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비즈] 쇠고기와 레드카펫 포기한 칸 영화제...기후위기 대응 나선 영화산업
레드카펫도 대폭 줄여 쓰레기 감축
제작사들 영화 제작 탄소발자국 고려
지난 14일부터 25일까지 열린 제77회 칸 영화제에서는 사상 최초로 쇠고기가 연회 음식상에 오르지 못했다. 칸 영화제 집행위원회는 올해 행사부터 공식 만찬과 칵테일 리셉션에 올리는 메뉴에서 쇠고기 사용을 금지했다. 주최 측은 언론에 밝힌 공식 입장에서 “쇠고기가 식품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매우 크다”며 결정 이유를 밝혔다. 주최 측은 대신 채식 메뉴를 대폭 늘렸다.
미국립보건원(NIH)에 따르면 쇠고기 100g이 식단에 오르는 과정까지 이산화탄소 15.5㎏이 배출된다. 이는 소형차 한 대가 78.7㎞를 달릴 때 배출되는 배출량에 해당하는 양이다. 같은 양의 닭과 오리 고기가 식단에 오르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양이 10분의 1에 머무는 것과 비교된다.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 농민들은 영화제 측의 이런 조치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주최 측의 이런 조치는 철강과 화학공업, 운송업의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덩치가 커진 영화 산업도 탄소 배출량 감축을 피해가기 어려워진 상황을 반영한다는분석이 나왔다.
◇쇠고기 메뉴 빼고 레드카펫 사용량 확 줄여
칸 영화제 집행위원회는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산업혁명 대비 1.5도 이내로 유지하려는 파리협정의 목표에 맞추고 감축을 주진하고 있다.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2019년 칸 영화제로 발생한 이산화탄소는 4만9000t으로 추산된다. 영화제 기간에 사용되는 전기와 물품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부터 행사에 참여하는 감독과 배우가 타고 온 항공기에서 배출되는 양이 포함된다. 지난해 행사와 관련된 전체 이산화탄소는 90%이상이 참가자들의 이동 과정에서 배출됐다. 영화제 측은 2030년까지 현재 배출량의 21%를 감축할 계획이다. 최종적으로는 43%를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영화제 측은 올해 행사에서는 행사용 공식 차량을 전기차로 정하고 가급적 참가자들이 차량 대신 걸어서 이동하도록 권유했다. 영화제의 상징인 레드카펫의 사용도 확 줄였다. 주최 측은 올해 행사에선 레드 카펫의 크기는 물론 교체 빈도를 줄여 지난해 사용된 카펫 양의 59%에 해당하는 1400㎏를 줄인 점도 눈에 띈다. 행사장 곳곳에 식음료대를 설치해 1회용 플라스틱 물병 사용을 줄이기도 했다.
영화 산업도 다른 산업처럼 최근 기후위기 문제에 봉착해 있다. 영화 제작사 단체인 ‘지속 가능한 프로덕션 연합(SPA)’에 따르면 영화 ‘오펜하이머’나 ‘바비’처럼 7000만달러 이상 투자된 영화 한 편을 제작할 때마다 이산화탄소가 약 3370t 배출된다. 이는 656가구에 1년 동안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양에 해당한다. 캐나다 컨설팅회사 ‘그린스파크그룹(Green Spark Group)’에 따르면 영화 산업에서 배출량이 가장 많은 분야는 조명이다. 세트와 메이크업에서도 원자재 소비가 많고 폐기물이 가장 많이 나온다.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아마존프라임과 같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도 사용자가 늘면서 막대한 양의 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세계 최대 영화 공급 플랫폼인 넷플릭스는 2021년 자신들이 154만t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주요 온라인 서비스들이 연간 3억t 이상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비디오 품질이 향상되면서 서버의 저장용량이 늘고 영화를 보기 위해 무선랜을 포함한 통신 장비 사용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 탄소 배출 줄이는 신 기술 투자
10년 새 탄소 배출 감축에 공감하는 제작자와 기업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늘었다. 미국 프로듀서조합(PGA) 산하 녹색위원회는 2010년 영화와 TV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 업계 주도로 녹색 제작 가이드를 만들었다. 영국에서도 영화 제작 업계와 환경단체가 손잡고 TV와 영화 각 분야의 배출량을 줄이고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가이드를 만들었다.
제작 현장에서도 탄소 배출량과 폐기물을 줄이려는 노력이 늘어나고 있다. 국내에서 ‘립세의 사계’라는 이름으로 개봉한 폴란드 애니메이션영화 ‘더 페전트(The Peasants)’는 목재 대신 종이판지로 현장 세트를 만들었다. 지난 2014년 제작된 할리우드 영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는 처음부터 제작 물품의 재사용과 재활용에 중점을 뒀다. 제작진은 매립지로 가는 폐기물의 52%를 줄이고 1회용 플라스틱 물병 19만3000개를 절약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재활용보다 제작 현장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운송과 전기에서 획기적인 전환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영화를 공급하는 전 세계 데이터 센터가 배출하는 양이 전체 배출량의 2%를 넘어섰다는 분석 결과도 있다. 이는 항공산업에 육박하는 배출량이다.
영화 업계는 조명을 전기를 덜 먹는 발광다이오드(LED)로 바꾸고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을 기반으로 하는 가상 프로덕션 스튜디오를 만드는 식으로 배출량 감축에 나서고 있다. 디즈니와 넷플릭스, RMI 같은 제작사들은 특히 제작 현장의 디젤 발전기를 대체할 청정 모바일 전력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 넷플릭스와 디즈니는 기후기술 회사인 서드데리버티브(3D)와 협력하고 있다. 3D는 제작 현장에서 매년 70만t 이상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디젤 발전기를 대체할 배터리 에너지 저장 시스템, 수소 동력 장치, 하이브리드 시스템같은 대안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영화 제작비 줄고 친환경 브랜드 인식
친환경 지침에 따라 제작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의 제작사인 컬럼비아 픽처스 더그 벨그래드(Doug Belgrad) 최고 경영자는 “지속 가능성에 중점을 둔 결과 40만달러 이상의 비용을 절약했다”고 밝혔다.
친환경 영화 제작 기술뿐 아니라 제도도 발전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영화의 크레딧에는 에코 라벨이 표시된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고 자원을 보존하는 방식으로 제작된 작품에 부여되는 표식이다. 오스트리아는 지난해부터 친환경 영화 표준을 준수할 경우 영화 예산에 5%에 해당하는 인센티브를 주는 정책도 시작했다.
장차 친환경 제작은 장기적으로 영화 관객들의 가치 소비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해 10월 유럽연합(EU)가 도입한 ‘탄소 국경세’는 제작 과정에서 환경을 고려한 활동들을 고려하지 않으면 수출과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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