밟히지 않고 돌아온 ‘쇠맛’ 에스파...”독특한 우리 세계관, 단점보다 장점 많아”

윤수정 기자 2024. 5. 27.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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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에스파가 27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 마스터카드홀에서 열린 첫 정규 앨범 ‘Armageddon’(아마겟돈) 발매 기념 쇼케이스에서 열정적인 무대를 펼치고 있다./뉴스1

“에스파 밟으실 수수수-수퍼노바(Supernova)!”

올 상반기, 최고의 신곡 홍보 문구를 꼽는다면 단연 위 문장일 것이다. 지난 13일 SM 소속 4인조 걸그룹 에스파(카리나, 윈터, 닝닝, 지젤)의 신곡 ‘수퍼노바’ 공개 직후 팬들이 가사를 활용해 퍼뜨렸고, 곧 인기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됐다. 앞서 걸그룹 뉴진스의 프로듀서인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공개한 메신저 대화 때문.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2021년 민 대표에게 “에스파 밟으실 수 있죠?”라고 묻는 내용이었다. 두 사람의 싸움에 애꿎은 에스파가 끌려 들어간 상황을 팬들이 유쾌하게 소비한 것이다. “노래가 좋다”는 입소문까지 타면서 수퍼노바는 멜론, 벅스, 지니, 플로, 바이브 등 국내 주요 음원 차트 1위를 석권했고, 해외에서도 큰 관심이 쏟아졌다. 지난 19일 미국 항공우주국 나사(NASA)의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이 ‘초신성’ 개념 설명글에 ‘su-su-su supernova’를 차용했을 정도다.

27일 직접 입을 연 에스파 답변은 더욱 유쾌했다. 데뷔 4년 만의 첫 정규음반 ‘아마겟돈’ 발매 일에 연 기자간담회 자리. 멤버 윈터는 “깊이 생각하기보단 ‘첫 정규가 잘 되려나 보다’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카리나는 “우리도 주변에서 많이 이야기 해주셔서 관련 이슈를 잘 알고 있었지만, 정규 준비에만 매진하려 했다”며 “얼마 전 (뉴진스와) 같은 음악방송 대기실에서 만났고, 서로 너무 잘 보고 있다며 하트도 주고 받았다. 걱정하시는 그런 부분 없이 같은 동료로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음악은 객관적인 것이잖아요. 다른 이들과 경쟁하기 보단 항상 우리의 이전 모습과 경쟁하면서 발전하는 것 같아요. 아티스트마다 각자의 색과 매력이 있고, 비교하거나 대체할 수 없는 것 같아요.(닝닝)”.

◇결국 논란에 밟히지 않은 원동력은...‘에스파표 쇠맛’ 음악

걸그룹 에스파. 왼쪽부터 윈터, 카리나, 닝닝, 지젤/SM 엔터테인먼트

이들의 노래가 화제가 된 건 자극적인 폭로전 여파 때문만이 아니다. 신곡 발표 후 평단과 가요 팬들은 “에스파표 ‘쇠맛’이 돌아왔다”는 호평을 쏟아냈다. 여기서 말하는 쇠맛은 크게 두 가지 뜻. 첫째는 혀끝에 비릿하게 닿는 금속 느낌처럼 강렬하고 쨍한 노래 스타일, 둘째는 금속을 많이 쓴 미래 지향적인 사이버 전사의 이미지다. 2020년 에스파가 데뷔 초부터 다른 그룹과 차별점을 꾀하며 가져 온 호평이다. 최근 화제가 된 방시혁 의장과 민희진 대표의 대화 시점도 여전사 이미지를 대폭 살린 활동곡 ‘넥스트 레벨’로 에스파가 인기몰이를 할 때. ‘넥스트 레벨’의 영문 철자 ‘L’자를 본떠 만든 이 곡의 독특한 안무는 이듬해 제20대 대통령 선거 개표 방송(SBS)에서 패러디 될 정도로 대중적인 인지도를 누렸다.

이번 정규 1집 타이틀곡으로 공개된 ‘수퍼노바’도 그런 호평을 구석구석 연상시킨다. 제목처럼 ‘초신성’ 폭발 순간을 음악에 옮겼다. 시작부터 ‘퉁~’, 때려 박는 베이스 드럼의 묵직한 비트에 잠시 정신을 뺏기면 곧 다층의 전자음들이 폭풍처럼 휘몰아친다. ‘질문은 계속돼 아-오-에이!’ ‘아~ 바-디 뱅!’ ‘수수수 수퍼노바’ 등 멤버들이 연신 외치는 뜻 모를 가사도 신비감을 더 한다. 윈터는 “저희 멤버들 보컬 소리가 전부 쨍 한 편이다. 그래서 쇠 맛이라 칭해주시는 것 같다”고 했다. 지젤은 “쇠일러문(쇠+세일러문)이란 팬들의 표현이 기억에 제일 남는다”고 했다.

