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성폭력, 충남도 배상책임의 의미 [세상읽기]

한겨레 2024. 5. 2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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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18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프라자에서 열린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상고심 유죄 확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카드섹션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김혜정 |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2024년 5월24일 금요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60호. 법정을 가득 메운 활동가, 재판방청연대 시민들, 기자들은 숨죽여 법대를 향해 귀 기울였다. 성폭력 피해자가 2020년 안희정(피고1)과 충남도청(피고2)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 1심 선고가 시작되었다. 재판부는 네가지 쟁점을 언급했다. “관련 형사사건과 증거 등에 의해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추행 등의 행위가 인정된다. 원고가 주장하는 2차 가해 중 피고1의 당시 배우자가 피해자 진단서를 올리고 비방한 행위에 대한 피고1의 방조 책임이 인정된다. 피고2 충청남도는 직무집행 관련성이 인정되어 국가배상법에 따른 공동배상 책임이 있다. 피해자가 제출한 신체감정에 의하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등이 이 사건으로 인해 발생되었음을 인정한다.” 민사소송에 제기된 네가지 쟁점 모두를 재판부가 인정했다.

두가지 ‘책임’에 주목한다. 첫번째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의 책임이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시민들이 뽑은 선출직 공무원이었고, 그 측근과 배우자 등은 대권에 도전하는 정치인 안희정을 시민들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를 말하자 조직과 자원을 동원해 피해자를 비방하고 피해자 조력인을 배제했다. 거짓된 정보를 유포하고 ‘합의된 성관계’라는 왜곡된 프레임을 널리 퍼뜨려, 알지 못하는 사람이나 유튜브 계정에 의해서까지 피해자가 공격받게 했다. 이번 선고는 안희정을 위해 행사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는 안희정이 책임져야 한다고 명시했다.

두번째는 충남도청의 책임이다. 이는 그 의미가 특히 크다. 국가배상법 제2조1항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공무원 또는 공무를 위탁받은 사인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혔을 때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번 선고는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력-불법행위에 대해 도청의 업무관련성을 인정했다. 모든 가해가 업무 공간에서 발생했는데, 성폭력 가해가 가능했던 업무 환경을 조성하고 방치한 도청의 연대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4년이나 걸렸는데, 어떠셨나요?” 선고 후 서울중앙지법 동관 1층에서 기자들, 활동가, 원고대리인 변호사가 모여 질의응답을 하던 중 나온 질문이다. 4년을 기다렸을 원고인 성폭력 피해자, 그와 함께한 원고대리인, 지원단체, 재판방청연대가 떠올랐지만, 그 고통의 시간이 법정에 모인 이들만의 것은 아니었음을 이내 깨닫는다. 이 사건이 ‘피해자 한명 대 가해자 한명’의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임을 명확히 하는데, 수많은 ‘연루된 시민들’의 ‘정책적 책임감’이 뒷받침됐다. 안희정 팬클럽 대표이던 한 분은 그의 성폭력 사실이 알려지자 제대로 된 해결을 촉구하며 지금까지 모니터링 활동을 하고 있다. 2018년 이후 선거 때마다 성폭력 가해자와 2차 가해자를 배제하라고 정당에 요구하는 이들도 있다. 피해자와 지원단체의 숙고 요청에 따라 피해자의 얼굴을 직접 게재하던 보도를 줄이고 피해자 사진이나 영상 재사용을 멈춘 언론이 있다. 구조적 해결을 위해 기꺼이 책임을 나눠 진 시민들이다.

이번 민사소송 1심 재판 내내 안희정 쪽은 사과와 반성은커녕 성폭력 사실마저 인정하지 않았다. 앞선 형사재판에서 ‘업무상 위력’에 의한 범죄임이 확정됐고, 나아가 2차 피해와 충남도청의 책임까지 인정되는 상황이었지만 끝까지 ‘합의한 성관계’라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형사재판에서 언제 어떻게 합의했다는 것인지 상세하게 질문했지만 제대로 답변조차 못한, 근거 없는 주장이었음에도 말이다. 피해자의 정신적 피해에 대한 진료기록도, 성폭력으로 인한 질환 발병도 믿을 수 없다며 다른 이유 때문인지 정신·신체감정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해 그 결과를 기다리느라 재판이 길어지기도 했다. 2차 가해는 안희정 전 지사로서는 전혀 관여하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충남도청은 이 사건이 직장 내 위력 성폭력이 아닌 사인 간의 관계일 뿐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하지만 재판부의 결론은 전혀 달랐다.

피해자는 재판 뒤 “여전히 갈 길이 먼 지금의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이다. 아직도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 안희정과 충남도청 그리고 2차 가해자들과 끝까지 싸워 의미 있는 한 걸음을 내딛겠다”고 했다. 앞으로 그의 여정 역시 지금까지처럼 외롭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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