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의 ‘쿠팡 PB’ 규제, 도미노 될까…‘시대착오’ 비판 나오는 이유

조유빈 기자 2024. 5. 27. 15:1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9일 공정위 전원회의서 제재 여부‧수위 결정…업계 미칠 영향에 촉각
“PB 상품 확대하라”는 산업부…진열 방식 ‘규제’ 나선 공정위

(시사저널=조유빈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쿠팡의 '자사브랜드(PB) 상품 밀어주기' 의혹에 대한 제재 여부를 결정하는 첫 전원회의를 29일 열 예정이다. 쿠팡이 PB 상품을 노출하는 방식이 '부당 고객 유인행위'에 해당한다는 관점이다. 공정위의 시선은 쿠팡을 향하고 있지만, 이 결정이 다른 PB상품의 노출·진열 관행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유통가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쿠팡의 '자사브랜드 상품 밀어주기' 의혹에 대한 제재 여부를 결정하는 첫 전원회의를 29일 열 예정이다. ⓒ 시사저널 고성준

쿠팡 "'상품 진열'은 유통업 본질…전례 없는 규제"

최근 공정위는 쿠팡의 '부당 소비자 유인 행위'에 대한 제재 의견을 담은 심사 보고서를 발송했다. 앞서 참여연대는 2022년 쿠팡이 임직원 후기를 통해 PB 상품을 검색 상단에 노출하는 행위가 부당하다며 공정위에 신고했다. PB 상품을 자의적으로 상단에 노출시켜 소비자들의 구매를 유도했다는 것이다.

조사를 진행한 공정위는 이 같은 행위가 PB 상품을 부당하게 밀어주는 자사우대 행위라고 판단하고, 오는 29일과 내달 5일 전원회의를 열어 제재 여부와 수위를 정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쿠팡은 공정위가 '상품 진열'이라는 유통업의 본질을 규제하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쿠팡은 "공정위는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보여주는 것을 '알고리즘 조작'이라고 문제 삼고 있다"며 "유통업체가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원하는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은 본질로, 온·오프라인 모든 유통업체가 동일하게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쿠팡은 마스크와 생수 등 PB 상품을 언급하며 "쿠팡은 PB 상품으로 인해 중소기업의 제품 판매를 지원하고, 고객들에게 할인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전원회의를 통해 이 같은 사실관계를 밝히고, 적극 소명하겠다는 입장이다.

2022년 3월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쿠팡 PB 제품 리뷰 조작 공정위 신고 기자회견' ⓒ연합뉴스

업계 "PB 상품, 물가 안정에 기여…규제 아닌 지원 필요"

PB 상품의 소비자가는 다른 유사 상품에 비해 낮은 편이다. 마케팅 등 중간 유통 비용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가격 경쟁력이 높기 때문에 고물가 상황에서 소비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물가 억제 효과를 내기도 한다. 이 때문에 PB 상품에 대한 규제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최근 이준석 개혁신당 당선인은 공정위의 쿠팡 PB 상품 진열 규제를 언급하며 "물가 인상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많은 상황 속에서, 물가 억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직구'나 PB를 건드리는 것을 보면 정말 정책의 방향성을 누가 설정하는지 궁금해지는 지점"이라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 정책의 일관성 없는 방향성을 꼬집는다. 최근 산업부는 장바구니 물가 안정을 위해 유통업계의 협조를 당부하면서 PB 상품 등 대체 상품 발굴을 통해 소비자 선택권을 확대해 달라고 주문했다. 산업부가 PB 상품 확대를 이야기하는 상황에서, 공정위가 이커머스 플랫폼의 PB 상품 진열에 대한 규제에 나서는 것은 상충되며,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다.

이커머스 업계는 PB 상품의 물가 인상 억제 효과가 분명하다는 입장이다. 온라인쇼핑협회는 지난해 7월 열린 '유통산업주간 컨퍼런스'를 통해 "PB 상품은 고물가 시대에 소비자 부담을 덜어주는 핵심 원동력이며, 물가 안정에 기여하는 만큼 정부는 규제보다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의견을 모은 바 있다.

'역차별' 소지가 있다는 점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거론됐다. 오프라인 대형업체들이 자사의 PB 상품을 일명 '골든존'에 집중 배치하며 소비자 노출도를 높이고 있는 상황에서, 온라인 PB 상품 진열만 규제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당시 안승호 숭실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오프라인 대형마트도 자사 PB 상품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는데, 신산업인 온라인 기업에 대해 과도한 규제가 적용되는 것은 문제"라며 "미국에서도 (온라인 플랫폼 규제와) 유사한 법안이 발의됐다가 폐기 수순을 거쳤다"고 주장했다.

공정거래위원회 ⓒ연합뉴스

공정위 "모든 PB 상품 규제 아냐…불공정 행위 조사"

특히 해외 국가들이 PB 상품을 장려하면서 고물가에 대응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에서는 PB에 대한 규제가 가동되면서 산업 경쟁력이 위축되고, 관련 상품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PB 상품은 가공식품, 생필품 등 장바구니 물가와 직결되는 상품이 많다. 공정위 조사 결과에 따라 PB 상품을 판매하는 유통업체들이 상품 수를 축소하거나 판매를 줄인다면 소비자들이 부정적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신규·중소업체의 시장 진입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PB 상품 규제로 인해 물가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자, 공정위는 "PB 상품 개발·판매를 억제한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공정위는 24일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공정위 조사는 모든 PB 상품에 대한 일반적인 규제가 아니고, PB 상품의 개발·판매 등을 금지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소비자들이 저렴하고 품질이 우수한 상품을 합리적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소비자를 속이는 불공정한 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를 조사하는 것이란 설명이다.

김익성 한국유통학회 명예회장은 "PB 상품과 관련해서는 시장 자율조정을 원칙으로 하되, 소비자를 현혹하게 하는 기만행위 등이 있었다면 그에 따른 적합한 제재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짚었다. 또 "이커머스 플랫폼이 성장세를 보이면서 다양한 문제가 양산되는 만큼 공정하고 적합한 규제 가이드라인은 필요하다"면서도 "규제는 온‧오프라인 플랫폼 모두에게 공정히 적용해 '역차별' 등 마찰의 여지를 제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