸데없는 데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고, 불필요한 걱정을 하지 않고, 불필요한 불안을 겪지 않고 오롯이 내가 원하는 일에 집중하고 좌고우면하지 않고 휩쓸리지 않게 되니까요. 중년이 되면 누구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잖아요? 굳이 그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젊을 때부터 스스로를 살피는 훈련을 한다면 일찌감치 좋은 삶을 살 수 있잖아요. 첫 단추를 잘 꿰는 것은 빠를수록 좋으니까요.”

[성소은 작가의 ‘반려명상’ 중에서]

”명상은 눈[雪]과 같다. 소리 없이 세상을 바꾸는 눈처럼 매일의 명상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수행자의 삶이 하얗게 달라진다.“

”평상시 호흡 습관을 아는 것이 호흡 명상의 시작이다. 지금 알람을 맞춰놓고 1분간 몇 번 호흡하는지 세어보자. 스물일곱 번일 수도 있고, 열여덟 번일 수도 있다. 어떤 이는 열 번 이하일 수도 있다. 오늘 알게 된 호흡 수(數)를 메모해두고 기억하자.“

”호흡을 바라보면 마음을 바라보는 힘이 자라난다. 자동화된 내 생각, 내 감정, 마음의 습관을 알아차리게 된다.“

”좌선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먼저 걷기 명상으로 나를 조율해보자. 제주 올레길도 좋지만 일상에서도 ‘나만의 올레’ 코스를 만들어 볼 수 있다. 오직 ‘걷고 있는 내 몸’과 ‘걷는 지금’에 마음을 모은다.“

”내가 ‘저절로’ 하는 일은 무얼까? 뇌를 들여다보기 전에 우선 ‘나의 습관’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특히 바꿔보고 싶은 습관이 있다면 글로 써봐도 좋다. ‘휴대폰 중독’ ‘미리 걱정하기’ ‘남과 비교하기’ 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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