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부정하는 일본처럼 ‘성병관리소’ 철거하자는 것인가 [왜냐면]

한겨레 2024. 5. 27.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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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16일치 '왜냐면'에 경기 동두천시 성병관리소 철거를 반대하는 글이 게재된 데 이어 이 글의 논거 부족을 주장하는 반론이 23일치에 게재되었다.

철거 반대 글에서 논거 중 하나로 '국가유산기본법' 규정을 들었는데, 반론은 철거 반대 주장과 무관한 규정의 일부만을 발췌하여 "성병관리소가 동두천시 통합과 자긍심의 원천이기 때문에" 철거를 반대한다고 규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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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동두천시 상봉암동 소요산 자락에 있는 성병관리소. 이준희 기자

최진인 | 사무노동자

지난 5월16일치 ‘왜냐면’에 경기 동두천시 성병관리소 철거를 반대하는 글이 게재된 데 이어 이 글의 논거 부족을 주장하는 반론이 23일치에 게재되었다.

어떤 주장에 대해 반론에 나설 때 지켜야 할 원칙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것은 ‘주장한 바에 대해’ 반박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반론은 그 원칙부터 어기고 시작했다. 철거 반대 글에서 논거 중 하나로 ‘국가유산기본법’ 규정을 들었는데, 반론은 철거 반대 주장과 무관한 규정의 일부만을 발췌하여 “성병관리소가 동두천시 통합과 자긍심의 원천이기 때문에” 철거를 반대한다고 규정한 것이다.

그러나 철거 반대 글에서 실제 논거로 사용한 부분은 ‘지방자치단체는 국가지정유산 또는 국가등록유산으로 지정·등록되지 아니한 국가유산 중 중요한 것을 시·도지정유산 또는 시·도등록유산 등으로 지정·등록하여 보호할 수 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각종 개발계획·개발사업이 국가유산 및 그 역사문화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진단하고,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여야 한다’임을 문맥상 오해할 여지가 없다. 애초에 철거 반대 글에는 자긍심과 관련된 주장이 일언반구도 없으니 이는 고의적인 단장취의(문장의 일부분을 끊어서 그 뜻을 취하는 것)에 불과하다 하겠다.

또한 반론에서 드러나는 역사관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성병관리소가 “참상만 그려지니 교육적 가치가 없고, 이를 기록할 이유는 없다”고 주장했는데, 어찌 보면 상대방 주장의 왜곡보다 이쪽이 더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긍정적인 역사만 기록하고 가르치며 부정적인 역사는 없애버리자는 말인데, 이것이 곧 역사 왜곡이며 지금도 옆 나라 일본에서 절찬리에 흥행 중인 수정주의 역사관이다. 만약 이러한 관점에 부화뇌동하여 성병관리소 철거를 주장하게 된다면 우리에게 일본의 과거사 부정과 왜곡을 비판할 자격이 있을까? 그들은 ‘교육적 가치’가 있는 역사만 가르칠 뿐인데 말이다. 교과서에서 ‘참상만 그려지는’ 고구려 미천왕 이전 한사군 존속기, 고려 고종 이후 원 지배기, 조선 인조 이후 청 간섭기부터 1987년까지의 내용은 모두 삭제해야 하지 않을까? 애초에 ‘교육적 가치’를 긍정적인 역사에서만 찾겠다는 것이 단견이다. 반면교사라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오히려 국가 폭력의 증거물을 보존하고 이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 부정적인 역사를 극복했다는 증거가 되지 않을까.

성병관리소는 이제 동두천 한 곳에만 실물이 남아있다고 한다. 또한 조국과 민족을 운운하던 군부독재 정권이 실제로는 시민을 외화벌이 도구 취급했음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적이다. 즉 희소하며 중요하다. 따라서 철거 반대 글이 인용한 국가유산기본법 규정에 비추어 보면 마땅히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각종 개발계획·개발사업이 국가유산 및 그 역사문화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진단하고,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이를 고작 “시의 경제적 여건” 따위를 위해 없애자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역사적 가치는 입지 조건 및 대지 면적이라는 요인보다 못하다는 말에 다름없다.

반론은 끝 부분에서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몫”이라고 했지만, 지금 상황에 더 어울리는 언명은 역사학자 에드워드 핼릿 카의 “한 사회가 어떤 역사를 쓰느냐, 어떤 역사를 쓰지 않느냐 하는 것보다 더 그 사회의 성격을 뜻깊게 암시하는 것은 없다”일 것이다. 외면하고 싶은 역사를 일본처럼 지울 것인가, 독일처럼 남겨둘 것인가? 그 선택권은 우리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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