멤버들에게 괴력(카리나), 공중 비행(윈터), 시간 조작(지젤), 화염(닝닝) 등 초능력을 부여하고, 입만 어설프게 움직이는 AI딥페이크 영상을 패러디 한 수퍼노바 뮤직비디오도 ‘유쾌한 B급’이라며 화제가 됐다. 카리나는 “입만 움직이는 뮤직비디오 완성본을 보고 이게 맞나 사실 고민했다. 하지만 반응이 좋아 다행”이라며 웃었다.

‘위기를 딛고 돌아온 쇠맛’이란 점도 반가움을 더한다. 에스파는 데뷔 초 가상인간 ‘아이(ae)’와 조력자 ‘나이비스(naevis)’의 도움을 받아 ‘광야’라는 가상 세계에서 악당 ‘블랙 맘바’에 맞선다는 설정을 갖고 있었다. ‘아이(ae)-카리나’ 등 멤버 각각의 특성이 반영된 ‘아이 에스파’까지 총 8명이 활동하는 그룹으로, 이수만 전 SM 총괄프로듀서가 직접 기획해 화제가 됐다. 하지만 2023년 SM을 둘러싼 카카오엔터와 하이브 간의 인수 경쟁전에서 SM 경영진과 갈등을 빚은 이 전 총괄프로듀서가 회사를 떠났고, ‘더 이상 광야와 같은 독특하고 강렬한 컨셉은 사라질 것’이란 예상이 이어졌다. 최근에는 리더인 카리나가 열애와 결별을 겪으며 팬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27일 멤버 윈터는 “많은 분이 광야를 떠나서 ‘아이 에스파’와 헤어진 게 아니냐 하시는데 이번 정규 1집을 통해 ‘다중 우주’로 세계관을 확장하고,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양한 우주 차원이 존재하는 ‘다중우주’ 개념을 통해 a차원에서 가수를 하고 있는 에스파 멤버가 b차원에선 외계인에 맞서 싸우는 여전사가 될 수도 있단 뜻이다. 카리나는 “데뷔 초반에는 (광야) 세계관을 표현하는데 뻔뻔함이 필요했기에 부끄럽기도 했다”면서도 “이제 4년 차가 되니 뻔뻔해졌다. (지나고 보니) 세계관에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다”고 했다.

이날 오후 6시 첫 공개된 신곡 ‘아마겟돈’도 다중우주 세계관을 한껏 펼친 곡. 멤버들에 따르면 “’깡통맛’ 수퍼노바보다 퍽퍽할 순 있지만 짙은 중독성을 가진 ‘흙맛’의 곡”으로 “나는 오직 나만이 정의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묵직한 힙합 리듬에 거친 전자음을 조합한 곡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19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을 필두로 펼쳐졌던 국내 올드스쿨 힙합 전성기를 연상케 한다. 뮤직비디오는 비슷한 시기 유행한 ‘세기말 패션’ 감성을 잔뜩 더했다. 현실 속 에스파 멤버들은 징 박힌 목걸이를 차고 옷 곳곳에 체인을 주렁주렁 단 힙합 소녀들로, 다중우주에 사는 멤버들은 번쩍거리는 은색 가죽 의상을 입고, 은색 파우더를 얼굴 곳곳에 칠한 여전사로 변신한다. 1999년 이정현의 ‘바꿔’를 시작으로 일어난 테크노 여전사 열풍을 기억하는 세대들에게도 익숙한 차림이다.

‘다중우주’ ‘올드스쿨’ ‘세기말’은 최근 국내 뿐 아니라 해외 10대~20대 사이에서도 인기 유행 코드다. 에스파는 오는 6월 서울을 시작으로 아시아 및 호주 등 총 14개 도시에서 여는 월드 투어에 돌입한다. 멤버들은 “이번 투어 때 안 가본 나라들을 가게 되어 기대 중”이라며 “데뷔 초 코첼라에 섰는데, 한 번 더 열심히 준비해 서 보고 싶다”고 했다.

걸그룹 에스파가 27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 마스터카드홀에서 열린 첫 정규 앨범 ‘Armageddon’(아마겟돈) 발매 기념 쇼케이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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