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에서 가장 위험한 직업은 선거 후보?

김상준 기자(kim.sangjun@mk.co.kr) 2024. 5. 27.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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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셀리야시 시장 후보 피살
지난 여름부터 후보 36명 사망
“카르텔 잡겠다”는 후보가 표적
최근 후보 가족 살해도 빈번해져
“민주주의는 어디에 있는가”
멕시코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갱단’ 카르텔의 폭력 행위. [사진=로이터연합]
“우리 지역을 더 안전하게 만들겠습니다. 부패한 공무원의 활동을 억제하고, 경찰관의 급여와 근무 조건을 개선하겠습니다. 도시 전역에 ‘비상 버튼’과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겠습니다”

멕시코 중부 과니후아토주 소재 셀레야시에서 시장 당선이 유력했던 기셀라 게이탄 후보(37·여)의 당찬 유세 발언은 그의 유언이 됐다. 처음 선거 유세에 나선 지난달 1일, 그는 ‘갱단’의 무차별 난사에 사망했다.

25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멕시코에서 가장 위험한 직업, 선거 후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고 멕시코 총선에서 유례없이 많은 수의 후보들이 카르텔에 의해 살해당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NYT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여름부터 이달 현재까지 멕시코에서는 총선 후보자 36명이 피살됐다. 멕시코에서는 다음 달 2일 총선과 대통령선거가 동시에 치러진다.

멕시코 카르텔은 자신들 눈에 거슬리는 후보들을 표적 사살하고 있다. 카르텔 소탕을 외치는 등 대립하려는 모습을 보이면 가차없이 살해한다.

카르텔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유연한’ 선출직 공무원을 필요로 한다. 협박과 뇌물이 통하는 사람, ‘협력’이 가능한 사람을 세우려고 한다.

초기에 몇 번의 살해에도 일부 정치인이 ‘용기’를 꺾지 않자 카르텔은 점차 후보의 가족, 나아가 유세 현장의 지지자들도 살해하기 시작했다.

멕시코 게레로주에서는 최근 한 시의원 후보와 그의 부인이 사망한 채 발견됐는데, 부인의 시신이 토막 난 채였다.

치아파스주에서도 카르텔이 시장 후보 1명과 그 후보의 여동생을 살해했다.

현지 매체들은 카르텔과 결탁하고 있는 공무원들이 걷잡을 수 없이 많은 수준이라고 보고 있다. 시장 후보의 유세 동선과 시간이 내부자에 의해 유출돼야 살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게이탄 후보의 경우에도 주 당국 차원의 경호가 없었다고 NYT는 지적했다. 그는 스스로 고용한 경호원 몇을 대동한 채 선거 유세에 나섰다.

게이탄 후보의 소속 정당인 모레나당은 후보를 보호해달라는 요청을 주 당국에 제출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당국은 그러한 요구를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멕시코 카르텔의 폭력은 점차 대담해지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
카르텔, 2만개 지역서 권력 유지 총력…유화 정책 ‘패착’ 지적
올해 특히나 선거 후보와 그 주변에 대한 카르텔의 테러가 많은 이유는 우선 이번 선거가 멕시코 사상 최대 선거이기 때문이다.

멕시코 전역의 2만개 지역구에서 투표가 진행된다. 전국의 카르텔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날뛰고 있는 형국이라고 보면 된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한다. 정부의 카르텔에 대한 유화 정책이 폭력 증가로 이어졌고, ‘피의 선거’로 귀결됐다는 분석이다.

2018년 취임한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카르텔에 공격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젊은이들이 갱단에 가담하는 원인을 없애겠다고 공언했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둔 정책을 대거 시행했다. 그는 해당 정책을 “총알 말고 포옹”이라고 지칭했다.

의도와 명분은 합리적이었지만 카르텔은 정부의 소극적인 군사적 대응에 따라 점차 대담해졌다. 멕시코의 보안 컨설턴트 에두아르도 게레로는 NYT에 “원치 않는 효과가 나타났다”며 “범죄조직은 새로운 영역으로 세력을 확장했다”고 말했다.

앞서 언급한 치아파스주 시장 후보 살해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해당 지역은 지금까지의 선거에서 특별한 폭력 행위가 발생하지 않았던, 멕시코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었다.

“선거운동이 군사훈련이 됐다”
선거 후보 살해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다고 NYT는 평가했다. 위험 지역에는 여러 사회 문제가 있고, 이로 인해 주민들이 고통받고 있지만 후보들은 선거에 나서기를 주저한다.

주민들도 폭탄이 터지고 총알이 날아다니는 선거 유세 현장이나 정치적 집회에 참여하지 않는다.

멕시코 미초아칸주의 시민운동당 대표인 안토니오 카레니오는 “민주주의는 어디에 있느냐”며 “멕시코가 자유로운 선거 제도를 보유하고 있고, 법치주의를 갖추고 있다고 과연 말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게이탄 후보를 대신해 입후보한 후안 미구엘 라미레스 교수는 “수업 중에도 군복을 입은 12명의 군인과 함께하고 있다”며 “선거운동이 초현실적인 군사훈련이 됐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셀리야시 시장 당선이 유력하다. NYT는 “그는 게이탄과 달리 도시의 보안 문제에 집중하는 모습을 자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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