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기시다 “北 비핵화”, 리창 “역내 안정”… 공동선언 ‘안보 이견’

이상헌 기자 2024. 5. 27. 19:5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서울 청와대 영빈관에서 한·중·일 정상회의를 앞두고 리창 중국 총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자유롭고 평화로운 통일 한반도를 실현하는 목표 아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충실히 이행하면서 북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윤석열 대통령)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안정이 3국 공동의 이익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관련 측은 자제를 유지하고, 사태가 더 악화하고 복잡해지는 것을 예방해야 한다.” (리창 중국 총리)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9차 한중일 정상회의 이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비핵화 문제를 두고 한일과 중국이 엇갈렸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쓰며 북핵 문제 해결을 강조했다. 반면 리 총리는 북한을 명시하지 않고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도 쓰지 않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리 총리의 “관련 측” 발언을 두고 “남북을 모두 담는 표현”이라고 했다. 3국 정상이 4년 5개월 만에 한중일 정상회의 회담 테이블에 마주 앉아 상호 협력 제도화와 경제 사회 문화 협력에 한 목소리를 냈지만 북한 비핵화 등 핵심 안보 이슈에 대해서는 접점을 찾지 못한 것이다. 미중 갈등과 ‘한미일 대 북-중-러’ 신냉전 구도 속에 중국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협력’ 등 이전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합의에 도달했던 문구들의 공동선언문 포함에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 “中 반대로 ‘3국의 한반도 비핵화 노력’ 문구 빠져”

3국은 이날 발표한 제9차 한중일 3국 정상회의 공동선언에서 “우리는 역내 평화와 안정, 한반도 비핵화, 납치자 문제에 대한 입장을 각각 재강조했다”며 “우리는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위한 긍정적인 노력을 지속하기로 한다”고 밝혔다. 한국과 일본이 각각 한반도 비핵화와 납북자 문제를 더 강조하면서 함께 목소리를 냈고, 반면 중국은 비핵화 명시를 거부하고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더 중점적으로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중일 3국이 ‘한반도 비핵화’를 약속·지지한다는 문구는 앞서 8차례 정상회의 공동선언 가운데 7차례 포함됐지만 이번엔 포함되지 않았다. 대신 한중일 3국은 정상회의 공동선언에서 3국이 각자 입장을 재강조하는 표현으로 대체했다. 직전 한중일 정상회의가 열린 2019년 3국은 ‘향후 10년 3국 협력 비전’에는 “우리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협력” 등이 명시됐다. 2017년 7차 한중일 정상회의 공동선언에도 “우리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한다” “유엔 안보리 관련 결의에 따라 협력” 표현이 포함됐다.

정상회의에 앞서 한일은 공동선언에 한반도 비핵화 문구를 전례대로 포함시키는 방안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막판까지 중국에 이를 강하게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가 3국의 공통 목표”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위해 대화와 외교, 유엔 안보리 결의 이행이 중요하다”는 취지의 문구가 공동선언 초안에 반영됐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상회의 직전 중국의 반대로 이 문구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반도 비핵화 문구에 대한 중국의 입장 변화는 미중 전략 경쟁과 신냉전 구도가 심화되는 현 상황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이 헌법에 핵보유를 명시한 뒤 핵개발을 가속화하고 노골적으로 비핵화와 관련한 대화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미중 갈등 수위는 더욱 대립함에 따라 그간 중국도 호응했던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에 선뜻 동의하지는 못한 셈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미중 전략 경쟁이 없었던 과거와는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며 “중국 입장에서는 더 북한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중국이 2023년 이후 한반도 비핵화라는 말을 쓰지 않을 정도로 북한 문제와 관련해 이견에 있다”며 “최근 지정학적 상황을 고려할 때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 중국으로부터 과거와 같은 합의를 끌어내긴 어렵다”고 했다. 그는 “(한국 입장으로 포함됐지만) 중국이 지난해부터 대외적으로 쓰지 않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말을 공동성명에 포함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했다.

납북자 문제에 대한 표현이 후퇴한 것도 중국이 북한을 의식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2019년 제8차 한중일 정상회의 때는 “납치 문제가 대화를 통해 가능한 한 조속히 해결되기를 희망한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2018년 제7차 회의 공동선언에도 같은 문구가 포함됐다.

● 리창 “핵심 이익-중대 관심사 배려해야”

중국은 미중 경쟁이 심화된 2022년 이후에는 “미국이 대중국 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어떠한 공조에도 협력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유엔 안보리의 북한 관련 제재 논의를 거부해왔다.

윤 대통령은 리 총리와의 이날 별도 환담에서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중국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글로벌 핵비확산 체제 유지를 위해 건설적 역할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리 총리는 “중국이 그동안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노력해 왔으며 정세 안정도 중요하다고 본다”며 “한국 측의 우려를 잘 알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소통해 나가자”고 했다.

한일은 대만 문제와 관련해서도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 반대한다”는 문구를 공동선언에 포함시키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중국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결국 포함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 총리는 공동 기자회견에서 “3국은 예민한 문제와 갈등 이견을 타당하게 처리하고, 서로의 핵심 이익과 중대 관심사를 배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만 문제에 대한 중국 입장 존중을 요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상헌 기자 dapaper@donga.com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